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위해 피를 팔다. 가난이 사람을 바꾸는 방법,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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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세 번째 장편 소설 <허삼관 매혈기>의 주인공인 '허삼관'은 '젊은 놈이 피도 팔지 못한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처음으로 사람들과 어울려 피를 팔게 된다. 우선 그는 사람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오줌보가 터질 지경까지 물을 마시고 가서 두 사발의 피를 뽑는다. 받은 돈은 35원. 반 년치 임금이라고 했던가? 그는 피 흘려 번 돈으로 장가를 든다. 이후, 허삼관은 줄곧 가난이라는 궁지에 몰릴 때마다 마치 보험이라도 들어놓은 것처럼 피를 꺼내 쓴다.
모 주석이 집에서 밥을 짓지 말고 공공식당에 가서 먹으라고 했을 때도 그랬고, 문화혁명 전 옥수수죽으로 70일 이상 연명할 때도 식구들에게 국수를 사주기 위해서도 그랬고, 아들이 농촌 봉사대로 떠날 때 몇 푼이나마 손에 쥐어주려 할 때도 그랬다.
무엇보다도 '허삼관'의 피를 파는 이야기의 절정은 간염이 걸려 상해에 있는 큰아들의 병원비를 마련키 위해 임포에서 상해까지 피를 팔며 가는 매혈여행에 있다.
같은 병원에서는 하루 걸러 피를 뽑아주지 않지만 지금처럼 전산망이 되어 있지 않으니 다른 도시의 다른 병원은 아무 문제가 없다. 오직 자식을 살리겠다는 염원 하나로 무작정 피를 뽑아 파는데 급기야 매혈 여행 중에 쇼크를 받아 되려 수혈을 받는 지경에 이른다. 그 바람에 지금껏 피 판 돈의 반을 병원에 되돌려주기까지 한다.
이쯤 되면 지난한 인생의 최후가 대충 머릿속에 그려진다. 초죽음이 되어 상해에 도착하나 어느 불량배에게 몽땅 털리고 빈 손으로 병원에 도착하고, 그를 맞는 것은 아들의 싸늘하게 식은 시체.
아니다, 그랬다면 이 소설은 1930년대 강경애의 단편소설 '쥐껍데기를 상처에서 거둬내니 구더기기 스멀스멀 기어나왔다'는 가난과 고난의 이야기, 그 이상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2
'황석영'의 <이웃사람>이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제대를 하고 고향에 가 보았지만, 어린 조카 6명과 노모만 있는 집에서 그는 농사 따위를 짓기는 싫었다. 무작정 상경. 가진 것이라고는 꿍쳐놓은 돈 삼천원이 전부였던 그는 아쉬운 대로 온갖 궂은 일을 다 해보지만 손에 돈 몇 푼 쥐어지지 않는다. 널판자 몇 개로 지은 합숙소에서 겨우 기거하는 그에게 삶의 위안이란 대포집에서 기울이는 소주 몇 잔이었을 것이었다.
그나마의 일거리도 떨어지자 그는 '쪼록이나 잡으러 가자'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기동을 쫒아 피검사를 받고 번호표를 받는다. 번호표를 받자 그 역시 수돗가를 달려가 숨이 가파질 때까지 물을 마신다. 혹여 피대신 물이 빠져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그 역시 400cc 피를 팔아 받은 돈 1000원. 그러나 술 한 잔 마시고 여자를 사니 손아귀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점점 쪼록이 인에 박히게 되는 나날이 계속되고, 어느 날 재수 좋게도 부잣집 노인의 회춘용이자 보신용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날, 손에 들어온 액수는 4000원. 수수료 1000원을 떼 주고 남은 돈 3000원을 그가 어떻게 쓰는가 보자.
술을 마신다. 여자를 산다. 그러다 급기야 그는 남의 집 마당에 세워진 자전거를 훔친다. <이웃사람>은 살인죄로 취조관 앞에 서게 되는 것으로 결말을 맞는다.
둘 모두 소시민이며, 근대화라는 변혁기의 비자본가들이라는 것이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거야 뻔하지 않은가? 가족사랑과 타인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하자 아들들에게 미워하는 자의 딸 둘을 강간하라 시키는 '허삼관'이니 어떤 사람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정말로 실행에 옮겼다면 허삼관의 매혈기의 가치는 반감되었을 것이다).
<이웃사람>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의 고뇌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보인다. 범죄를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이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순진함의 탈을 쓴 가족만을 위하는 단순한 가족이기주의자라고 '허삼관'을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삼관'은 말한다. 웬만하면 잘 살아보라고. 그가 그 '살아가기'를 해냈음을 알기에, 그의 아이같은 투정과 탄식에 눈물이 난다.
덧붙이는 글 | 노파심에 사족을 단다. 그들의 가난은 유흥비와 명품을 살 돈이 없는 가난이 아니라, 먹고 마시고, 잠 잘 곳이 없는 가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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