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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두 명의 남동생이 있다. 막내 동생은 대학을 나와 현재 고등학교 교사로 살고 있다. 가운데 동생은 대학엘 가지 못했다. 고졸 학력을 안고 현재 용접 기능공으로 생활하고 있다.

가운데 동생은 병역의무를 마친 다음 곧바로 경남 거제도로 내려갔다. 신문광고를 본 탓이었다. 삼성조선소의 직업훈련소에 입소해서 용접 기술을 배웠다. 워낙 성실한 성품 덕에 여러 번의 시험에서 누구보다도 먼저 합격했고, 그 결과 열 개도 넘는 용접 관련 면허를 취득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용접 분야에서는 고도의 기술을 갖고 있는 셈이다.

거제도 삼성조선소 사원으로 10년 가까이 생활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서 결혼도 하고, 한때는 기름 냄새 풍기는 가게를 운영하기도 했으나, 곧 인근의 여러 작업장들을 전전하는 일용직 근로자 생활로 접어들더니, 지금은 차로 50분 거리인 당진화력 건설 현장을 다니며 일을 하고 있다.

IMF 사태 이전에는 하루 일당이 15만원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고 한다. 10만원이 훨씬 넘는 일당을 받고 일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고 한다. IMF로 한때는 일이 없기도 했으나, 워낙 성실하고 꼼꼼하게 일을 잘하는 까닭에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실업의 염려는 없는 것 같고, 현재의 일당은 10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나는 인근의 화력발전소들과 대산 석유화학단지 안의 거대한 공장 건물들이며 원통형의 석유, 가스 저장 탱크들을 볼 때마다 동생의 땀을 생각하곤 한다. 전에는 거대한 원통형의 탱크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몰랐다. 그게 용접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순전히 동생 덕이었다. 수많은 철판 조각들을 일일이 용접으로 이어 붙여 만든다는 것을….

요즘 같은 무더운 여름철에는 용접 작업이 더욱 어려울 것이다. 대개는 뙤약볕 속에서 두꺼운 작업복을 입고 안전모를 쓰고 용접면이라고 부르는 보호장구로 얼굴을 가리며 5000도의 열을 내는 불을 가지고 일을 하니….

동생의 작업 상황을 떠올리면, 집안의 컴퓨터 앞에 편안히 앉아서 글을 쓰며 살고 있는 내 팔자가 문득 죄스러워지기도 한다. 내 글 짓는 일이 동생의 용접처럼 뭔가를 '건설'하는 일은 못될지라도 절대로 죄 짓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하곤 한다.

그런데 동생은 무더운 여름날의 작업보다 더 어렵고 곤혹스러운 것이 작업 동료들과 '대화'가 잘 되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최근에 동생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얘기이기에 어떻게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일까?

짧은 휴식 시간에도, 점심 시간에는 더욱, 그리고 하루 작업이 끝난 후에 간혹 술자리를 함께 할 때 작업 동료들 사이에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는데, 사회 현안들에 대한, 또는 정치 문제를 둘러싼 '논쟁'도 꽤 많다고 했다.

그 논쟁 과정에서 동생은 상심도 많이 안게 되는 모양이다. 작업 동료들과 자리를 함께 할 때마다 상심과 고뇌가 더뎅이지곤 해서 마음이 한없이 무겁다고 했다. 동생에게서 들은, 최근에 동생과 작업 동료들 사이에서 있었다는 논쟁 내용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개판론과 냉소주의

우리나라 정치판에 대한 작업 동료들의 진단은 거의가 '개판론'과 냉소주의라고 한다.

"정치를 하는 것들은 다 똑같다. 이 사회 전체가 더럽고, 구조적으로 썩었기 때문에 깨끗한 ×은 존재할 수가 없다. 정치판은 더욱 그렇다. 개판인 정치판에서 깨끗한 ×을 찾고 그를 지지한다는 것은 무의미하고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다수가 동조하는 이런 논법에 대해 동생이 물었다고 한다.

"그럼, 당신도 더럽다는 말이냐? 개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도 있듯이, 당신도 더럽기 때문에 세상이 온통 더럽게만 보이는 것 아니냐?"

상대가 자신은 정치하는 ×들만큼은 더럽지 않다고 대답해서 동생이 또 말했다고 한다.

"그럼 희망을 가져야 할 것 아니냐? 내가 더럽지 않다면 계속 더럽지 않게 살도록 노력해야 하고, 정치판도 깨끗한 구석이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조금이라도 덜 더러운 사람을 찾아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니냐? 어떻게 하든지 세상이 덜 더러워지고 깨끗해지도록 나부터 노력하면서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러나 다수의 동료들은 "우리 같은 노동자들이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 수도 없고, 그런 생각 자체가 우리 같은 노동자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세상은 어차피 더럽게 굴러가게 되어 있다고 하면서….

병역 시비 재탕론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아들들의 병역 면제에 관한 시비들에 대해서도 다수의 작업 동료들이 음모론, 병풍론, 재탕론 따위의 용어들을 들먹인다고 한다.

어떤 동료는 자신도 병역 면제를 받았다며, 군에 가지 않은 것을 자랑처럼 늘어놓으면서 이미 5년이나 지난 얘기를 가지고 지금 또 다시 난리를 치는 것은 뻔할 뻔 자가 아니냐고 하더란다.

동생은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럼, 무슨 일이건 간에, 그 일이 명백하게 규명이 되었건 되지 않았건 간에 시간만 지나면 다 덮어져야 한다는 말이냐? 그럼, 장상 전 총리 지명자도 청문회에서 들추어진 문제들이 옛날에 있었던 일이니 다 덮어져야 하는 것 아니냐? 더 나아가 친일파 문제도 덮어져야 하는 것 아니냐? 왜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친일파 문제가 덮어지지 않는지 아느냐? 그것은 인간의 삶 속에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더러워진 세상이더라도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일은, 그 힘은 절대로 사라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세론

동생의 이런 논법에도 다수의 작업 동료들은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아무리 친일 문제를 거론하고 병역 시비를 붙잡고 늘어져도 한 번 잡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노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고 한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대세는 가닥이 잡혔고, 최근의 8·8 재보선에서 그것은 확인이 되었다. 부패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심판과 정권 교체는 이미 기정 사실이다, 국민의 선택을 부정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한 동생의 반론은 이러했다.

"비록 연말 대선에서 정권 교체가 이뤄진다 해도, 그것이 완전한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일시적인 승리일 뿐이고, 오늘의 일시적인 승리가 역사의 더 큰 단죄를 부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오늘의 승리에만 급급하지 말고 역사의 심판을 생각할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한다. 아무리 대세가 확실하고, 부패 정권 심판이란 미명으로 한나라당이 대선에서도 승리를 거머쥔다 해도, 그것으로 이회창씨 병역 시비가 완전히 종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모든 비리들이 말끔히 덮어지거나 해소되는 게 아니다. 그것들은 오래오래 더욱 끈질기게 불씨를 이어갈 것이다."

"현 정권이 부패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사실이지만, 당신의 그 실망이 진정한 실망이라면 연민도 가져야 한다.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고소한 감정까지 가져서는 안 된다. 왜 현 정권의 부패만 보는가? 왜 더 큰 부패와 온갖 비리들의 '원조'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가? 지금은 신나게 단죄를 해대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그래도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온갖 고초를 감내하며 평생을 바쳐 싸워온 사람이며, 통일 작업의 기초를 놓으려고 애쓴 사람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화를 위해 투쟁할 때 이회창 총재는 무엇을 했는가? 독재 권력에 봉사하며 오로지 양지에서만 호사를 누리고 산 사람이 아닌가? 총풍, 세풍 따위가 다 조작이고 음모라고? 아들들의 병역 시비에 대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도 없다고? 하늘을 걸고 맹세할 수 있다고? 그 말을 믿는 사람도 많겠지만, 하늘 두려운 줄도 모르는 사람으로 느끼는 국민들도 많다. 한나라당의 '부패정권 심판론'에 구역질을 느끼는 사람들이 지금은 열세인 것 같지만, 그 열세는 일시적인 대세에 영원히 지지 않을, 더욱 완강한 생명력을 지닌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동생의 작업 동료들은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네 까짓 게 뭘 안다고 그러냐? 겨우 고등학교 밖에 안 나온 용접 기능공 주제에 알면 얼마나 안다고 까부느냐? 너, 신문이나 제대로 보고 사냐? 이 신문 좀 봐라. 이 대 신문들을 보면 그따위 씨도 안 먹히는 소리 다시는 못할 거다."

작업 동료들이 작업 현장에서도, 식당에서도, 집에서도 보는 신문은 <조선일보> 아니면 <중앙일보>, 또는 <동아일보>라고 한다. 동생은 '조·중·동'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고, 매일같이 '조중동'에 사로잡혀 사는 작업 동료들을 상대로 더 이상 논쟁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동생이 마지막으로 했다는 말이 조금은 심금을 울리는 것도 같다.

"나는 고졸 학력의 못 배운 사람이지만, 이런 개똥신문에 글을 쓰는 쓰레기 같은 것들, 이런 개똥 신문사에서 일하는 기자 나부랭이들보다는 더 많이 깨어 있고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소위 배웠다는 것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는 현실이 그저 슬플 뿐이다."

1959년생인 동생은 보수적인 성향으로 흐르기 쉬운 40대 중반의 나이에 비해서는 사물을 보고 생각하는 것이 남다른 편이다. 하지만 동생의 순량하게 생긴 얼굴에도 어느덧 40대 중반의 세월과 함께 용접공 노동자의 고달픈 삶의 그림자가 점점 짙게 어려드는 것 같다.

평소 말수가 적은 동생이, 가족들 외로는 남들과 어울리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성적인 성격의 동생이 작업 동료들과 그런 논쟁을 벌였다니,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동생은 얼마 전까지 근처에서 사는 친구와 함께 일주일씩 차를 바꾸어서 작업 현장으로 출퇴근을 했다. 일주일씩 차를 바꾸면 그만큼 운전 수고도 덜고 연료비도 절약하게 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일 터였다.

그런데 동생은 며칠 전부터 그 친구와 따로 다니기로 했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싸우기 싫어서라고 했다.

새벽에 혼자 차를 몰고 가는 동생을 보자니 동생의 삶이 좀더 고달퍼 보이는 듯한 느낌이 내 가슴을 조금은 어둡게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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