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시단(詩壇)의 거장 신경림(67)과 김지하(61)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신작시집을 내놓았다. <뿔>(창작과비평사)과 <화개(花開)>(실천문학사). 그 이름 자체가 시인의 대명사인 두 사람. 요 몇 주간 한국의 모든 평론가와 언론은 너나없이 펜을 들어 그들의 작품에 경의를 표했다.
시와 삶 모두에서 누구도 범접키 어려운 일가(一家)를 이루어내고, 후배들과 독자들의 존경을 받는 신경림과 김지하. 그러나 그들이라고 앞서의 명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들은 외롭지도 않은데 시를 쓰고 있는 것일까?
'시로써 구도자의 역할을 해온 사람이 보여주는 크낙한 삶의 풍경(뿔)' '드러남과 숨음의 이중주 내지 이중적 펼침(화개)'이라는 평가를 필두로 이어지는 수많은 평자의 수많은 이야기들. 오늘은 이 모든 걸 눈 질끈 감고 못 본척 하며 두 노시인(老詩人)의 외로움만을 읽어볼까 한다.
신경림 '아, 어머니...'
신경림이 겪는 최근의 외로움은 지난해 세상을 뜬 어머니로부터 발원한다. 그런 까닭에 모두 5부로 묶인 시집 가운데 가장 큰 파동으로 독자들의 가슴을 흔드는 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다룬 4부, 그중에서도 '편지'와 '저 소리는 어디에서'다. 어머니라는 단어에 가슴 먹먹해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편지'에서는 죽은 사람 모두가 그리움의 대상이다. 어머니는 물론이고, 형수가 차려주는 밥 아니면 먹지 않던 삼촌과 며느리가 바깥 출입하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던 시아버지, 마작과 술로 인생을 탕진한 아버지와 눈물바람으로 보리쌀을 꾸어가던 서당숙모, 씨 모르는 아들 데리고 들어와 눈치밥을 먹던 당고모까지.
안타깝게 그리운 사람 모두를 천상으로 떠나보내고 지상에 혼자 사는 그가 어찌 외롭지 않을까. '혼자 사시니 힘드시죠'라는 질문에 헐헐거리는 특유의 웃음을 날리며 "힘들기는 뭘. 자유롭지"라고 대답하는 신경림이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는 말로 못한 외로움을 시로 고백하고 있다.
이승에서 밤낮 얼굴 맞대고 떠들고 위해주고 다투던 사람들 거기 가서 다 만났을 테니
이승에서 띄우는 내 편지 어머닌 펴볼 겨를도 없을 게다
-- 위의 책 중 '편지' 부분인용.
외로움과 함께 이 대목에서 읽히는 건 일종의 부러움이다. '거기서 다 만난 자'를 향한 '여기 홀로 남은 자'의 부러움. 인간에겐 때로 이승보다 저승이 아름답게 보일 때가 있지 않던가. 거짓 없는 외로움을 앓고 있는 사람에겐 저승의 소리도 들린다. '저 소리는 어디에서'란 시는 바로 그 저승의 소리를 노래한다.
'초췌한 몸 속'도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육신 속'도 '밀폐된 검은 관 속'도 '어둡고 축축한 무덤 속'도 아닌 곳에서 울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 아들의 부름에 "그래"라고 답하는 소리는 '나비가 떼지어 나는 소리도 함께 들리는 가지각색 꽃들의 빛깔과 향기도 따라 보이는' 곳에서 들려온다. 맑고도 담담하게.
지극한 외로움 속에서 삶과 죽음, 산 자와 죽은 자, 이승과 저승을 꿰뚫어보는 시인의 혜안(慧眼)은 떠지고 신경림의 시는 그 공간을 무시로 넘나든다. 그 은혜로운 눈으로 시인은 과거(활엽수)를 보고, 또한 미래(한 오백년 뒤의)를 본다. <뿔>의 4부에 수록된 시 중에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5부에 수록된 시들은 '떠돎의 기록'이라 이름할 만하다. 보고타와 하노이, 압록강 등을 여행하며 쓴 기행시들. 여기에서 '여행이란 지금 이곳에서의 외로움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저곳을 꿈꾸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거론한다면 너무 나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신경림은 떠나 도착한 '그곳'에서도 여전히 지금 '이곳'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강 건너 남쪽'이라는 시다.
눈을 감고도 나는 찾아갈 수 있다/장골목을 지나면 양조장/뿌연 저녁 연기 속, 된장국 끓는 냄새/밥 먹으라고 아이를 부르는 소리, 대문 여닫는 소리/반찬가게 주인 아주머니 호들갑스런 웃음소리/휘파람 소리, 라디오 소리/그 끝에 집앞 가로수까지 반들거리는 기름집...//고향보다도 더 눈에 선한 강 건너 남쪽/텅 빈 소도시의 저녁 하늘에/노을이 발갛다.
짧은 결론을 내자. <뿔>은 어머니와 유년에 대한 그리움이 만든 시집이다. 물론 그 그리움이 진원지는 두말할 나위 없이 '지금 이곳'에서의 외로움일 터.
김지하 '내 곁엔 누가 있나?'
작년 가을이던가. 김지하가 자주 들른다는 경기도 일산의 카페 먼 발치에서 그를 본 적이 있다. 창을 통해 거리에 쌓인 낙엽을 보는 그의 눈망울이 젖어있었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 머리칼과 주름진 얼굴. 그 모습은 그의 고단했던 삶과 겹쳐져 만추(晩秋)의 또 다른 진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김지하도 가을처럼 쓸쓸한 모양이다. <화개>에선 외로움의 생살을 드러내는 시가 자주 발견된다. 짧고도 간명한, 그 짦음과 간명함이 더 큰 울림으로 가슴을 흔드는 것들이다.
감기 들린 작은놈 콜록 소리
내 가슴에 천둥 치는 소리
손에 끼었던 담배
저절로 떨어지고
춥다
그리고 덥다.
-- 위의 책 중 '短時 셋' 전문.
하 답답해
아내더러 이야기 좀 하자 했더니
아내는 대뜸
비겁하다고 지청구다.
-- 위의 책 중 '短時 여섯' 전문.
말 그대로 짧은시(短時)인 위 두 작품은 회갑을 넘긴 김지하의 내면풍경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신념과 배포로 살아온 '천하의 김지하'가 아들 기침소리에 화들짝 놀라고, 아내에게 잔소리나 듣다니. '오적'과 '타는 목마름으로'의 김지하가 그 따위 걸 가지고 시를 쓰다니. 이는 세월과 나이 탓일까?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저항과 수난의 대명사로 살아온 젊은 시절엔 놓치고 있던 미세한 풍경들을 김지하는 이제서야 감지한다. 나와 더불어 무너지고 있는 세상. 그것들을 구할 방법이 없다는 자괴감. 그 깨달음은 외로움을 가속화한다. 박정희 유신독재보다 더 무서운 '어떤 것'들이 세계와 인간을 좀 먹고 있다. 이런 시도 그런 까닭에 씌어진 것이리라.
내 몸/어딘가/부서지고 있다//내 마음 하염없이/무너지고 있다//흙이 죽어가고/풀이 마르고 나무 병들고//새들 울부짖는다/하늘은 구멍 뚫리고/산성비 쏟아져 내리고//모두 다 내 몸/나는 병들었다//나/이제/일어서리라//일어서 치유하러 가리라//가리라/가/돌아오지 않으리라.
-- 위의 책 중 '삶 2' 전문.
위 시에선 물론 김지하의 메시아 콤플렉스 혹은, 우두머리 콤플렉스도 읽힌다. 하지만, '삶 2'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아래 시를 보자. 세상을 구하려는 사람,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 이런 노래를 부를 턱이 없다. '횔덜린*'이다.
횔덜린을 읽으며/운다//나는 이제 아무 것도 아니다/즐거워서 사는 것도 아니다//어둠을 지배하는/시인의 뇌 속에 내리는//내리는 비를 타고/거꾸로 오르며 두 손을 놓고/횔덜린을 읽으며/운다...
김지하의 몸을 관통했던 시대의 폭풍, 그 폭풍 속을 기꺼이 걸었던 한 메시아의 눈물 섞인 통절한 고백. '나는 이제 아무 것도 아니다. 즐거워서 사는 것도 아니다.' 그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이 외롭고도, 아픈 깨달음을 마음이 아닌 몸으로도 감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돋보기를 써도
앞이 부옇다
아마
데리다*는 영영
못 읽을 것이다
쉰부터 다시 산다는데
사는 것이 이리 어렵다
앉아
그대로 먹먹한 날들
쉰둘의 날들.
김지하의 새 시집 <화개>가 감동적인 이유는 '외로움을 앓는 자의 고백'이 진솔하게 읽히기 때문이다. 그 고백은 지난 시절 김지하가 우리에게 던졌던 어떤 '뜨거운 선동'보다 눈물겹고, '질박한 풍자'보다 절절하다.
다시 외로움은 시를 만든다
90년대 초반 시인 정호승이 그랬던가. '지금은 시를 쓰는 사람보다도 시를 읽는 사람이 고통스러운 시대'라고. 그로부터 10년이 세월이 흘렀지만 그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남의 고통을 본다는 것, 한 사람의 외로움을 읽어낸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시린 일인가.
그러나, 다시 외로움은 시를 만든다. 세상과 인간을 향해 뻗어 있는 예민한 촉수로 자신의 외로움을 감지하고 노래하는 그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시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달라지든 그들은 앞으로도 백년 아니, 천년 동안 우리의 외로움을 대신 앓아주리라.
| | '횔덜린'과 '데리다'는 누구인가? | | | | 횔덜린(1770~1843):슈바벤의 네카 강변 라우펜 출생. 수도원 관리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784년 덴켄도르프의 수도원 부속학교, 1788년에는 튀빙겐대학 신학과에 들어갔으나, 어머니의 희망인 신학 공부보다는 고전 그리스어 ·철학 ·시작(詩作)과, 그리고 헤겔 ·셸링 등 뛰어난 학우들과의 교유에 열중하였다. 졸업 후 동향 선배 실러의 주선으로 가정교사가 되었으며, 그런 관계로 예나에도 거주하였는데, 괴테 ·실러 등은 자기와는 이질적 존재임을 깨닫고 I.칸트, 특히 J.G.피히테 철학의 추상적 세계에는 몸담아 있을 수 없어 고향으로 도망쳐 돌아갔다.
1796년 프랑크푸르트의 은행가 곤타르트가(家)의 가정교사가 되었는데, 그 부인 주제테와의 만남은 운명적인 사건이었다. 횔덜린은 그녀에게서 그리스적인 미(美)와 조화의 화신을 발견하였고, 그녀도 그의 순진한 심정을 보고 서로 경애(敬愛)하였다. 그녀는 디오티마(Diotima)라는 이름으로 서간체 소설 <히페리온 Hyperion> 및 그 밖의 많은 시편(詩篇)에 등장하였으며 그 작품은 모두 불후(不朽)의 것이 되었다. 3년 후 비련의 이별을 하고 함부르크 ·고향 ·슈투트가르트 ·하우프트빌 ·보르도 등지를 방랑하였는데, 1802년경 정신착란 증세가 생기고 1806년부터는 완전히 폐인이 되어 36년간 튀빙겐의 목수 치머 일가의 보호를 받았다.
생전에 단 한 권의 시집도 나오지 않았지만 횔덜린 특유의 작품은 단편으로 끝난 비극 <엠페도클레스의 죽음 Der Tod des Empedokles>(1797∼1799)을 비롯하여, 프랑크푸르트 시대 이래의 시작품(詩作品) <디오티마 Diotima> <디오티마를 애도하는 메논의 탄식> <하이델베르크> <빵과 포도주> <귀향(歸鄕)> <라인강> <평화제(平和祭)> <유일자(唯一者)> <파트모스> 등의 걸작이 있다. 이들 작품에서 풍겨오는 것은 잃어버린 황금시대에 대한 한탄, 자연과 인간의 재생에 대한 원망(願望), 현재의 암흑시대에서 신들을 두려워하고, 그 재림을 믿으며 신들의 말을 노래에 담아 사람들에게 전하는 예언적 시인의 사명감이었다.
데리다(Derrida, Jacques):알제리 엘비아르 출생. 파리의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고등사범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1965년부터 이 학교에서 철학사를 가르쳤다. E.후설의 현상학(現象學)을 배운 후, 구조주의의 방법을 철학에 도입하였다. 언어의 기호체계(記號體系)가 자의적인 것이라는 인식에서 언어 위에 조립된 논리학을 재검토하였다. 특히 서기언어(書記言語) 에크리튀르가 수행하는 역할을 중시하였다.
한편, 시차성(示差性)이라고 하는 개념을 도입하고, 실체(實體)와 직결된다고 생각되어온 개념들이 시차적 특징에 의해서만 뜻을 지니는 것이며, 차이를 재확인하고, 그 행위에 의한 지연과 우회를 거친 뒤에 현실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저서에 <근원 저편에>(1967) <에크리튀르와 시차성>(1967) 등이 있다.
(야후 백과사전) / 홍성식 기자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