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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백악관 앞에서 시위하는 남학호 씨 모습 "진실을 밝히는 이 싸움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지난해 3월 백악관 앞에서 시위하는 남학호 씨 모습"진실을 밝히는 이 싸움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 <미주한국일보>제공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마흔 고개를 넘기고서야 세상을 새롭게 바라봤다는 그 사람. 두 자식을 남기고 먼저 떠난 아내의 죽음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외롭게 '투쟁'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지난 2000년 8월 6일 대구에서 한국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남학호(당시 42세)씨는 앞으로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을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하루 전 미 국방성 초청으로 교육프로그램을 연수받기 위해 미국 워싱턴DC로 떠난 아내의 안부전화 대신 그는 아내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전화'를 받아야만 했다.

남씨의 아내는 대구 미군기지인 미20지원단사령부(남구 이천동 캠프 헨리) 내 복지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던 박춘희(당시 36세)씨. 하지만 남씨가 놀란 것은 아내의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다. 박씨가 '달리던 택시에서 스스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현지 경찰과 언론의 이야기는 남씨를 더욱 놀라게 했다. 여기서부터 남씨의 외로운 투쟁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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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죽음, 그리고 바뀐 인생

그리고 오는 8월이면 아내의 죽음도 두 해를 넘기고 만다. 그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미국의 백악관과 서울의 미대사관 등지에서 난생 처음으로 '1인 시위'를 하기도 했고, 지구 저편에 있는 남의 땅 미국도 세 차례나 방문해야 했다. 그리고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 그가 필요하다면 어디든 달려가 '억울한 아내의 죽음을 밝혀달라'며 하소연하기도 했다.

다행히 사건 발생 8개월여만인 지난해 4월 남씨는 아내의 죽음과 관련해 미국 현지 담당 부검의가 작성한 부검보고서에서 박씨의 죽음이 '자살을 암시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결론을 받아내, 아내가 자살했다는 왜곡과 불명예에서 자유로울 수는 있었다.

하지만 당시 부검보고서와 현지 경찰은 '타살과 관련한 증거나 정황을 찾을 수 없다'는 설명만으로 일관해 박씨의 죽음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겨지고 말았다.

"죄스런 마음으로 머리 숙여 인사드립니다"
남학호 씨가 보내는 <감사의 글>

감사의 글 - 사람의 생명은 모두 같다

삼가 머리 숙여 인사드립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당부와 염려의 말 한마디를 남길 시간은 고사하고 작별의 이유마저도 은폐시켜 버린 비열한 미국(군)을 책망하느라 그동안 저희 가족들에게 들이닥친 불행을 함께 염려하여 주신 따뜻한 모든 분들께 올려야 할 인사가 늦었습니다. 남학호가 죄스런 마음으로 삼가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안녕하셨는지요?
지난 2000년 8월 5일(밤 9시/미국 현지시각) 저의 내자(內子) 故 박춘희가 미국방성 초청으로 워싱턴에 도착한 후 1시간만에 업무상 관련된 사유로 고속도로상에서 테러적인 죽임을 당하여 36세로 생을 끝내야 했던 슬픈 일이 있었습니다.

사고당시 미국경찰은 사건발생 9개월 째인 2001년 4월 16일 사고사(accident)로 황당한 발표를 하면서 기막히게도 미국(군)은 자기네들이 초청한 사람에게 합당한 사인도 밝히지 않은 채 미국으로 오는 모든 여성들은 긴 여행에 의한 피로로 당연히 죽게 된다며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분들은 이 사건은 우연에서 발생된 사고(accident)가 아니라고 합니다.

미국과 관련된 사건들은 언제나 이렇습니다.

★ 시속120km 주행속도에서 낙하하는 물체는 관성의 법칙에 의해 앞으로 굴러 떨어지는 게 불변의 상식이며 사고인의 경우 도리어 15m이상이나 뒤로 굴러갔다는 현상을 반드시 밝혀야 함에도 미 수사당국자들의 책임회피와 은폐로 애통하게도 사건 2주년이 다될 때까지 진실이 묻혀있습니다. 지금까지 사건 본질에 대한 어떠한 설명이나 사과 한마디조차 없습니다.

★ 이렇게 기막힌 수사를 함에도 한국정부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왜? 그렇게 해도 한국정부는 미국한테 찍 소리 못할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한국민의 안전을 챙겨야 하는 외교통상부는 "자칫 외교문제로 비화 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미국경찰한테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며 나 몰라라 합니다.

★ 그렇다고 또 하나의 재수없는 사건으로 남길 수 없어 황당한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자 현재 백방으로 법률적인 대응을 강구하고 있지만 뉴욕에서 벌어진 9.11테러사건 후 유색인종과 관련된 송사문제를 기피하는 정서가 미국현지에 팽배해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에 봉착하여 아직까지 사건은 답보상태에 있습니다.

국내에서 외국인(미군)에게 당해도 그냥 참아야 하고, 국외에서 외국인(미국인)에게 당해도 그냥 참아야하는 현실입니다. 그러함에도, 본 사건에 대한 현명한 해답을 요구하는 작업은 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지대한 성원과 관심으로 지켜봐 주신 모든 분들께 그간의 경과를 보고 드리며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2002년 7월
남학호 배상
dolnabi@hanmail.net / 이승욱
최근 남씨는 아내의 죽음 2주기를 앞두고 <감사의 글>을 써 평소 아내의 죽음과 관련해 그에게 도움을 줬던 지인(知人)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당부와 염려의 말 한마디를 남길 시간은 고사하고 작별의 이유마저도 은폐시켜 버린 비열한 '미국(군)'을 책망하느라 그 동안 저희 가족들에게 들이닥친 불행을 함께 염려하여 주신 따뜻한 모든 분들께 올려야 할 인사가 늦었습니다"라고 시작하는 감사의 글은 아직도 아내의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털어낼 수 없는 남 씨의 답답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얼마 전 기자와 만난 남씨는 최근의 심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건 해결에 앞장서야 할 미군 측은 아직도 사건 본질에 대한 어떠한 설명이나 사과 한마디조차 없습니다. 이러다가 진실이 밝혀지지 못한다면 남은 자식들에게 뭐라고 (아내가 죽은) 이유를 설명해야 할지 답답함에 아직도 황당할 뿐입니다."

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남씨도 사건을 덮어버린 채 아내가 남긴 '피붙이' 범송(12), 현정(9)이를 위해서라도 아내의 죽음을 잊고 살아가야 한다고 자신을 채근했지만 그것도 마음뿐이다. 스스로도 납득가지 않는 이 사건을 그냥 어떻게 묻을 수 있겠는가.

"미국경찰이나 미군당국(CID)은 아내가 죽은 이유를 밝혀야 하는 당사자들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수사의지는 고사하고 오히려 의혹을 은폐시키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실제 현장 출동 경찰은 수사 현장에 대한 사진 한 장도 찍어놓지 않았습니다. 또 '관성의 법칙'은 초등학생도 아는 이야기인데 미국 경찰은 시속 120km에서 떨어진 시신이 뒤로 굴러갔다는 기가 막힌 말만 하고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남씨가 지금까지 이 사건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엄마가 죽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는 답답함이 배어있었다. 그래서 아직도 두 아이에겐 '엄마'는 잠시 떨어져 있는 것뿐이라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아직 절대적으로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에겐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아 죽음을 알지 못하게 조심하지만 가끔 엄마를 찾는 눈빛을 보낼 때면 가슴이 아픕니다. 잠들기 전이나, 운동회나, 가족자랑을 할 때가 되면 먼저 제 표정을 살피기 일쑤죠. 그러면 '엄마는 미국에 일하러 가셨는데 너무 바빠 못 온단다' '너희들이 더 크면 그 때 만날 수 있단다' '보고싶어도 씩씩하게 살자' 이렇게 둘러댑니다. 나중에라도 다행히 애들에게 비극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설명할 기회가 있다면 좋겠어요."

그 동안의 시간을 돌아보면, 언론의 조명을 받으면서 보내준 많은 국민들의 지지가 그에게 큰 힘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은 국민을 보호하는 정부의 '불성실한' 자세였다.

"국내에서 미군에게 당해도 그냥 참아야 하고, 외국에서 당해도 그냥 참아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제가 경험한 현실입니다. 이 지경에 이른 사건도 한국 정부는 '외교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있으니 미국 경찰의 수사결과를 존중해줘야 한다'며 나몰라라 발을 빼기 바빴습니다. 그럴 때면 우리 국민이 참으로 불쌍해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습니다."

미국 경찰당국의 재수사 의지가 없는 이상 현재 박춘희씨 사건의 의혹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현지의 법원을 통해 재판 과정에서 진실을 밝혀내는 길이 유일하다. 지금까지 남씨는 이러한 점에 주목해 1년여 넘게 미국 법정에서 아내의 사건을 밝혀내는 데 주력해왔다.

특히 박씨가 탔던 택시의 회사와 운전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지난해 7월에는 직접 미국으로 날아가 변호사 선임을 위해 노력했다. 정작 1년이 흐른 지금 안타깝게도 성과는 거의 없다.

힘들게 버텨온 싸움... 그나마 내달 4일이면 그것도 소용없어

선뜻 남씨에게 법률자문과 변호사 선임에 대한 도움을 주겠다 약속하는 이들은 적지 않았지만 그 끝은 모두 '흐지부지'됐다. 최근 6개월 동안에도 한 재미교포 법률전문가를 통해 변호사 선임을 위해 노력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남기지 못하고 많은 경비만 지출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이런 노력도 다음달 초가 지나면 더 이상의 '헛수고'도 할 수가 없다. 바로 오는 8월 4일이면 미국 버지니아 주법에 따라 민사소송의 공소시효 2년이 지나버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접촉해본 변호사나 전문가들은 난색을 표명하고 비관적으로 봅니다. 하지만 모두 동일하게 사고가 의문이 많다는 데 동감합니다. 다만 경찰수사가 미진했기 때문에 법적인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지를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9·11테러 이후 유색인종과 관련한 송사를 기피하는 정서가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남씨는 어렵지만 아내의 죽음 밝히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벌써 자포자기로 스스로를 '안위'할 수 없었다. 보름 정도 남은 기간 동안 지금까지 보내준 국민들의 성원을 다시 한번 기대하는 마음도 애써 감추지 않았다. 특히 미국 현지교포들에게 사건과 사건해결에 대한 실마리를 던져주길 마지막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항상 미국이나 미군과 관련한 피해자들은 인재가 아니라 필연적인 운명으로 돌리고 포기하게 되더군요. 하지만 아내의 죽음을 또 하나의 재수 없는 사건쯤으로 남길 수는 없어요. 지금까지도 많은 도움을 주신 국민여러분에게 아무런 성과도 남기지 못해 죄송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여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습니다. 작은 도움이라도 좋으니 염치 불구하고 다시 한번 여러분의 조언과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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