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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경수로 원자력 발전소의 본격적인 건설을 알리는 '최초 콘크리트 타설식'이 열린 지난 7일 오전 북한 함경남도 금호지구에서 오색 불꽃의 축하속에 콘크리트 차량이 건설현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북한 경수로 원자력 발전소의 본격적인 건설을 알리는 '최초 콘크리트 타설식'이 열린 지난 7일 오전 북한 함경남도 금호지구에서 오색 불꽃의 축하속에 콘크리트 차량이 건설현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북한이 적극적인 외교 행보에 나서면서 남한을 비롯한 주변국과의 대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 정세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북미대화의 재개 움직임은 여전히 더디기만 하다. 특히 남북, 북일 사이에는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으나, 북미간에는 핵사찰 및 전력 보상 문제를 중심으로 양보없는 대치를 계속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화 재개가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에서 북미 양측의 신경전은 대단하다. 북한 외무성은 8월 13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경수로 사업 지연에 따른 전력손실 보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제네바 합의가 파기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왔다. 미국은 이러한 북한의 전력보상 요구를 일축하고는 북한이 핵사찰을 "지금 당장" 수용해야 한다고 압박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신경전은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첨예한 입장 차이는 대화 의제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북한은 전력손실 보상문제를, 미국은 북한의 핵사찰 수용 문제를 최우선적인 의제로 삼아야 한다며 양보없는 신경전을 계속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향후 한반도 정세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제네바 합의를 둘러싼 북미간의 갈등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북한과 미국은 지난 93-4년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놓고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가는 벼랑 끝 대결을 벌인 바 있다. 다행히 클린턴 행정부가 사실상의 전쟁을 의미하는 대규모 증원군의 한반도 파견을 승인하기 직전에, 김일성 주석과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간의 극적인 타협이 이뤄지면서 제네바 합의를 낳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제네바 합의의 파기는 한반도 정세가 94년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제네바 합의의 파기 여부를 가늠할 핵심적인 변수는 양측이 전력손실 보상과 핵사찰 수용과 관련해 타협점을 찾느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것처럼 미국은 북한에 전력손실을 보상할 의무가 없다며 북한측의 요구를 일축하고 있고, 북한은 '핵사찰은 2005년 이후에 받으면 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북한측의 논리는 이렇다. 제네바 합의에 따라 2003년까지 경수로를 완공해야 하는데 완공 시점이 5-6년 지체될 것이 확실한 만큼, 전력 손실분을 미국이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사찰 시점도 제네바 합의에 따라 "경수로가 상당 부분 완료된 이후", 즉 2005년 이후에 받으면 된다는 것이고, 핵사찰 기간 역시 3개월 정도면 된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측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경수로를 2003년까지 완공하겠다는 것은 일종의 "목표 시점"이기 때문에 사업이 지연된다고 해서 미국이 이를 보상할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핵사찰 문제와 관련해서도 제네바 합의문에 "경수로의 핵심 부품이 인도되기 전"에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협정을 완전히 이행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고 핵사찰을 받는 데 통상 3년 정도 걸리는 만큼, 핵심 부품 인도 예상 시점인 2005년보다 3년 앞선 "지금 당장" 핵사찰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책임 떠넘기기 속에 다가오는 민감한 시기

북한이 경수로 사업 지연에 따른 전력보상을 요구하며 이것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제네바 합의를 파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따라서 외무성 대변인 담화도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 이상의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볼 수도 있다.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먼저 파기하는 '초강수'를 둘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국 역시 "지금 당장" 북한이 핵사찰을 수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지금 당장" 경수로 사업을 중단하는 등의 제네바 합의 파기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문제는 제네바 합의 이행 문제와 관련해 북미간의 시각 차이가 워낙 큰 데다가, 양측의 입장이 본격적으로 충돌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시베리아 밤보다 더 어두울 정도로 극심한 전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전력은 곧 생존의 문제이다. 이에 따라 전력 보상이 없는 상태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핵사찰을 수용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오히려 제네바 합의의 열쇠를 쥐고 있는 쪽은 미국이다. 부시 행정부는 공식적으로 북한의 핵사찰 수용 시한을 못박고 있지 않지만, 올해까지를 시한으로 삼을 것이라는 보도와 전망이 미국언론과 연구기관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또한 부시 행정부는 이미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준수하고 있다는 것을 보증하는 것을 거부한 바 있기 때문에, 북한이 올해까지 핵사찰을 수용하지 않으면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파기한 것으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될 경우 부시 행정부는 미국측 의무사항인 중유 제공을 중단하고 경수로 사업을 지연시켜 나가면서 북한을 압박하는 수순을 밟아나갈 것이다. 이에 북한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예측하기 쉽지 않지만, 지금까지 보여온 태도로 짐작해볼 때 미국의 압력에 굴복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상황이 여기까지 치달으면 다음부터는 93-4년과 비슷하게 한반도 정세가 통제불능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와 같은 북미간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본격적인 대결 시점은 '올해말'이나 '내년초'가 될 것이다.

따라서 남한은 한반도 정세가 통제불능으로 치닫기 전에 '예방적 외교(preventive diplomacy)'에 나서야 한다. 남한의 경우 경수로 총 사업비 46억달러의 70%를 부담하고 있고, 제네바 합의가 위기에 빠져 또 다시 안보위기가 닥치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제3자'가 아닌 '당사자'라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북미간의 갈등을 조율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현실적이면서 합리적인 방안은 북한과 미국이 상대방에게 요구하고 있는 전력손실 보상과 핵사찰 수용을 맞바꾸는 방안을 추진하되, 미국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는 대북전력지원을 이 협상에 반영시키는 것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남북한의 합의 사항 이행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네바 합의 구하기'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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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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