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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신림7동 난곡지역 대부분의 집은 헐려 있다. 250여 가구는 아직 이주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난곡에 머물러 있다.
서울 관악구 신림7동 난곡지역 대부분의 집은 헐려 있다. 250여 가구는 아직 이주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난곡에 머물러 있다. ⓒ 난곡 세입자 다모임
"철거 안 했으면 좋겠어. 2평도 안 되는 집이지만 나에겐 이 집이 '왕국'이거든. 만약 철거하더라도 임시수용소 지어줬으면 좋겠고."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인 관악구 신림 7동 '난곡' 지역에 살고 있는 신창옥(61)씨는 최근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지난 8일부터 대한주택공사가 '난곡' 지역 재개발을 위해 기반시설 조성공사에 들어가자 '조만간 내 집도 헐리겠구나'하는 불안감에 휩싸인 것이다.

난곡 지역에 남아있는 250여 세대 주민들의 처지도 신씨와 별반 다르지 않다. 현재 가지고 있는 보증금과 전세금만으로는 타지역에 있는 집을 구할 수 없는 주민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게 된 것이다. 벼랑 끝에 몰린 주민들은 22일 오전 9시부터 서울시 의회 앞에 돗자리를 깔고 "가수용단지를 설치해 줄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에 참석한 주민들은 난곡 지역 주민 중에서도 극빈민층이었다. 지난해 10월 구청으로부터 대한주택공사가 재개발 시행인가를 받자 도시빈민층 2500여 세대 가운데 일부는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얻어 이주를 했고, 일부는 전세금과 이주대책비(4인가족 기준 650만원)를 모아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이도 저도 못한 사람들이 지금 난곡에 남아 있는 주민들이다.

전세 130만원짜리 방에 살고 있는 신창옥(61)씨는 이주대책비를 눈앞에 두고도 수중에 가진 돈이 없어 이사를 하지 못한 대표적인 경우다. 정부에서 지급하는 24만원과 파지(破紙)를 팔아 벌어들이는 6만원 정도가 한달 수입의 전부인 신씨에게 전세금 1,000여 만원에 관리비 15만원의 임대아파트는 '그림의 떡'이었다. 또 이주대책비 350만원과 전세금 130만원을 합해봐야 다른 곳으로 이사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신씨는 이주대책비를 포기하고 난곡에 눌러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신씨는 98년 2월 이전에 난곡지역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이주대책비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은 됐다. 하지만 98년 2월 이후에 난곡지역으로 이사온 주민들은 '비적격자'로 분류돼 이주대책비가 지급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수용단지가 설치된다고 하더라도 입주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난곡지역 마지막 세입자들은 서울 시의원 앞에서 "가수용단지를 설치해 줄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난곡지역 마지막 세입자들은 서울 시의원 앞에서 "가수용단지를 설치해 줄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 임경환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8만원짜리 방에 두 자녀와 함께 살고 있는 이주희(42)씨는 IMF 여파로 빌딩 청소일마저 끊겨 집을 팔고 '어쩔 수 없이' 98년 2월 이후 난곡에 들어온 경우다. 이씨는 98년 2월 이후에 들어온 '비적격자'주민이기 때문에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보증금 100만원을 들고 이 지역을 떠나야 한다. 마땅한 직업이 없는 이씨는 두 아이와 함께 길거리에 나 앉아야 할 판이다.

보증금 250만원을 맡겨놓고 월세 4만원을 내며 살고 있는 전종구씨는 "버스정류장에서 하차를 하고 땀을 한바가지 흘려야 도착하는 집, 비가 오면 못 올라갈 정도로 경사가 급한 동네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돈이 없어 이사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털어놓는다.

난곡 세입자들의 시위는 다른 시위와 달리 유인물도 없고 규탄사나 정치연설도 찾아볼 수 없다. 단지 돌과 모래가 들어있는 1.5ℓ 페트병을 땅바닥에 두드려대는 것과 사회자를 따라 구호를 외치는 것이 전부였다.

"갈 곳 없는 세입자들 주거대책 마련하라."
"우리들도 국민이다. 생존권을 지켜달라."
"무자비한 폭력철거 즉각 중단 요구한다."
"임시주거시설 하루 빨리 마련하라."

시위를 시작한 지 3시간이 지났지만 시의회와 시청에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주민들은 서울시장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이명박은 정신차려 난곡문제 해결하라"
"서울시장 이명박은 난곡사정 알고 있나?"

난곡 지역 마지막 세입자의 얼굴에서 웃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난곡 지역 마지막 세입자의 얼굴에서 웃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 임경환
주민들의 외침이 계속 허공에서 맴돌자 이를 보다 못한 난곡 주민 고복수(65)씨는 "언론이 제대로 보도해줘야 한다"면서 기자에게 하소연을 한다.

"서울시의회 앞에서 이렇게 시끄럽게 하는데도 나와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네요. 시의원이 없다면 보좌관이라도 나와서 무슨 사정인지 들어보고 시의원에게 연락해야 되는 것 아니에요? 결과야 어떻게 되든 간에 최소한 시의원이 나와서 "시에다 건의를 해 해결될 수 있도록 힘써보겠다"는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겠어요? 정치인들이 배고픔과 집없는 설움을 모르니까 서민의 애로를 들어줄 수 없지. 서민의 애환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정치인이지"

시의회 앞 시위는 계속 됐지만 시의회 의원들은 한 명도 시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시위장 옆에 세워진 선전판에 붙은 사진과 글을 읽어보는 행인들 몇 명이 관심을 보일 뿐이었다. 벼랑 끝에 내몰린 난곡 주민들은 주위의 무관심에 외로워보였다.

다음은 난곡지역 사진이 붙어 있는 선전판에 쓰여진 글이다.

WAY OUT? 어디로 꺼지란 말입니까? 산새도 힘이 들어 쉬어갔었다는 옛적 시흥땅 난곡 고개길이 높다하여 하늘 아래 첫동네. 이른바 달동네 신림 7동 101번지, 102번지. 30년전 가진 자들이 더 편히 살기 위해 없는 자들을 철거인이라는 미명 아래 공동묘지와 탄약고들이 있는 이 곳으로 쫒아내더니 이제 와서 흐르는 세월 속에 어느덧 이웃들과 정이 들고. 고생한 보람으로 삶을 이어 왔었는데. 아뿔사 이제 재개발 A.P.T를 짓는다고 단돈 몇 푼에 다른 곳으로 꺼져버리라니. 아이고 하느님, 부처님 맙소사 누구를 위한 재개발이란 말입니까?

또 다시 가진 자들의 재개발이란 말입니까? 없는 자들 단돈 몇 푼에 우리같은 세입자들은 어디로 사라지라는 말입니까? 우리는 이제 갈 곳이 없습니다. 이대로 죽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거리로 궐기하러 나왔습니다. 여러분 많은 협조바랍니다.

희망도 그 행복도 사라진 운명 속에 돈도 없고 집도 없고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삶을 이어 가란 말입니까? 해도해도 너무합니다. 오늘도 아이들은 말합니다. 엄마 우리 이제 어디로 가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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