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구축함(KDX-Ⅲ) 전투체계로 미국 록히드 마틴사의 이지스 체계를 결정한 것을 두고, '표면적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미국 해군도 아직 보유하지 못한 최첨단 기종을 한국이 도입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도입 결정된 이지스 전투체계는 'Base Line(B/L) 7.1'로 한국, 미국, 일본 해군이 동시에 구매하기로 했다고 군에서는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 가격 인하는 물론, "미해군이 자국 업체와 계약하는 방식과 동일하게 하자보증, 지체상금, 계약방식, 역구매, 후속지원 등을 요구하여 이를 모두 관철하는 유익한 성과를 달성"했다고 군에서 강조하고 있다.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미국도 아직 실전배치하지 않은 최첨단 기종의 도입을 관철시킨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를 두고 군에서는 상당한 성과라고 강조하고 있고, 언론과 많은 국민들도 이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왜 미국이 B/L 7.1을 한국에 판매하기로 했을까?
F-X 사업이 다시 한번 보여주었듯이, 미국은 한 두 세대 떨어진 무기체계를 한국에 판매해왔다. 이는 한국을 동맹관계의 하위파트너로 묶어두는 동시에 지속적인 무기 수요 창출을 위한 마켓팅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대단히 이례적으로 이지스 전투체계로 미국 해군도 아직 보유하지 못한 B/L 7.1을 한국에 판매하기로 했다. 이것을 한국군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협상 성과로 봐야 할지, 아니면 한미 군당국이 '최첨단 기종'이라는 외피 뒤에 다른 목적을 숨기고 있는 것인지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미국이 이지스 체계를 B/L 7.1로 업그레이드 한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클린턴 행정부 때부터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에 박차를 가해온 미국은, 하나의 유력한 방안으로 해상방어체제를 구상해왔고, 이 구상의 핵심은 바로 이지스 체계의 개량에 있다.
한국 해군도 도입하기로 한 B/L 7.1은 기존의 대공 방어 능력을 대폭적으로 변경해 탄도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요격 미사일의 유도·통제와 SPY-1 레이더의 탐지 및 추적 범위의 확장을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미국이 이지스 체계의 개량 등 무기체계 개발과 함께 추진해온 MD 전략은 바로 동아시아 동맹국들인 한국과 일본, 그리고 가능하다면 대만을 이 구상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은 초기에는 'No'라고 말했고, 일본은 B/L 7.1 요격 미사일인 SM-3를 공동개발하기로 하고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MD 구축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대만의 경우 '중국'이라는 큰 변수가 있어 공개적인 참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미·일 해군이 B/L 7.1을 함께 구매해서 배치하기로 한 것은, 미국의 핵심적인 동아시아 전략이 관철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한국군이 국민들의 눈과 귀를 속이고 여기에 편입되는 명백한 신호라고 할 수 있다.
미국 국방부가 이지스 전투체계의 한국 판매를 승인하면서, "이로써 한국과 함께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됐다"고 발표한 것을 단순히 외교적인 수사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이는 "노후한 나이키 미사일을 대체한다"는 외피를 쓰고 추진되고 있는 패트리어트 최신 개량형 도입 사업인 차기방공망(SAM-X) 사업을 통해서도 재확인할 수 있다. F-X의 유탄으로 사업이 취소되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지만, 군에 확인해본 결과 내년부터 다시 추진한다는 것이 군의 방침이다.
그런데 이 무기체계 역시 미군도 실전배치하지 않은 '최첨단 기종'이다. '왜 미국이 MD 관련 무기체계만 '최첨단 기종'을 판매하려 하는가'라는 의문은 이로써 간단히 풀릴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을 MD에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고, 한국군도 '자발적'으로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KDX-Ⅲ가 MD와 무관하다고?
그러나 국방부는 "MD 참여 여부는 정책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며, "KDX-Ⅲ가 MD와 무관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얼마전까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던 국방부가 최근에는 나름대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국방부가 "KDX-Ⅲ가 MD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세 가지이다. 첫째 이지스함은 하층방어(대기권 이내)만 할 뿐이지, 상층방어는 하지 못한다, 둘째 이지스함 도입 사업은 미국이 해상MD를 추진하기 훨씬 전인 1985년부터 추진돼왔다, 셋째 탄도탄 요격 미사일도 MD용이 아니라, 함정 방어용이다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군의 해명은 한마디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이지스함은 하층방어를 할 뿐이지, 대기권 밖에서 미사일을 요격하는 상층방어는 하지 못하기 때문에 MD와 무관하다는 주장은 한마디로 MD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MD는 기본적으로 다층-다각도로 구성되는 체제이다. 여기에는 물론 대기권 안에서 요격하는 하층방어와 대기권 밖에서 요격하는 상층방어가 포함돼 있다.
이지스함의 경우 요격 미사일로 SM-2 BlockⅣ 개량형을 사용할 경우 하층방어가 되고, 미국과 일본이 공동개발하고 있는 SM-3를 사용하면 상층방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정대로 KDX-Ⅲ 요격 미사일로 SM-2 BlockⅣ 개량형을 장착하면 이는 명백히 MD 체계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다.
이지스함 도입 사업이 미국의 해상MD 추진보다 앞서 추진되었기 때문에 MD와 무관하다는 주장 역시 말이 되지 않는다. 이지스함 도입 사업이 1985년부터 추진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사업의 작전요구성능에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이 포함된 시점은 1999년 6월 합참회의를 통해서이다.
군은 98년 8월말 북한의 대포동미사일 실험 발사로 미사일 위협이 증대됨에 따라 작전요구성능에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을 포함시켰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85년에 처음 소요제기 및 연구가 되었다고 해서, '초안'이 그대로 적용된 것이 아니라 군의 설명처럼 "안보 위협의 변화에 따라 탄도미사일 방어 능력을 새롭게 추가"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탄도탄 요격 미사일도 MD용이 아니라, 함정 방어용이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없다.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탄도탄' 요격 미사일은 '탄도' 미사일을 요격하는 것이 주임무이다. 물론 이 요격 미사일로도 전투기나 '크루즈' 미사일 등을 요격하는 것이 가능하다.
군 설명대로 MD용이 아닌 함정 방어용으로 요격미사일이 필요하다면, 탄도탄 요격 미사일이 아닌 대공 미사일을 도입·장착하면 된다. 그런데 왜 비싼 돈을 주고 개발도 되지 않은, 그리고 개발될 지도 불확실한 탄도탄 요격 미사일을 도입하기로 한 것인가?
결론적으로 "KDX-Ⅲ가 MD와 무관하다"는 군의 해명은 군 스스로 MD 참여 의혹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여기에 내년부터 한국에 배치될 미국의 MD 무기체계와 비밀리에 한미군사동맹 차원에서 조직된 MD 전담 기구 등을 고려한다면, 군이 국민들의 눈과 귀를 속이고 MD 참여 수순을 밟고 있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군은 이에 대해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