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피서, 바캉스’하면 누구나 ’짜증섞인 설레임’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일상으로부터 일탈’이 주는 해방감과 동시에 그것을 누리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바닷가를 비롯한 휴양지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까닭에 쓰레기와 전쟁을 치르고 또 망가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기도 한다.
동해 바다가 푸른 깊이와 소란함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한다면, 서해 바다는 짭짤한 소금 냄새와 소박함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대천 해수욕장은 백사장이 아주 길다. 사람들은 그 길고 긴 백사장 길을 걸으며 경찰을 피해 폭죽을 터뜨리기도 하고 모닥불을 피우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노래를 부르거나 이야기를 나눈다.
소박하면서도 평화로운 해방감속에서 아주 특별하게 이 여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대천 해변가 청소년 상담 페스티벌 자원봉사자, 그들만의 특별한 여름나기 현장으로 들어가보자.
홍숙선씨는 청소년 상담기관에서 18년 동안이나 활동해온 베테랑 자원봉사자. 올해는 YMCA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책임상담원으로 대천 해수욕장을 찾았다.
이틀동안 해변가에서 청소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새 목이 다 쉬어 목소리가 거칠게 나온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 많은 청소년들이 마음 놓고 이야기를 털어놓았는지도 모르겠다.
홍씨는 "청소년들이 마음을 열고 다가와 성에 대해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었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오면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느껴요. 이런 느낌과 감동 때문에 오늘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고 이야기한다.
고 3때 아하센터 모의법정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그 인연으로 한달음에 자원봉사를 신청했다는 최윤진씨. 사회복지과 2학년 학생으로 콘돔과 임신진단시약 등 응급지원품을 나눠주고 있었다.
최윤진씨는 "제일 잘 나가는 물품은 역시 해변가의 필수품 모기약이죠. 특히 어른들은 공짜라고 하니까 막 와서 달라고 해요. 역시 공짜는 좋은 거죠?"하며 웃는다. 그녀는 "콘돔이나 임신진단시약은 필요한 사람에게만 나눠줘요"라고 귀뜸해준다.
최씨는 콘돔이나 진단 시약을 무료로 받아간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했다. 아무래도 우리 사회가 아직도 성에 대한 인식과 문화가 개방적이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는 것이다.
명지대 대학원에서 청소년 지도를 전공하고 있는 이진숙씨는 청소년들에게 콘돔을 나누어주는 것이 문란한 성문화를 조장한다는 견해에 대해 "청소년들에게 피임교육이 왜 필요한 것인지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한번 더 생각하게 하고 콘돔을 나누어준다면 별다른 문제는 없다고 생각해요. 예방 차원에서 신중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아요"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자원봉사자 가운데 청일점 김규남씨는 서초YMCA 약물상담센터 활동 경험을 살려 이번 활동에 지원했다면서 "이틀동안 성 문제, 술이나 담배와 같은 약물 중독, 진로진학 등 다양한 고민을 안고 있는 청소년들을 만났어요. 이번에 처음 해변에서 청소년을 만나 이야기했는데, 사무실에서 만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라며 역시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밖에도 사법연수원생들은 대천해수욕장 인근 텐트촌을 돌아다니면서 청소년들을 직접 만나 성의식 실태를 조사하고 책상을 나르고 선전물을 나누어주는 등 궂은 일에 구슬땀을 흘렸다.
이번 청소년 상담 페스티벌에서 땀흘리고 있는 자원지도자는 50여명. 이들은 청소년들과 함께 여름 휴가를 아주 특별하고도 값지게 보내고 있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대천해수욕장을 찾는 중·고등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해방감과 일탈을 걱정스런 눈빛과 시선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다.
이들 자원봉사자들은 한결같이 청소년들과 구체적으로 관심과 정을 나누면서 튼튼한 연대 체험을 할 수 있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이미 그들은 서로에게 너무나 필요한 존재로 한발짝 다가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