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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 노정환
한 달여 전 6월 22일 토요일 오전이었습니다.
스페인과의 8강전을 앞두고 서울시청 앞 광장엔 오전부터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그날 아스팔트 위에서 한 아이를 만났습니다.
아이는 무릎까지 닿는 붉은색 티를 입고는 언니와 남동생, 엄마 아빠와 함께 응원을 나왔습니다.

그 아이를 보며 6월의 축제를 새롭게 느꼈습니다.

엄숙하기 그지없던 태극기로 치마를, 두건을, 망토를 만들어 한껏 자신을 가꾸면서 스스로에게 즐거움을 만들어줄 줄 아는 그런 사람들처럼, 그 아이 역시 '내 몸이야말로 나를 표현하는 데 더없이 유용하다'는 것을 느끼는 듯했습니다.

아마도 엄마 아빠의 손길이 닿았겠지만, 얼굴에 붙인 선명한 태극문양과 머리에 두른 빨간 수건만으로도 아이에겐 이미 충분히 즐거운 축제였습니다.

2.


ⓒ 노정환
아이와 헤어지면서 아빠에게 연락처를 받았습니다.
혹 사진이 잘 나오면 보내드리겠다고, 그러나 지금 사진 찍는 것을 배우는 중이니 큰 기대는 하지 말라며, 전화번호를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사진을 인화하고는 아빠의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 …
저의 실수였습니다. 전화번호를 잘못 적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의 책상서랍엔 갈 곳 잃은 사진 몇 장이 쌓여 있었습니다.

간혹 서랍을 열 때마다 그 사진을 빼보곤 합니다.
'아이에겐, 아빠에겐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될 토요일 하루 였을텐데…'
'기대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혹시나 기다렸다면 그것도 작은 약속을 한 셈이나 마찬가지인데…'

ⓒ 노정환

3.


ⓒ 노정환
오늘 인연을 믿어 봅니다.
그날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들 가족을 만났듯이, 그 아이의 아빠가 이 글을, 이 사진을 본다면 좋겠습니다.
가뿐한 마음으로 연락을 준다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서랍 속 사진의 주인공들이 사진을 받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딸을 바라보며 소탈한 웃음을 짓던 아빠의 얼굴에서 스치듯 보았던 평화를, 아이가 내게 가르쳐준 축제의 새로운 의미를, 이제 몇 장의 사진으로 대신 돌려드리려 합니다.

오늘 하루는 이 사이버 세상이 작은 인연 하나를 맺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거운 날이기를 바랍니다.

이제 곧
연락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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