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강도는 여느 때의 그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검찰은 지금까지 김대업씨를 상대로 정연씨의 병역면제 경위 및 97년 대선 당시 `병역비리은폐대책회의' 여부 등을 조사하는 한편, 정연씨의 병역기록을 작성·관리한 구청과 병무청 직원 등을 상대로 기초조사를 벌여왔다.
1991년 병역면제 판정을 전후한 시기 정연씨의 체중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관련자료들까지 입수하여 분석한 검찰은, 이제 정연씨의 신검 과정에 관여한 참고인들을 상대로 정연씨가 체중미달로 병역을 면제받은 경위, 이 과정에 외압이나 금품거래가 있었는지를 캐는데 수사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검찰의 수사태도를 보면 정치권의 공방에 떠밀려 마지못해 하던 과거의 정치적 수사들과는 달라보인다. 차제에 병역비리 의혹의 진위여부를 가려내겠다는 의지같은 것을 엿볼 수 있는 모습이다.
물론 5년전에 논란이 되었던 의혹이 대통령선거를 불과 몇 달 앞두고 불거지고 검찰수사가 진행되는데 대해, 일부에서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회창 후보에게 흠집을 내기 위한 재탕·삼탕의 각본이라는 것이다. 과거 정치검찰에 대한 불신을 생각하면 그냥 일축할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상황은 이제 단지 음모나 아니냐를 따지고 있을 단계를 지난 것으로 보인다. 병역비리의 실체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이미 의혹의 근거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 진위여부를 명확히 가리지 않은채 이대로 덮을 수는 없는 일이 되었다. 만에 하나 병역비리가 실재했다면 그 당사자가 대통령후보 자리에 있을 수 없다는 당위적인 측면과 함께, 이회창 후보의 입장에서도 이제는 이 문제에 관한 분명한 결론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번 수사가 다시 흐지부지되어 덮여질 경우 앞으로 있을 상황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대선기간 내내 병역비리의혹은 다시 정치공방의 소재가 될 것이고, 만약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집권하게 되는 경우가 온다해도 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집권기간 내내 계속될 것이다. 그때의 국가적 위신 추락과 혼란이 어느 정도일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회창 후보의 입장에서도, 정말 떳떳하다면 이번 기회에 털어버리고 가야할 필요가 있는 문제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높게 나오고 있는 후보가 병역비리 의혹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국가적으로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차제에 이 의혹의 진위여부에 관해 명쾌한 결론을 내려 매듭을 지어야 한다는 여론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다.
검찰수사에 대한 정치권의 간섭 중단돼야
이런 가운데 정치권의 검찰흔들기가 강화되고 있어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검찰수사와 관련된 성명을 연일 발표하며 상대측에 대한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민주당은 12일 하루만도 4건의 논평을 내며 병역비리의혹 공세를 강화했다. 특히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에게 거듭 따진다"는 논평에서는, 한나라당의 수사간섭행위를 '특수공무집행방해혐의'라 규정하고, 검찰협박에 가담한 한나라당 지도부에 대한 수사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민주당의 이같은 공세 강화는, 물론 정치행위의 일환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검찰수사에 관한 정치적 논란만 증폭시킬 수 있는 관성적 행태라 여겨진다. 민주당은 검찰수사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자제하며 검찰수사를 지켜보는데 솔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것은 한나라당의 태도이다.
한나라당은 김정길 법무부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검토중에 있다. 12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일단 검찰인사의 결과와 상임위원회에서의 답변 태도 등을 보아가며 해임건의안 제출여부를 신중히 결정키로 했지만, 원내 과반수를 갖고 있는 한나라당의 법무장관 해임건의안 검토는 예사롭게 보아넘길 일이 아니다.
이는 현재의 검찰수사를 사실상 좌초시킴으로써 검찰수사에 대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카드임에 분명하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검찰수사에 대해 여러 의심과 경계심을 보여왔다. 그래서 검찰을 항의방문하기도 했고, 박영관 서울지검 특수 1부장의 교체를 요구했는가 하면, 박영관 특수 1부장과 노명선 부부장검사를 공무원자격사칭교사죄 및 직권남용죄로 고발하기도 하였다.
한나라당의 이같은 일련의 행위는 검찰흔들기를 통해 현재의 검찰수사 방향을 바꾸어놓으려는 것이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해 보인다. 검찰수사에 대한 반론과 이의제기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정치적 예단이 아니라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회창 후보가 결백하다면, 적어도 사실관계를 밝히는데 있어서는 오히려 협력하여 의혹을 풀겠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옳다.
만약 한나라당이 현재의 검찰수사가 중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예를 들어 특별검사제의 도입과 같은 진상규명의 대안을 진작에 제시했어야 했다. 그러한 대안의 제시조차 없다가 이제와서 검찰의 수사가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흐르자, 그에 제동을 거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오히려 "혹시 무엇인가 있어서 저러는 것 아니냐"는 더 큰 의혹을 불러올 뿐이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검찰에 대한 한나라당의 불신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의혹의 진위여부 규명이 이대로 덮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음을 한나라당은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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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지휘자는 한나라당이 아니다
최근 한나라당의 모습을 보면, 지금 검찰이 이명재 검찰총장이 지휘하는 검찰인지, 한나라당이 지휘하는 검찰인지를 묻게 된다.
검찰의 사건배당에서부터, 수사책임자 교체, 검찰인사, 법무부장관 해임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한나라당이 간섭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병역비리의혹 수사에 영향을 주겠다는 의사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정치검찰의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검찰을 무조건 믿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검찰이 과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없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실에 접근해 가는지 여부는 온 국민이 함께 지켜보며 감시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검찰수사가 중단되거나 강도가 누그러뜨려져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이제 '이명재 검찰'은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할 것 같다. 정치권으로부터의 외압을 물리치고 오직 진실을 밝혀내는 것만이 지금 이명재 검찰이 가야할 길이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그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잘알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검찰이 분명히 매듭짓고 가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수년간 우리는 소모적인 정쟁과 혼란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어있다. 지금 국민들은 정치권의 거친 외압 앞에서 검찰이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를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