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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생들이 미군측에 보내는 요구사항을 적은 종이비행기를 미2사단 안으로 날려보내고 있다.
중고등학생들이 미군측에 보내는 요구사항을 적은 종이비행기를 미2사단 안으로 날려보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17일 오후 7시경 의정부 미2사단 레드클라우드 부대 앞에선 수백 명의 청소년들이 쪼그려 앉아 종이비행기를 접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 머리를 염색한 청소년,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온 시민들.

"사진기자 아저씨도 함께 비행기를 날려요"- 강수연/김용남 기자

[플래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자통협 제공

이들은 'US Troops Out of Korea(주한미군 철수)', 'Give Up Jurisdiction(재판권 포기)', 'Fucking U.S Army' 등의 '반미 문구'가 적힌 붉은 색종이를 꺼내들고 종이비행기를 접었다.

의정부시 미2사단 정문앞에 모여 시위를 벌이는 중고등학생들.
의정부시 미2사단 정문앞에 모여 시위를 벌이는 중고등학생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들은 잠시 후 '와-'하는 함성과 함께 붉은 종이비행기를 미군부대쪽으로 날려보냈고, 철조망에 부딪혀 떨어진 종이비행기를 다시 주워들고 힘차게 부대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청소년들은 제대로 날지 못하고 떨어진 비행기를 주워 휴대용 사다리에 올라서 있던 몇몇 사진기자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또 대열 뒤쪽에서 청소년들과 부대 벽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일부 전경들도 슬그머니 비행기를 부대 안으로 던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청소년과 시위대, 기자, 전경이 모두 하나였다.

이에 앞서 의정부역 광장에서 오후 4시에 열린 '고 심미선·신효순 진상규명을 위한 청소년 행동의 날 청소년 추모문화제'는 서울경기지역 청소년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아들딸 뻘인 청소년들과 함께 집회에 참여한 의정부 시민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200여 명. 더운 날씨 속에 후끈 달아오른 광장에서 문화제와 행진이 4시간여에 걸쳐 진행됐지만 참가자들은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참가자들은 점점 늘어나기만 했다. 광장에는 교복 차림 그대로 집회에 나선 청소년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청소년들이 이렇듯 '반미 문화제'에 대거 참가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 그만큼 이번 두 여중생 압사 사건에 대한 공분이 사회 밑바닥까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학생들은 이런 곳에 오면 안된다고 말리는 선생님들이 있다면 우리는 헌법과 유엔아동조약에서 명시된 것처럼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있는 시민이라고, 선생님들도 함께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을 알리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행사 초반 한 청소년 대표의 이같은 말에 학생들은 대부분 공감하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구호를 낯설어하며 박자를 틀리던 청소년들도 곧 능숙하게 "청소년들 열받았다. 주한미군 각오해라", "청소년이 앞장서서 동생들의 한을 풀자" 등의 8박자 구호, 월드컵 구호 등을 따라 외쳤다. 손수 만든 피켓에는 "같은 학생으로 참을 수 없다. 책임자 처벌하라"는 문구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추모편지 낭독에 '눈물의 시위' 재연
"사건 묻혀진다면 다음 피해자는 내 친구"


숨진 여중생들에게 보내는 친구들의 편지가 낭독되자 울음을 터뜨리는 여학생들.
숨진 여중생들에게 보내는 친구들의 편지가 낭독되자 울음을 터뜨리는 여학생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오늘은 학교에서 어떤 기자가 묻는데 말을 못했어. 할 말은 많은데 아무 말도 못했어. 말하다 눈물이 날까봐…. 너희가 그냥 멀리 떠나갔다고 전학갔다고 믿는데 그 믿음을 깨니까 화가 났어."

문화제가 시작되고 고 신효순, 심미선 양의 학교 친구들이 직접 썼다는 편지가 낭독되자 청소년들은 마치 자신의 친구를 떠나보낸 것처럼 눈물을 흘렸다. 서로 눈물을 닦아주는 모습은 지난 6월 20일 미2사단 앞에서 의정부여고 학생들이 보여줬던 '눈물 시위' 그대로였다.

'Fucking USA',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등의 노래공연과 대표 발언이 이어지면서 잠시 숙연했던 분위기는 곧 활기를 되찾았다.

또래 친구들의 격려에 힘입어 무대에 선 고 심미선양의 친오빠 심규진(경민고 3)군은 "우리 미선이는 착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그 날도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는데 그 다음 본 동생의 모습은 탱크에 깔린 시신이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심군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꿈만 같았다"면서 힘겹게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서도 "미선이와 효순이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없어야 하고 부시가 사과했으면 한다"고 말을 맺었다.

심군의 발언이 끝나자 이를 지켜보던 청소년들은 "미선 오빠, 힘내세요"라고 외치며 격려했다.

"인천에서 3시간 동안 달려왔다"며 말문을 연 청소년생활문화마당 '내일'의 박명희 대표는 "미군 측의 사과는 국민과 우리 청소년들의 분노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사건에 대한 의혹규명과 사고 미군들에 대한 처벌은 무성의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한 뒤 "이 사건이 이대로 묻혀진다면 다음 희생양은 지금 내 옆에 앉은 친구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누구도 집회 참석을 가로막을 수 없다"

미2사단앞에서 'SOFA 개정' '책임자 처벌' 등의 구호를 외치는 여학생들.
미2사단앞에서 'SOFA 개정' '책임자 처벌' 등의 구호를 외치는 여학생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박성기 전국민주중고등학생연합 중앙위원장은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권리를 무시하고 오늘 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징계나 위협을 가하는 학교가 있다면 인권유린으로 간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박 위원장은 "현재 의정부 지역은 물론 서울경기지역의 많은 학교에서 이 사건과 관련된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학생들을 규제하고 있다"며 "이후 학생들을 징계하는 학교 앞에서 집회도 열고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규탄성명을 내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6시 30분쯤 광장 앞 추모문화제를 마친 청소년들은 미2사단 캠프 레드 클라우드 앞으로 행진했다. 지금까지의 집회와 달리 시민단체 대표들은 뒷줄로 빠지고 청소년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선두로 나섰고, 도착한 뒤 미2사단 앞에서 종이비행기 날리기 행사를 벌였다.

한편 두 여중생의 죽음을 초래한 사고 장갑차 소속 부대인 캠프 하우즈 부대책임자로 유가족에게 고소를 당한 해럴드 채플 대령이 지난 6월 28일 출국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날 범대위는 오는 19일 이임식을 가진 뒤 미국으로 출국할 예정인 미 2사단장을 막기 위한 투쟁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7월 18일 오전 10시 민주노동당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회는 국정조사권을 발동해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권영길 민노당 대표는 "역대 정권 가운데 가장 친미적이라는 비난을 들으며 지금가지 미국에 대해 제대로 목소리 한 번 내보지 못한 김대중 정부가 이번에도 또다시 침묵을 지킨다면 이는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역사적 죄"라며 미국정부에 대한 공식적 사과 요구, SOFa 전면 재개정, 부시 미 대통령의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청소년 행동의 날'에 참가한 사람들

▲ 직접 만든 추모깃발을 들고 청소년행동의 날에 참가한 단짝 친구 박문정양과 이은주양(왼쪽부터)
ⓒ오마이뉴스 권박효원



"청소년이 죽었는데 우린 가만있으라고요?"

일일이 양면테이프로 종이를 나무젓가락에 붙인 추모깃발 1000여 개를 만들어 온 이은주양과 박문정양. '21세기 청소년 공동체 희망'(이하 희망) 회원인 두 사람은 죽은 효순이와 미선이가 그랬던 것처럼 늘 함께 붙어다니는 단짝친구다.

이양과 박양은 "우리들이 직접 행사를 기획했다. 벽보도 유인물도 만들고 오가면서 서명운동과 모금도 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처음엔 "학생들이 공부는 안 하고 뭐 하는 거냐"고 따지는 어른들이 있어서 속상했지만 다행히도 점점 호응이 늘었다고 한다.

"청소년이 죽었는데 어른들에게만 맡길 수 없잖아요. 청소년들의 힘을 보여줘야죠"라고 당차게 말하는 박문정양은 사실 아직 아버지에게 오늘 집회 참가를 알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경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씀드려도 좋은 일 한 거니까 뿌듯해 하실 거"라는 게 박양의 생각이다.

이은주양은 "사실 이번 사건을 알기 전까지 미국이 영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양 역시 "미국은 우리나라를 지켜주고 존중해주는 나라"라고 생각해 왔다. 이 양은 "그동안 미군이 했던 짓들을 알고 나니 미군은 영웅이 아니라 적군이에요. 적군"이라고 지금의 달라진 생각을 이야기했다.

"13년만에 꿈꾸던 믿음을 확인했습니다"

▲ 의정부역 광장에 모인 중고등학생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김진숙 '희망' 대표에게 오늘은 '꿈★이 이루어진 날'이다. 89년 전교조 참교육운동을 시작으로 청소년 운동에 뛰어들었던 김 대표는 감격에 찬 목소리로 "끝나고 나니까 너무 감동적인데... 말로 표현이 안 된다"고 말했다.

"고등학생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가 팬클럽 빼고는 없잖아요. 언젠가 애들하고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게 꿈이었거든요. 오늘 제 꿈을 이뤘어요."

처음 이 사건을 아이들에게 알렸을 때만 해도 김 대표는 아이들이 얼마나 호응할 지에 대해 조금은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막상 사건을 전해들은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분노했고 그 분노를 곧 행동으로 옮겼다.

"잘해낼 줄 알았어요. 내가 청소년에게 갖고 있던 믿음이 옳았구나. 그걸 확인해서, 그래서 오늘은 너무너무 기뻐요."

단체별, 학교별로 둥글게 모여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정리하는 청소년들을 보는 김 대표의 눈에는 아이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 권박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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