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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회색도시에 생기가 돈다.
아이들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회색도시에 생기가 돈다. ⓒ 김인경
습관처럼 지나치는 곳들이 있다. 공원, 빌딩, 골목 등 항상 지나다니면서도 건물 그 이상도 이하의 의미도 없이 무심히 지나가는 곳. 하지만 그곳에 내 손길과 정성이 조금만 들어간다면? 딱딱하기만 하던 회색 벽과, 골목, 도시풍경은 어느 곳과도 바꿀 수 없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그냥 지나치기 쉬우나 그러기엔 아까운 풍경들이 있는 곳. 동천변에 색다른 풍경이 하나 더해진다.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싶을 정도로 줄기차게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지난 5일부터 순천 청소년축제 행사기획단은 동천변에 벽화그리기를 시작했다.

붓 끝 스칠 때마다 회색 벽에 생명력이

교사들이 그린 밑그림에 직접 색칠하고 있는 학생들.
교사들이 그린 밑그림에 직접 색칠하고 있는 학생들. ⓒ 김인경
벽화는 순천지역 미술교사 모임에서 '청소년, 역사, 꿈, 희망, 미래'라는 주제로 동천 벽면 가로 45m, 세로 3m 공간에 벽화 밑그림을 만들고 청소년들이 그 위에 여러 가지 색을 입히고 덧칠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14일 오후. 동천 천변도로 아래로 비를 피한 아이들은 새참으로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서른 명 남짓한 아이들의 손에는 페인트가 묻어 있거나 아직도 벽에 달라붙어 하얀 얼굴에 눈을, 하늘의 구름을 그려 넣고 있었다. 응원부대들까지 포함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이다.

붓끝에 살짝 묻힌 페인트 자국이 거친 회색 벽면을 쓸어 내릴 때마다 느티나무가 자라더니 푸른 하늘이 열리고 종이비행기가 머리 위로 난다. 그 아래에서 아이들은 또 벽에다 부지런히 붓질을 한다.

밋밋해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던 회색벽은 새들이 날아와 부딪혔다는 솔거의 소나무 그림까지는 아니지만 아이들의 손길을 거친 곳이면 활력과 생명력이 넘쳐나고 있었다. 마치 도시에 숨결을 불어넣듯.

이렇게 '청소년'들이 '꿈'과 '희망'을 담아 그은 한 획마다 삭막한 회색도시 흑백세상에서 싱긋하고 명랑, 쾌활한 천연색 세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벽화를 그려야 할 벽에 홈메우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
벽화를 그려야 할 벽에 홈메우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 ⓒ 김인경
벽화 그리기를 지도하고 있는 윤석우(37·순천고 미술지도) 교사는 "올해 청소년 축제가 공연 위주의 이벤트성 행사가 아닌 분산과 집중의 방식을 병행한 '연중 기획' 방식으로, 청소년들을 주체로 세워 아주 오래도록, 지속적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를 지향하는 점과 맞물려 기성세대와 청소년들이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공동으로 참여하는 벽화 그리기는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윤 교사는 "그래서 벽화 그리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청소년과 어른들의 소통과 문화적 호흡을 함께 하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꿈'과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매달리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벽화가 그려지고 있는 곳은 전면에 죽도봉이 바라보이고 동천의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며 자전거 도로와 조깅코스의 중간 휴식처로 도심 한복판을 관통하는 동맥과도 같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조명시설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음침하고 어두워 탈선의 장소로 전락할 위험이 있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축제 기획단은 더욱 이곳을 벽화그리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로 결정했다. 청소년과 시민들이 함께 그린 '벽화'를 통해 어둡고 음침한 곳에 밝은 조명이 들어오게 하고 야간에 시민들이 나와 감상하고 함께 놀 수 있는 문화공간 조성의 계기를 만들자는 것이다.

윤석우 교사는 "순천은 다른 지역에 비해 길거리 벽화가 적고 굉장히 아름다운 공간이 방치돼 있다"며 "벽화를 그리는 동안 이곳을 지나가는 시민들이 많은 관심과 호응을 나타냈으며 이런 관심 속에 우리가 그린 벽화는 청소년축제가 계속되는 동안 다음 세대까지 이어져 그려질 것이다"고 밝혔다.

길거리 벽화에 참여한 이수연 양
길거리 벽화에 참여한 이수연 양 ⓒ 김인경
벽화그리기에 참여하고 있는 이수연(순천여중 3학년)양은 "재밌어요. 처음에 이 넓은 공간을 언제 다 채우나 하는 걱정이 앞섰는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날 며칠 동안 함께 하면서 하나하나 채워가고 완성될 때마다 길거리 벽화에 참여한 것이 뿌듯하고 이 큰 일에 참여하게 돼 보람을 느낀다"며 활짝 미소짓는다.

수연 양은 이제 동천변을 무심코 지나치지는 못할 것이다. 완성된 벽화에 눈길을 주고 뿌듯한 마음으로 친구들을 손짓해 자신의 손길이 닿았던 흔적들을 찾아볼 것이다. 그러면서 순천이라는 도시에, 거리에 관심과 애정을 갖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걸어본다.

방학이지만 보충수업 때문에 작업은 주로 오후 2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진행된다. 벽화그리기가 완성되는 날 동천변에서는 소박한 자축행사와 더불어 벽화그리기에 참여한 학생과 교사들의 사인이 벽화 옆에 나란히 기록된다.

덧붙이는 글 | 순천청소년 축제 홈페이지 www.teenfestiv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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