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라마순’을 필두로 그 이후 여러 태풍들도 별다른 피해를 끼치지 않고 한반도를 지나간 지금, 바야흐로 바캉스의 계절이다. 지리산 시원한 계곡으로 피서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너른 동해 바다의 파도를 가슴에 안으러 대관령을 넘는 사람도 있겠다.
특히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올해에도 어김없이 ‘해외로! 해외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는 보도다. 이들 중 유럽행 비행기를 탄 사람이라면 아마도 대부분 화려한 패션과 향긋한 와인의 본고장 프랑스를 여행 계획에 포함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프랑스가 비단 ‘화려함’으로만 대변되는 나라는 아닌 듯 하다.
파리 서쪽 약 224km, 떼제베를 타면 오래 걸리지 않는 곳에 캉(Caen)이라는 조용한 도시가 하나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인 1944년 6월 6일의 캉은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을 통해 ‘오마하 비치’로 통칭되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의 해안. 그 뛰어난 자연 경관을 시기라도 하는 듯, 캉은 비극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북쪽으로 15km 정도만 가면 영국해협이 나오는 등 지리적인 위치로 인해 1346년과 1417년에는 정복왕 윌리엄 1세에 의해 한때 잉글랜드 영토가 되기도 하는 등, 캉의 역사는 격전의 역사였다. 특히 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을 당시, 영국해협을 사이로 상당히 근접한 거리에 있는 도시라는 점에서 대륙 탈환을 목적으로 하던 연합군으로서는 전략상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지방이었던 반면, 런던 공습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하던 독일군으로서는 영국 점령의 교두보이자 이미 점령한 대륙의 방어서 생사를 걸고 지켜야 할 도시가 바로 캉이기도 했다. 그 격전의 상흔이 아직도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처절하고 절박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파리에서 타고 온 기차에서 내려 도시 중심부로 들어가는 길에서부터 캉의 역사를 말해주려는 듯 길 이름부터 남다르다. ‘6월 6일 거리’. 도시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길의 이름이다. 물론 길옆에는 금박을 온몸에 두른 잔다르크 동상이 좀 남다를 뿐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길이 막 끝날 즈음 왼쪽으로 성당으로 보이는 건물이 하나 보이는데, 마치 무엇에 폭격이라도 맞은 듯 첨탑이 날아가 버린 상태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상하게도 미사라도 드리는 것인 지 종소리가 들려온다. 호기심에 그냥 지나칠 수는 없으니 한번 입구를 찾아본다.
첨탑이 ‘날아가 버린’ 성당이긴 하지만 기도를 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신도들에게는 그것이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무심하게 성당을 둘러보는 도중 무너진 첨탑에 버금가는 전쟁의 상흔을 만나게 된다.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상이 있는데 하체가 없다. 더군다나 없어진 하체와의 경계가 되는 가슴과 허리 부분이 까만 숯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닐텐데…. 신도들 중 영어를 할 수 있는 젊은이를 한 명 붙잡고 물어보니 제 2차 세계대전 때 부서진 성당도 반드시 수리해야할 부분만 고치고 대부분을 그대로 두었다 하고, 바로 이 그리스도상 역시 당시 폐허 속에서 뒹굴던 것을 그대로 달아 놓은 것이라 한다.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현장, 바로 그것이다.
일순 부끄럽게 보일 수도 있겠으나 전쟁의 상흔을 떳떳하게 드러내고 있는 이 ‘강심장’은 ‘평화 기념관(Memorial Peace)’까지 계속 된다. 캉 도심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 이 기념관은 각국에서 캐나다나 독일, 미국 등 각 참전국으로부터 온 메시지를 읽어보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것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직접 만져 볼 수도 있고, 각종 미디어 기기들을 이용해 이해를 돕고 있는 이 기념관은, 직접 격전이 치러졌던 해변을 걸어보았다고 해도 반드시 한번은 찾아보길 권하고 싶다. 격전의 현장에서 감성적인 면에서 느끼는 것이 있었다면, 기념관에서는 보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면에서 제 2차 세계대전과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머릿속에 들어오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그저 전쟁의 참화를 말하는 데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념관 지하에는 이제껏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들의 명패가 복도를 메우고 죽 늘어서 있다는 점이다. 자칫 전쟁의 참상을 말하며 당시의 비극을 환기시키는 데 주목적을 둘 수 있는 것이 이런 식의 기념관이 갖는 특징이라지만, 이곳 캉의 기념관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 데 특징이 있다. 다만 그토록 많은 이들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는데도 진정한 평화는 요원하기만 한 이 현실이 안타까울 뿐.…
캉은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직접 겪은 나라에 태어나 그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한 국민이라 그러한 것인지는 몰라도 캉의 수려한 자연경관보다는 그 비극의 역사에서 더 강한 어필을 받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일까.
현대적인 상점들이 잔뜩 들어찬 거리 사이로 중세 시대의 성곽이나 감시용 탑들이 아직도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긴 역사의 도시 캉. 가벼운 마음으로 더위를 피할 목적으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지만 한번쯤은 다소 심각한 마음으로 이러한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이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를 벗어날 수 없었던 도시들은 많다. 그러나 분명, 그 격전의 현장들 중에는, 적어도 한 도시가 존재한다.
프랑스 캉. 1944년 6월 6일.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월간 'PC사랑(www.ilovepc.co.kr)' 8월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