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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다 지로의 소설 <태양의 유산>의 겉표지
아사다 지로의 소설 <태양의 유산>의 겉표지 ⓒ 시아 출판사
최근, 한국과 일본의 우호적인 분위기를 보면 과거에 비해서 두 나라 사이의 반일, 반한 감정이 많이 잦아들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어 매우 반갑다.

21세기 벽두에 '2002 한일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여 두 나라가 성공적으로 대회를 치러낸 것도 그러하거니와 세계적 축제를 통해 한국과 일본 양국 간의 서로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개선했다는 것, 그러한 것을 바탕으로 한 양국간에 파트너십을 형성했다는 점은 큰 성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양국간의 좋은 교류와 파트너십은 그것들대로 계속 유지해나감으로써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야 할 일이지만 그에 반해 결코 간과하고 잊어서는 안되는 부류의 것들도 있다.

불과 반세기 정도 전에 우리가 겪었던 아픔인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망상을 필두로 한 일방적인 국권 침탈과 심각한 민족적 피해가 그것인데, 사실 양국이 세계적 축제를 함께 치른 마당에도, 서로간의 문화를 완전 개방하자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역사적 문제는 완전히 청산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언젠가는 양국간의 우호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악영향을 끼칠 여지를 가지고 있는 불행의 씨앗으로써 존재하고 있어 깨끗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임에는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렇게, 분명 일본이 주변국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 전쟁의 주범 국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네들이 과거의 역사적 잘못을 전쟁피해국에게 분명한 말로 사과하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그러한 사과 요구가 피해국들의 여론을 통해서 들끓게 되는 순간마다 다른 미묘한 외교문제로 얼버무려 버리는 것은 외교적으로 정의롭지 못하고 지저분한 자세다.

그렇듯 분명한 것은 한일 양국 간에 우호는 우호대로 유지해야 하고, 과거의 역사적 비극과 잘못은 그것대로 올바르게 해소해야 하는 것이며, 우리가 과거 피해국이었던 이상, 그것을 그네들에게 계속해서 요구하고 환기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에서의 일본에 대한 단적인 인식들과 언론보도를 보면 과거의 비극을 그네들의 의도대로만 잊어버리자라고만 하는 것 같은, 왠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흥미 밖으로 밀려난 채 뇌리에서 사라져가는 느낌이 들어 아쉬움 감을 지울 수가 없게 한다. 사실 그네들에게 역사적 책임을 묻기에 앞서 우리 자신이 그네들의 잘못을 직시할 수 있는 꾸준함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 일임에 틀림이 없음에도 말이다.

화려한 서정성의 기교를 갖춘 작가 아사다 지로의 역사 소설 태양의 유산

오랜 불황으로 인해 거품 경제임을 자각하기 시작할 즈음의 일본, 부동산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결과 본 살림 외에 다른 살림을 무려 3개나 봐주어야 하는 니와는 시대 상황으로 인하여 운영하던 사업에 큰 타격을 받아 가정을 꾸려가기 조차 힘든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러한 자금난 속에서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가진 돈을 모두 쏟아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겠다는 요량으로 찾아간 경마장에서 니와는 마시바라는 노인을 만나게 되고, 마시바 노인으로 인해 그의 얕은 속셈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허무한 심정으로 노인과 술잔을 기울이던 순간 갑자기 노인은 앓아오던 병으로 객사하게 되고 노인의 뒤를 봐주게 되면서 마시바 노인을 알고 있던 복지 사인 에비사와와 만나게 된다.

에비사와는 사실 니와와 마찬가지로 가정에 문제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낯선 남자와 도망을 가버리고 만 것. 여하튼 이 둘은 노인의 죽음으로 만나, 그들이 마시바 노인에게 커다란 비밀이 담긴 수첩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직시하게 된다.

사실 마시바 노인은 과거 태평양 전쟁 시절 촉망받는 소령이었으며 일본이 패전 상황에 처하게 되어버리자 맥아더가 필리핀 총독으로 있던 시절 빼돌린 이 백조엔 가량의 재물을 빼돌려 미래의 일본 경제의 부흥을 기대하며 은닉하는 임무를 수행한 적이 있었던 것. 니와와 에비사와는 이러한 마시바 노인의 이야기가 담긴 수첩을 접하고 나서는 과거 은닉된 이 백조엔 가량의 재물을 갖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그 정도의 재물만 있다면, 깨어진 가정은 물론 기울어가던 사업도 다시 세울 수 있는 노릇이므로, 하지만 과거 마시바 노인이 이 백조엔 가량의 재물을 은닉할 당시 동조했던 카나하라라는 부호 노인 역시 오래 전부터 이 재물을 노려왔던 터라 그네들의 개입이 달갑게만 느껴지지 않았음은 물론이었다.

이에 카나하라 노인은 어려움에 처해 있는 니와에게는 쓰러져가는 사업을 도와주고 가정이 깨어진 에비사와에게는 가정을 복구시켜주는 등의 도움을 주는 한편 마시바가 은닉한 재물을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소설의 제목인 '태양의 유산'이라는 말은, 극중 인물인 마시바 소령의 패전 당시의 일본의 이 백조 엔에 달하는 재물을 뜻하는 말이다.

소설의 중심적 소재가 되고 있는 이 은닉된 재물은 소설상의 설정에 의하면 전쟁으로 인하여 황폐화된 일본을 재건하기 위한 자금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영원히 은폐될 보물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이 은닉된 재물은 패전 당시 상황에서 본다면, 어린 여학생들이 목숨을 끊고 귀신이 되어 그네들이 목숨을 걸고 지킴으로써 나라를 위해 쓰여질 '애국적 자금'이지만 시대가 변하여, 점차적으로 나라에 대한 애국심의 부재를 느껴가는 일본의 베이비 붐 세대인 니와와 에비사와 에게는 그저 물질적 잣대로만 그 가치를 두고 있는, 지하에 잠들어 있는 '거대한 은닉 자금'에 불과 하게 된다.

소설 상의 소재인 은닉된 재물이 시대에 따라 소설 상에서의 의미를 달리하는 것은 사실 과거 맹종적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일본인들이 그러한 국가에 대한 맹신적인 헌신을 꺼려하고 해체되어가는 현실, 현대 일본인들의 국가에 대한 애국심의 부재를 형상화한 메타포라고 해석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작가의 아쉬움이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약 반세기 전 일본의 패전 상황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역사 소설로써의 경향이 매우 강하다. 그렇지만 소설 <태양의 유산>은 니와와 에비사와 라는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등장시키면서 현재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인 붕괴되어 가는 일본 가정의 모습을 투영하기도 하고, 거품경제로 인해 긴 불황에 빠져 있는 일본의 상황을 묘사하기도 하며, 소설의 후반부에 가서는 니와와 에비사와의 문제 많은 가정의 복구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한 면모는 사실 아사다 지로가 그의 많은 작품 속에서 주요 소재로 삼아 온 재료로써 소설 <태양의 유산>에서도 마찬가지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당신의 화려한 기교 속에 감추어진 초라한 정신

아사다 지로의 소설 <태양의 유산>은 궁극적으로 과거 태평양 전쟁을 배경으로 패전국이 되어가는 일본의 급박한 상황과 극동 지역 총사령관을 맡았던 맥아더의 심리를 묘사하는 등, 역사 소설의 경향을 강하게 띄고 있긴 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지나치게 소설의 역사적 사실 묘사에 투영됨으로써 과거 피해국이었던 한국의 독자들에게 매우 커다란 불쾌함을 불러일으켜준다.

우선 소설가의 지나칠 정도의 자국사랑 중심적 역사 묘사가 그것인데, <태양의 유산> 2권에 등장하는 맥아더의 심리 묘사를 보면, 맥아더는 일본의 가미가제 정신, 사무라이 정신을 두려워하는 면모를 드러내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맥아더가 무서워한 것은 ‘일본의 우수한 국민성’, ‘근성’ 따위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소설 상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일본의 우수한 민족성’이라는 묘사하기에 여념이 없는 듯 보여진다.

또한 작가는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의 망상조차 소설 속의 일본 제국에 충성하는 인물 마시바 소령의 애국심으로 무장된 가치관을 통해서 은연중에 일본의 주변국 침략이 서구 세력의 동아시아 침략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수단이었다는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말도 안 되는 명분으로 합리화 시키려 한다.

그밖에도 작가는 소설 상에서 전쟁을 일으켜 주변국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안겨준 일본을 전쟁의 피해자로만 묘사하기에 급급하고 주변국의 피해상황에 대해서는 어느 한 문장도 할애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패전 상황의 일본의 기아 상황은 매우 상세히, 매우 속속들이 묘사하고, 전쟁을 위해 군수 물자 공장에 동원되어 가는 어린 여학생들의 모습 등은 매우 애처롭게 서술하고 있다. 이는 역사적 사실로 볼 때, 그네들 본토의 피해는 그네들의 강제적 침탈을 당한 국가들의 피해에 비할 바가 못 됨에도, 마치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자인양 그려내고 있는 것으로 독자의 입장으로 볼 때 필자의 귀에는 단순한 엄살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또한 군수물자를 위해 동원된 어린 여학생들에 대한 서술이라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네들이 일본의 경제 부흥을 위한 자금으로 쓰일 은닉된 자금을 지키기 위해 약을 먹고 귀신이 된다는 설정인 것을 알 수 있다. 이것만큼은 나라를 떠나서 공통적인, 몸서리 쳐질 끔찍한 일이라고 인정해 줄 수는 있지만 작가는 그것이 나라를 위한 영광이고, 마치 숭고하기 까지 하다라는 인상을 독자에게 심어주려 억지의 노력을 한다.

아사다 지로의 그릇된 동기는 그렇다손쳐도, 소설의 완성도 역시 떨어진다고밖엔 볼 수 없다. 궁극적으로 <태양의 유산> 속에서의 지극히 빗나간 태평양 전쟁에 대한 역사관과 역겨운 내셔널리즘에 자리를 잡지 못하는 그의 서정성과 휴머니즘의 기교는 단지 물에 뜬 기름인 듯 따로 놀게만 느껴질 뿐인 것이다.

이렇듯 태평양 전쟁의 주범 국이며 세계에 많은 우를 끼친 일본을 단지 태평양 전쟁의 피해국이라고 묘사하고, 제국주의의 헛된 망상으로 인해 일어나게 된 비극적인 전쟁은 제멋대로 미화시켜 버린 소설 <태양의 유산>은 적어도 기대하며 소설을 읽었던 나에게 있어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실패작임에 틀림없다.

일본 문단에서 '가장 탁월한 이야기 꾼'으로 불리우며,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아사다 지로는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고 동경하는 작가이며, 그의 인간미 넘치는 소설인 <철도원>,과 <낯선 아내에게>등의 작품을 숨죽이고 읽었던 일들이 생각난다. 주로 야쿠자 소설을 써왔던 그가 소설 '태양의 유산'을 계기로 탈 야쿠자 적인 소설을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작가 아사다 지로의 작품 세계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하는 소설인 '태양의 유산'을 매우 기대 하며 접했었다. 그렇지만 일련의 감흥보다 일련의 실망감을 접했던 나는 그가 여지껏 그의 작품들을 통해 보여 주었던 그 무엇의 존재가 이 작품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출판사:시아 출판사
저자:아사다 지로
정가:7500원


태양의 유산 1

아사다 지로 지음, 한유희 옮김, 시아출판사(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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