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0일 임치윤씨가 병역거부 선언을 하던 날, 부산병무청에 함께 다녀온 뒤 우리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시내에서 가까운 바닷가를 찾았습니다.
막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수평선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문득 '기분이 어때요?'하고 물었더니 '후련해요!'라고 치윤씨는 짤막하게 대답합니다. 나와는 달리 입영연기가 가능했던 그였지만,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다'던 말이 기억났습니다. 1년 전 병역거부를 결심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불안정한 신변과 미래 때문에 짐짓 괴로웠었노라는 고백과 함께 말이지요.
피의자의 신분으로 어느새 8개월이 지나 이제는 익숙해진 내 처지에선 이제 첫걸음을 내딘 그가 한편으론 염려스럽기도 한지라 이것저것 잔소리가 많아지는 것도 같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펼쳐진 눈앞의 망망대해처럼 몇 년이 걸려 어떻게 끝날지 모를 막연한 여정에 스스로 돛을 올린 길벗에게 슬그머니 어깨 걸고 웃어 보입니다. 우리가 가야할 저 너머를 함께 바라보면서 말이지요.
병역거부 문제가 사회여론화된 지 1년 반, 그 동안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괄목할 만한 것은 사법계의 변화인데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량이 1년 6개월까지 경감되고, 병역법의 위헌소지에 대한 심의가 헌법재판소에 계류중이라는 것이겠지요.
종교계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주최의 토론회가 수차례 진행되었고, 지난 7월 4일에는 몇몇 국회의원과 사회 각계 전문가가 참여한 '대체복무입법 공청회'가 개최된 바 있습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의 인정 여부 논란에서 한걸음 나아가 '대체복무제도 개선의 현실적 가능성과 대안모색'이라는 차원에서 의미 있었다 할 것입니다.
국제사회의 여론은 더욱 적극적이어서 지난 4월 58차 유엔인권위에서는 병역거부자의 인권개선을 위한 특별결의문이 채택된 바 있고, 오는 2003년 봄에는 한국에서 이 사안과 관련한 국제회의가 준비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의미심장한 것은 지금까지 특정 종교인들의 특별한 행위로 여겨지던 병역거부의 행렬이 유호근씨나 임치윤씨와 같은 비종교인에 의해 이루어짐으로써 병역거부권의 보편성이 입증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살아가며 총을 들지 않을 자유와 권리, 그것은 종교와 비종교, 정치와 비정치, 시대와 공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인간의 본원적 속성 중에 하나라는 사실 말입니다.
돌이켜보건대 이렇게 짧은 기간에 병역거부 문제가 한국이나 국제사회에서 급속히 사회여론화될 수 있었던 기저에는 지난 시절 병역거부 피해자들의 고통과 상처가 첩첩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란 생각에 한편으론 가슴 아픕니다. 어찌 보면 '국가적 차원에서 집단안보를 위해서는 한 사람의 권리 정도야 불가피하게 희생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명분도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희생당한 이들이 통계로 파악되는 것만으로 1만여 명이었다는 데 당혹감이 있습니다.
인권의 본질적 의미가 '단 한 사람일지라도 그 권리의 옹호'에 있음을 인정한다면 여전히 1600여명의 젊은이들이 양심에 따른 행위의 대가로 감옥에 갇혀 있는 한국사회에서 '양심의 자유'란 박물관 고서의 빛바랜 사어(死語)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 한 사람의 권리의 옹호'가 우리 모두의 자유와 해방으로 연결되는 것임을 지난 시절 인권신장을 향한 인류의 역사는 보여줍니다. 빗방울 하나, 눈송이 하나, 흙 한줌의 무게란 보잘것 없지만, 결국 가지를 꺾고 강물줄기를 만들고 태산을 쌓는 것은 그 '작은 하나의 쌓임'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양심의 목소리가 언젠가는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국가주의, 획일주의, 군사주의의 장벽을 허물 날이 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날선 비판과 매도 앞에 직면할 때면 순간 순간 분노가 치밀 때 있습니다. 서해교전이 일어나고, 사회고위층 자제들의 병역비리 문제가 불거지면 병역거부자들의 행위는 '이기주의의 발로'라 하여 싸잡아 매도당하기 일쑤입니다. 그것은 군부독재의 철권통치에 의해 반세기 넘게 주입되어온 반공·안보이데올로기의 환영에 우리가 휩싸여 있는 탓도 크겠으나, 비자발적인 징병제도의 억압성과 반인권적인 열악한 군복무경험에 의한 피해의식과 보상심리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병역거부자들뿐만 아니라 징병의 당사자인 대다수 한국사회 남성들과 만연한 군사문화 아래의 여성들 역시 크고 작은 피해자들임을 알기에 그들을 향해 비난하고 싸움을 할 생각은 내려놓은 지 오래입니다. 중요한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로서의 연대의식을 공유하며 징병제의 모순을 타파해가는 데 힘을 모으는 것이며, 군사주의의 무엇이 우리의 삶을 망치고 있는 것인지 남성과 여성의 어깨걸이로 지혜를 모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럴진대 그들을 향해 분노하고 비난한들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듯합니다. 하물며 평화와 공존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내 마음에는 폭력의 독을 가득 품은 채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고 해치는 일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병역거부 이후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참회가 더욱 절실해진 것은 그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2000년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의식의 향상을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예정된 항해입니다. 물론 풍랑이 거세어 두려움은 있겠으나 더욱 많은 젊은이들이 반세기의 낡은 배를 스스로 버리고 자유와 평화를 향한 열망으로 험난한 바다로 뛰어들 것입니다. 너무 늦기 전에, 우리 모두를 위한 새로운 배가 돛을 올리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인권하루소식 2002년 8월 8일자(제2151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오태양씨가 인권하루소식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