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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대학로에는 한 여름 밤에 노란 꽃이 활짝 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27일 대학로에는 한 여름 밤에 노란 꽃이 활짝 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여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온통 노란 꽃이 피었다. 7월의 마지막 토요일인 27일 아침, 마로니에 공원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낯선 풍경과 마주쳤다.

공원 곳곳에 묶여있는 노란색 리본. 한두 개가 아니었다. 입구에도, 나무에도, 가로등에도, 서울대학교 유적 기념비에도….

줄잡아 수천개는 될 노란색 리본은 마치 노란 꽃이 핀 듯했다.

하룻밤 사이 일이었다. "와∼, 이게 뭐야?" "이거 왜 매달아놨지?" 공원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궁금해했다. 하지만 아무런 안내도, 단서도 없다. 오직 바람에 휘날리는 노란색 리본뿐.

공원에 걸린 수천개의 노란리본

누가, 왜, 이런 일을 했을까. 마로니에 공원 매점 주인이 유일한 목격자다.

"어젯밤 12시 조금 넘어서 수십명의 젊은이들이 오더니 여기저기 노란리본을 달더라고. 술 한잔 먹고 자고 있는데, 나가보니 가관이야. 직접 리본을 묶기도 하고 긴 줄에 여러개 리본을 묶어서 빙빙 돌려. 그러더니 휙 던지고. 누구였냐고? 모르지.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었는데, 나중에 공원 저쪽에 빙 둘러앉아 술 한잔씩들 먹는데 한 30명쯤 되는 것 같더라고."

'수십명의 젊은이들'은 바로 노사모 회원이었다. '한밤 노란리본 달기 작전'은 기습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작업에 참여했던 이아무개 씨에 따르면 약 50여 명의 노사모 회원들이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모여들었다. 이들은 미리 준비한 5000여 개의 노란리본으로 공원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주로 키가 허락하는 높이까지였다. 그러기를 약 세시간. 짧은 작업 뒤풀이까지 마치고 새벽 3시쯤 헤어졌고 일부는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려 자신들의 '작품'을 디지털 카메라에 담았다.

이 일을 기획했던 정진구(29)씨는 "노사모 사람들에게 힘내라는 표시"라고 설명했다.

"저는 기본적으로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봅니다. 아무래도 노란색 하면 노사모 아닙니까. 침체에 빠져 있는 전국의 노사모 사람들에게 다시 힘을 내서 움직이자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 선관위가 노사모를 사조직이라고 유권해석한 상황에서 선거법 위반 여부는 고민해보지 않았나요.
"선관위 측에서는 '노무현'이라는 이름만 들어가지 않으면 된다고 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를 위반한 것은 없습니다."

그건 그랬다. 이들이 내건 5000개의 리본에는 아무 글씨도 쓰여있지 않았다. 오직 노란색 뿐이었다. 현행 선거법에 손발이 묶인 노사모는 이렇게 조금씩 꿈틀대며 오프라인으로 뛰쳐나오고 있었다.

노란리본 아래서 즐기는 시민들

마로니에 공원을 찾는 시민들은 수천개의 노란리본에 저마다 다르게 반응했다. 노란리본이 걸린 나무 아래에서 책을 읽던 한 대학생은 "가끔 공원에 오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라며 "영화 속에서나 보던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손을 꼭 잡고 지나던 남녀 대학생은 "누가 프로포즈 하는 건가요?"라고 말했고, 그 뒤에 오던 다른 커플은 "야외 결혼식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로에 산다는 두 명의 주부는 "재밌어요, 혹시 당신이 한 것 아니냐?"며 기자에게 되묻기도 했다. 수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연극을 구경하러 온 김지윤(31)·최원연(30)·오수영(32)씨의 추측은 더욱 구체적이었다.

"누가 노란 손수건을 달아달라고 했나, 교도소 출감하면서…. 그런 이야기 있잖아요. 남편이 출감하면서 부인에게 용서를 비는데, 용서를 하면 노란 손수건을 달아놓으라고. 하나만 걸어놓으면 되는데 부인이 혹시 못 볼까봐 나무를 온통 노란 손수건으로 장식했다는…."

27일 오전 시민들은 아무도 노란리본이 달린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사모와 노무현을 생각하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바람에 날리는 노란리본을 즐겁게 바라보고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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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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