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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릴 적 시골에 살 때 나는, 메뚜기 잡는 데는 선수였어. 작은 유리병 하나를 손에 들고 다니면서 보이는 족족 메뚜기를 잡아서는 그 병에 담았지. 흩어졌던 마을 아이들이 잡은 메뚜기를 한 데 모으면 족히 수백마리는 되었던 거 같아. 나이 좀 많은 오빠들이 누군가의 집에서 가져왔을 프라이팬을 돌 위에 얹고 불을 지핀 다음 메뚜기들을 한데 볶았어. 그 메뚜기 맛이 어땠나는 조금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냄새만은 생생하거든. 참 이상하지?

고소한 냄새 때문에 메뚜기가 익자마자 아이들은 낼름낼름 집어먹었어. 실컷 먹고도 프라이팬에는 여전히 메뚜기가 가득 남아 있어서 그 때부터는 기다란 풀이파리에 볶은 메뚜기들을 죽죽 꿰었지. 수십 마리를 꿰어서는 하루 종일 들고 다니는 거야. 생각날 때마다 한 마리씩 빼서 뽀그작뽀그작 씹어 먹었어. 혹시 비명을 지르고 있니? 엽기라고? 아니야, 옛날에는 너무 당연했는 걸. 요즘은 시골 아이들도 그런 건 안 먹는 거 같더라. 동네 슈퍼에 온갖 화려하고 달콤한 과자들이 널려 있으니까. 하지만 그 때는 먹을 것도 없었고, 돈은 더 없었으니까 뭐.

그렇게 잡아 먹었던 것들 중에 가재랑 새우도 빼놓을 수 없어. 신발을 벗어 들고 도랑물을 한 번 움키기만 하면 신발 가득, 작고 투명한 새우들이 바글바글했어. 갯가의 돌을 들출 때마다 뒷걸음질쳐 도망가던 가재들은 또 어떻고. 걔네들을 잡아다 빨갛게 구워 먹던 일도 어쩌자고 이렇게 생생하게 떠오르는 건지. 유년의 기억은 참 힘이 센 거 같아.

▲ 발가락과 가재. 녀석의 집게가 내 엄지발가락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아서 그리 위협적이지는 못했다.
ⓒ 김은주
왜 갑자기 메뚜기며 가재 타령인가 싶지? 사실은, 나 서울 한복판에서 가재를 만나고는 굉장히 감동해 있는 상태거든. 얼마 전, 성북동에 있는 삼청각에 이생강의 대금 연주를 들으러 갔다가 글쎄, 거기 계곡에서 가재를 만난 거야.

삼청각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밀실 정치의 산실이라 부르던 곳이야. 삼청각이란 도교에서 신선이 사는 집을 가리키는 태청, 옥청, 상청을 더불어 부르는 말이래. 이름도 거창한 이 곳은 권세가 웬만큼 있는 사람이 아니면 발도 못 들여놓는 곳이었어. 그러다가 얼마 전에 세종문화회관 부속 기관으로 새출발했지. 덕분에, 일반인들도 갇혀 있던 자연을 맘껏 볼 수가 있게 됐어. 숲이나 계곡의 처지에서 생각하면 지난 정권 때 이 곳이 닫힌 공간이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거 같기도 해. 덕분에 가재가 사는 1급수를 유지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 유하정에서 내려다본 삼청각 담장. 담 너머 산자락은 깊고 푸르다.
ⓒ 김은주
이생강의 대금 연주를 들은 곳이 유하정이란 곳인데, 이 팔각정 바로 옆에 계곡이 흐르고 있어. 그 날이 바로 인천이 37도까지 올라갔던 날이거든. 그러니 거기 들어가 발이라도 한번 담그고 싶은 마음을 도저히 억누르지를 못하겠더라. 발만 잠깐 담그고 나와야지, 작정했다가 거기서 가재란 녀석이 내 발을 콕콕 찌르며 놀자고 하는 통에 30분도 넘게 앉아 있었지 뭐야. 내 발가락을 먹이로 생각한 건지, 장난감이라 여긴 건지, 어쨌든 가재는 지칠 줄도 모르고 물 속에 있는 내 발가락을 열심히 찔러댔어. 고 앙증맞은 집게 발가락 두 개로 말이야. 간질간질, 기분이 너무 좋았어.

물론 공연도 썩 훌륭했지. 1937년에 태어난 분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건강함으로 사람들을 휘어잡은 이생강의 연주는 대금부터 단소, 퉁소, 태평소에 이르기까지 입으로 부는 모든 전통 악기를 넘나들었고, 서른 명 남짓한 관객들은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세심하게 새겨 들으면서 기꺼운 시간을 보냈지. 특별한 곳에서 하는 공연이라 더 맛있는 시간으로 느껴졌나 봐.

▲ 천추당에서 만난 종이로 만든 등. 강습도 하고, 외국인을 위한 일일 전통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 김은주
공연 끝나고 가재랑 한참 동안 놀다가 ‘아사달’에서 밥을 먹고 다시 도심 한복판으로 내려왔어. ‘아사달’이 있는 건물 ‘일화당’은 7.4 남북 공동성명 직후에 남북적십자 대표단의 만찬이 있었던 곳이래. 혹시 삼청각에 들를 일이 있거들랑 외국 사람들이 즐겨 찾아와서 잠을 잔다는 한옥집 ‘취한당’이랑 ‘동백헌’도 두루 둘러보고, 그리고 종이 공예품이 너무 예쁜 ‘천추당’ 구경도 놓치지 마. 산 속 깊이 자리한 옛날 양식의 건물들을 누비다가 도심의 한가운데로 내려오니까 잠시 신선이 되었다가 현실계로 온 기분이더라.

그렇게 멀리 않은 곳에 이런 깨끗한 숲이, 공간이 남아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어서 아주 기쁜 하루였어. 넌 어때? 하루 나들이로는 썩 괜찮았던 거 같지 않니?

덧붙이는 글 | * 달마다 둘째, 넷째 토요일 오후 3시에 ‘해설이 있는 전통예술무대’란 이름으로 공연이 계속된다. 30석으로 한정되어 있으니 프로그램을 확인하고 미리 신청하는 게 좋을 듯.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세종문화회관이랑 경복궁, 교보문고, 프라자호텔 앞에서 삼청각 가는 무료 셔틀 버스를 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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