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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우리부터라도 친해져서 지역감정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남옥주 (사진왼쪽) 양과 장운규 군
"어린 우리부터라도 친해져서 지역감정 없어졌으면 좋겠어요"남옥주 (사진왼쪽) 양과 장운규 군 ⓒ 오마이뉴스 이승욱
대구 남구에 살고 있는 장운규(16. 봉덕3동. 경복중 3)군과 남옥주(14. 대명5동. 대명여중 2)양은 이번 여름방학도 '색다른' 경험으로 시작했다.

대구 남구청과 광주 북구청에서 매회 방학 때마다 실시하고 있는 '영호남 청소년 홈스테이 교류' 행사에 참여해, 운규 군은 광주를 방문하고 옥주 양은 광주의 친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지난 99년부터 실시돼 6번째를 맞게 되는 '청소년 홈스테이 교류' 행사는 대구와 광주지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각 지역을 번갈아가며 방문해 상대 지역의 문화와 생활관습을 익혀가는 행사. 이번 운규군과 옥주양이 참여한 2002년 하계 홈스테이 행사는 지난 25일부터 2박 3일 동안 대구와 광주지역 초·중등생 5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행사가 끝나고 사흘이 지난 30일 오후, 기자와 만난 운규군과 옥주양은 뜻밖의 인터뷰 요청에 쑥스러운 듯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광주지역의 친구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재미있었던 일들이 생각나 웃음을 짓기도 했다.

사실 운규군과 옥주양이 홈스테이 교류행사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해 여름방학 때 운규군은 광주 친구 박얀(16. 광주 문화중 3)군을 대구로 초대했었고, 옥주양은 유설향(15. 문산중 2)양을 만나기 위해 직접 광주를 찾은 경험이 있었다.

"처음에는 말로만 들어오던 광주가 어떤 곳인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학교에서 홈스테이 행사에 참여하려고 신청했어요. 작년에 얀이를 처음 만날 때는 둘 다 서먹서먹해서 말도 못 붙였는데 시간이 지나고 게임도 같이 하고 하다보니 금세 친해졌죠."

운규군은 특히 광주 친구들과 함께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을 소개했다.

"놀이공원에 친구들하고 같이 갔었는데 마침 비가 오지 뭐예요. 비를 맞으면서도 즐겁게 놀이기구 탔던 기억이 많이 나요."

옥주양은 생소했던 전라도 사투리가 잊혀지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광주 친구들하고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처음 들어보는 말들이 많았어요. 게다가 말투나 억양이 특이해서 그런 말이 나오면 아이들하고 같이 배꼽잡고 웃었던 일들이 재미있었어요."

처음 볼 땐 '서먹서먹', "하지만 친해지니깐 차이가 없어요"

운규군은 광주를 찾았을 때 처음으로 접했던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영상물을 보면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고 한다.

"광주에서 큰 일이 벌어졌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지 자세히는 몰랐어요. 그런데 이번에 광주에서 비디오를 보여주던데 충격적이었죠. 그렇게 심각한 일이 있었는지는 몰랐거든요. 그 당시에 신문들이 광주문제를 보도한 것도 봤는데, 광주 사람들을 폭도라고 불렀다고 하데요.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광주 사람들이 훌륭했던 것 같아요. 왜 신문이나 이런데서 그렇게 했는지 이해를 잘 못 하겠어요."

운규군은 5·18묘역을 친구들과 직접 찾아 참배를 하는 시간도 가졌다고 한다. 광주를 찾지 않는다면 얻을 수 없었던 소중한 체험이었다.

 영호남 청소년 교류 행사에 참여한 초중등생들.
영호남 청소년 교류 행사에 참여한 초중등생들. ⓒ 사진제공 대구남구청
이미 지난해 여름에 광주에 가봤던 옥주양은 광주 사람들에 대한 느낌을 "순수해 보였다"는 말로 짧게 답했다. 그리고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그네들의 말투에 매료된 듯 보였다. "광주를 직접 가보고 친구를 초대해보면서 딴 것보다 전라도 사투리를 많이 배운 것 같아요. 말투가 차이가 나니깐 엇갈려서 잘 이해 못했던 것들도 있었지만 친해지니깐 그때부터는 별 차이도 못 느꼈어요."

최근 들어서도 영호남 청소년 교류행사는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 99년 영호남 지역의 16개 지방자치단체가 각 단체별로 자체적인 홈스테이 사업을 매년 벌이고 있기도 하다. 그만큼 지역감정의 골을 없애야 한다는 '절박한' 요구들이 양 지역의 청소년들을 하나로 묶이게 하는 행사들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학생들은 '지역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왜 그런 갈등이 필요한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지역 감정에 대해서 아느냐'는 질문에 옥주양은 고개를 좌우로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나마 한 학년 위인 운규군은 대충이라도 안다는 눈치다.

"어른들이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쪽은 안 좋고, 이쪽은 좋다는 생각이 이해가 잘 안돼요. 광주 분들을 직접 만나니깐 나는 친절하기만 하던데요."

오히려 지역감정은 어른들의 이야기인 듯했다. 운규군의 어머니 손임순(44)씨는 "예전에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직접 전라도 분들을 만나서 그런 것도 아닌데 왠지 전라도 말만 들어도 듣기 싫어했던 때가 있었지만, 이런 교류 행사로 광주 친구들 부모하고 전화통화도 해보니깐 내가 왜 그땐 그랬나 하는 생각에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옥주양의 어머니 홍종란(42)씨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들 아버지가 전라도 사람이라면 왠지 안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아무래도 나이든 남자들은 군대생활을 하고 나면 그런 생각에 많이 빠지는가 봐요. 그래도 아직 애들은 어리니깐 지금부터 교류하고 친하게 지내면 서서히 지역감정이라는 것도 없어지겠죠."

"단지 사는 동네만 다른데 어른들은 왜 서로 옳다고만 싸우죠"

"사람은 다 같은 것 아닌가요. 단지 사는 동네가 다르다는 것뿐이잖아요. 그런데 어른들은 왜 서로가 옳다고만 싸우는 건지…. 그래도 아직 우리들은 어리잖아요. 우리부터라도 이런 기회로 친해져서 앞으로는 지역감정이라는 게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운규 군이 잊지 않고 어른들을 향해 '일침'을 놨다.

광주 친구들과는 편지를 직접 주고받거나 다른 청소년들이 즐겨 이용하듯 문자메시지에 전자메일로 소식을 주고받는다는 운규 군과 옥주 양. 지역감정의 '티끌'을 좀체 찾을 수 없는 '동심'에 어른들은 귀를 기울이고, 희망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친구들아 건강하게 지내고, 겨울방학에 다시 만나자"는 말을 마지막으로 아이들은 광주 친구들과의 설레는 만남을 다시 한번 기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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