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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 월드컵, 적어도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이들에게는 결코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그것은 축구계에서는 변방 지역에 속했던 한국에서 월드컵을 개최해냈다거나, 한국팀이 과거에는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좋은 성적을 거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동적인 몸짓으로 푸른 잔디밭을 뛰는 선수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축구공을 통해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하나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땅의 시민들에게는 값진 성취감으로 남을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하나의 테마 아래서 함께 하는 축제에 동참했다는 사실은 진정 의미있는 것이다. 이 축제를 하기 전의 우리와, 하고 난 이후의 우리는 분명 다를 것이기에.
우리가 이미 경험했듯, 현대 시대에 있어서, 축구의 파급 효과는 실로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거대한 것이다. 전 세계의 경제, 정치, 언론, 문화 등 다양한 요소들이 이 둥그런 축구공 하나를 중심으로 영향을 받고, 변화해 나간다. 그리고 이러한 전 세계의 축구 조직을 움직여나가는 핵심 조직으로서 'FIFA'가 존재한다.
축구공은 둥글다. 그래서 어디로 튈지 모르며, 그러기에 축구공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할 수밖에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는 19세기 영국의 역사가 엑튼경의 경구에서 둥근 축구공도 진정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것일까. 우리가 열광하고 있는 월드컵과 FIFA 의 거쳐온 역사는 짙은 그림자를 품고 있다.
월드컵과 'FIFA'는 그들의 이익을 위해 여러 국가의 군부정권과 결탁하고 그들의 정치적 목적과 자신의 경제적 이득을 교환했다. 이른바 축구 정치를 통해서 군부정권은 안정성을 꾀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해당 국가들의 인권 문제는 철저히 무시당했다.
경기의 재미만을 위해서 선수들은 혹사당하고 무시당했으며, 거대한 기업과의 결탁을 통해 축구 경기의 순수성은 파괴되어 나갔다. <누가 월드컵을 훔쳤나>의 저자 데이비드 옐롭은 월드컵과 FIFA는 거대한 이권의 집합이 되었으며, 스포츠 정신은 실종되었다고 비판한다.
1904년 FIFA 가 처음 창설되었을 때, FIFA 의 업무는 순수하게 축구에 관한 것이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2 명의 프랑스인과 1명의 벨기에인, 그리고 3명의 영국인 FIFA 회장을 거쳐오는 동안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1974년 한 브라질인이 왕좌에 오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의 취임 몇 년 동안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을 때 FIFA의 업무는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축구만을 위한 FIFA가 아니었다. FIFA는 상품을 팔고 있었고, 그 상품을 후원하고 광고하고 팔아줄 대상을 물색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돈만을 추구했다. 그렇다면 경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경기는 도둑맞고 있었다. 미술품 전문 절도범이 대가의 작품을 훔칠 때와 마찬가지로 진품이 완벽한 모조품으로 바뀌고 말았다.
바로 그 모조품은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속였다. 이제 사람들은 에이브러햄 링컨이 말한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는 것에 대한 그의 견해가 사실이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다수의 국민들을 잠시 속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들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저자는 막강한 권력의 핵심부인 FIFA의 구조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다양한 사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내부에 숨겨진 떳떳할 수 없는 현실들을 우리에게 공개해 나간다. 거대한 조직이 축구라는 운동 경기를 얼마만큼 추악한 이권의 집합으로 만들고, 그것을 교묘한 방법으로 운영해나갈 수 있는 이 책에서는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저 둥근 축구공마저 사실은 제3세계 어린이들의 열악한 노동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던가.
축구는 진정 아름다운 경기이며, 계급이나 인종의 구분 없이 모두를 하나로 만든다. 축구는 세계 공통의 언어를 제시했고, 소중한 이상을 보여주었다. 또한 많은 부분에 있어 축구는 우리 인생의 축소판이었다. 축구는 고결함과 정직함의 표상이었고, 윤리와 교훈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그들은 축구를 앗아가 버렸다. 그들은 축구를 훔쳐갔다.
그래서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 내부에서 벌어진 축구의 열기를,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얻은 수많은 가치들을, 거대한 조직에 의해 강탈당하고, 상업적으로 이용당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서글프고 슬픈 일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난 "붉은 악마"가 그들 스스로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그들을 상업화하려는 이들과 자신을 분리하고자 하는 것은 참으로 긍정할 만한 일이다.
FIFA라는 거대한 권력 단체가 소수의 이들의 부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방법으로 움직여지고 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축구에 무조건적으로 열광할 때 제3세계의 아동들은 끝없이 착취의 대상이 되며, 남미의 군부정권은 축구정치 속에서 정당화될 것이고, 그들의 인권문제는 잊혀질 것이다. 애정의 대상이 되는 축구가 다른 한편으로는 거대한 부패의 수단이 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진정 월드컵을 알고 싶다면 밝은 면뿐만 아니라 어두운 면에 대해서도 인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축제가 그 누군가에게 도둑맞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저자는 월드컵의 어두운 면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지 못할때, 닥칠지도 모르는 축제의 상실에 대해 경고한다. 축구는 결국 축구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의 핵심인 것이다.
과거 사춘기에 이르지 않는 아이들이 경기장 난간에 매달려 있고, 10대 중반에 이른 아이들은 관중석에 모여 앉아 경기를 구경하며 몰두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광경이었다. 격려와 야유, 슬픔과 기쁨을 느끼며 경기에 몰입하는 것, 또 몸으로 응원하는 모습을 통해 패배를 슬퍼하고 승리를 기뻐할 줄 알게 되는 것이다.
그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 10대 후반, 20대 초반에 이르면 이번엔 관중석의 또 다른 한편에서 여자 친구와 함께 경기를 관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에는 아직 사춘기에 접어들지 않은 그들의 아이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들이 해온 모습을 반복하기 시작할 것이다. 관중석의 난간에 매달려 그들만의 영혼의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혼의 여행은 이제 아벨란제와 블래터, 그리고 머독이나 그들과 같은 일당들에 의해 사라져가고 있다. 축구라는 드라마는 그것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관중의 힘과 열정을 단계적으로 도둑맞고 있다.
아마도 20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 축구는 폭력없이 눈요기만으로 돈을 받는 형태로 바뀌게 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낡은 트래포드 경기장과 하이버리 경기장, 그밖에 영국의 많은 유명한 경기장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과거에 저곳에서는 축구 팀들이 경기를 하곤 했는데..."
오.오! 그렇게도 좋았던 시절은 이제 모두 끝나 버리고 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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