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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를 피해 나무그늘에 앉아 있는 하반마을 주민들. 우주센터 때문에 그들은 정든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다.
더위를 피해 나무그늘에 앉아 있는 하반마을 주민들. 우주센터 때문에 그들은 정든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다. ⓒ 조경국
2005년에 완공될 우주센터 부지 한가운데 위치해 마을 전체가 이주해야할 전남 고흥군 봉래면 외나로도의 남쪽 끝 예내리 하반마을 주민들의 마음은 요즘 편치 않다.

보름이나 계속된 비로 마을의 여름 한철 장사가 물건너갔기 때문이다. 날씨는 맑지만 휴가철이 지난 터라 관광객의 발길 뜸하고, 적조까지 겹쳐 마을 앞바다에 위치한 목섬을 찾는 낚시꾼들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하반마을 주민들의 깊은 한숨은 여름 한철 장사 망쳤다고 내쉬는 한숨이라 하기엔 너무나 깊다. 우주센터의 건설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하반 마을은 400년 넘게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이곳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1톤 미만의 작은 어선으로 통발을 거둬들이거나 밭농사로 생계를 꾸려가는 이곳 주민들은 우주센터가 들어선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기 전까지 욕심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기상이 좋지 않은 날을 제외하고 아침나절 통발을 걷어 오면 적어도 5만원, 운이 좋은 날에는 20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 그리고 계절에 관계없이 찾아오는 낚시꾼들을 실어 나르는 일만으로도 넉넉하진 않지만 생활에 불편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현재 하반마을 주민들은 정부가 제시한 보상액이 생계대책을 마련하기엔 미흡하다며 재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하반마을 주민들은 정부가 제시한 보상액이 생계대책을 마련하기엔 미흡하다며 재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 조경국
그러나 하반마을 전체가 우주센터 부지로 들어간다는 발표가 있고 난 뒤 주민들의 걱정은 날로 커져만 갔다. 주민들 대부분이 노인들이고 이곳을 떠난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우주센터가 들어선다는 정부의 발표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이야기였다.

"보상비 안 받아도 좋응께, 이곳에서 살게만 해주시오"

지난 3월 주민들은 우주센터 건설의 주무청인 한국항공우주연구센터(이하 항우연·www.kari.re.kr/)가 있는 대전까지 찾아가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했다. "보상비는 필요없으니, 마을에서 예전처럼 살게만 해주시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답변은 정부 사업이니 어쩔 수가 없다는 것. 결국 하반 마을 주민들은 체념을 안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예 우주센터 건설 사업 계획 자체가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고향 잃고 난 뒤 닥쳐올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아무런 신경도 써주지 않고 있어요. 주민 대부분 연세가 높으신 분들이지만 이곳에서는 일정 부분 경제활동을 합니다. 하지만 이곳을 떠나면 그분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도 힘들 겁니다. 고향을 잃었다는 상실감도 문제지요."

외지에서 생활하다 외환위기가 한창이었던 97년 낙향해 사슴 농장과 어업으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지만 또 한번의 위기를 맞은 노정민(42)씨는 아직 젊은 자신보다 마을 어르신들이 더 걱정이라며 앞으로 마을에 닥칠 일을 염려했다.

"하반 마을 주민들 중에 보상비 타간 사람은 없다니까"

"평생을 이곳에 살았는데 어딜가겠어." 해변에서 작은 가게를 하고 있는 김소임(62)씨(맨 우측). 하반마을의 60대 이상 주민 대부분은 이주를 원하지 않고 있다.
"평생을 이곳에 살았는데 어딜가겠어." 해변에서 작은 가게를 하고 있는 김소임(62)씨(맨 우측). 하반마을의 60대 이상 주민 대부분은 이주를 원하지 않고 있다. ⓒ 조경국
"하반 마을 주민들 중에 보상비 타간 사람은 없을걸. 보상비 받아간 사람들은 예전에 마을을 떠난 사람들이지. 그 사람들이야 이제 외지에 살고 있으니 상관없겠지만 여기 사는 사람들은 아무도 보상비 타갈 생각을 안 해. 어떻게 보상비를 타가나. 만약 타간다고 해도 그 보상비를 가지고선 다른 곳에 가서 생활도 못혀."

현재 정부가 우주센터 부지 보상비로 책정한 것은 모두 101억. 하반 마을에 49가구가 살고 있으니 평균으로 따진다면 가구마다 2억 정도의 보상비가 나가는 셈이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 앞에서 "2억 정도 받으시면 다른 곳에서 생활이 가능하실 것도 같은데"라고 이야기를 꺼냈다가 혼이 났다.

"2억은 무슨 2억이야. 반이 넘는 가구가 보상비가 7천만 원이 안돼. 그것 가지고 집사고 먹을 거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겠어. 작게는 2천만 원 나온 이웃도 있단 말이야. 그 돈 가지고는 전세도 못얻어. 여기서야 사는 것 먹는 것 걱정하나. 바다에 나가서 고기잡고, 텃밭이라도 일구면 먹을 거 걱정 안 해. 그러니 누가 보상비 받아갈 생각을 하겠나."

목섬과 바다가 훤히 보이는 나무그늘 아래 모여 있던 주민들은 보상비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높아졌다. 인심 좋고 경치 좋은 섬 마을이 정부사업 때문에 나날이 황폐해지고 있는 것이다.

"20년 이상 국립공원으로 묶여, 재산권 행사도 못했어"

외나로도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지니고 있으며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로인해 주민들은 20년 이상 재산권 행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외나로도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지니고 있으며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로인해 주민들은 20년 이상 재산권 행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 조경국
"말이 좋아 한려해상 국립공원이지. 그것 때문에 이 마을 주민들 재산권 행사도 제대로 못했어. 정부 고시가도 20년째 거의 변하지 않았고, 보상비 책정도 고시가에 맞췄단 말이야. 그러니 주민들은 더욱 분통터지지."

배를 손보고 있던 김동민(67)씨는 그 동안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도 정부쪽에서 전혀 고려를 해주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평생 살던 고향을 떠나야 하는 것도 서러운데, 먹고 살길까지 막막하게 만드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는 것이 김씨의 이야기다.

외나로도에 들어서자마자 보였던 플래카드. 우주센터 건설 발표 이후 외나로도의 땅값은 눈에 띄게 오르고 있다.
외나로도에 들어서자마자 보였던 플래카드. 우주센터 건설 발표 이후 외나로도의 땅값은 눈에 띄게 오르고 있다. ⓒ 조경국
외나로도에 우주센터가 유치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고 난 후 이곳 땅값이 올라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외나로도로 들어서자마자 땅을 매입한다는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봉래면 소재지의 땅값도 평당 5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하반마을의 토지보상가(대지기준)는 평균 15만원 내외로 책정돼 있고, 토지를 상중하로 나눠 각각 다른 보상가가 책정돼 있어 주민들의 불만은 더 더욱 쌓여가고 있다.

만약 정부의 제시안을 받아들여 다른 곳으로 이주한다고 해도 나로도를 떠날 수는 없다는 것이 호반마을 주민들의 한결같은 이야기인데, 보상비를 받는다 해도 벌써 땅값이 올라버린 나로도 어디에도 터전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들의 하소연이다.

결국 하반마을 주민들은 지난 2월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우주센터의 생산유발효과는 연계사업 투자 4014억원,관광부문 4130억원 등 모두 8144억원에 달할 전망"이라는 장밋빛 미래의 그늘 속에서 걱정과 한숨만 깊어지고 있다.

고흥군 우주센터 지원사업소 앞에 세워져 있는 로케트 모형. 주민들은 보상문제와 관련, 민원은 늘어나고 있는데 고흥군 측이 항우연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고흥군 우주센터 지원사업소 앞에 세워져 있는 로케트 모형. 주민들은 보상문제와 관련, 민원은 늘어나고 있는데 고흥군 측이 항우연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 조경국
""자치단체가 우리에게 해주는 것이 뭐 있어"

"고흥군은 우주센터 유치했다고 김칫국만 마시고 있는 거야. 감정평가를 제외한 보상 대상 조사나 보상비 계약건은 고흥군이 하고 있다는데 주민들의 마음이 이렇게 돌아서 있으니 제대로 진행될 리 있나. 정작 주민들이 하소연하면 자신들은 주무관청이 아니기 때문에 항우연과 이야기하라 하니... 자치단체에서 우리에게 해주는 것이 뭐 있어."

길을 가다 마주친 마을 주민은 자치단체가 제대로 할 일을 하고 있지 않다며 답답한 마음을 털어 놓았다. 우주센터와 관련된 민원문제를 고흥군 측이 주민들을 대신해 주길 바라고 있지만 권한이 없다는 핑계로 주민들이 직접 항우연과 연락하는 형편이라며 고흥군의 안이한 태도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총 520필지의 보상 대상 토지 중 보상이 완료된 토지는 28필지 밖에 되지 않아 지난 6월 착공될 예정이었다가 다시 11월로 연기됐던 재착공 계획마저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토목공사 입찰과 인허가 문제는 다음달 중으로 마무리될 전망이지만, 보상비 문제는 전혀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과학기술부는 우주센터 조기 착공을 위해 토지보상비를 포함한 사업비 647억원의 예산 증액을 요청해 둔 상태다. 그러나 자신들의 생계 문제가 걸려 있는 하반마을 주민들로선 정부나 항우연의 납득할 만한 대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버틸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05년 완공 계획...'인공위성 자력발사'
생산유발효과 8144억원 추정, 무인 비행선 제작 설비도 착공예정

▲ 우주센터 전체 조감도.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에 150만평 규모로 건설될 우주센터는 올해 착공을 시작해 2005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총사업비 1500억원(추가예산 제외)가 들어가는 우주센터는 과학위성 발사대와 발사 통제시설, 추적레이더, 발사체 조립시설, 우주체험관 등 총 11개 시설을 갖추게 된다.

우주센터는 2005년에 소형 위성인 과학위성 2호 발사를 시작으로 2015년까지 과학위성 5회, 다목적 실용위성 4회와 예비발사 26회 등 모두 35회의 위성발사가 이뤄질 계획이다. 과학 기술부의 계획대로 우주센터가 2005년 완공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9번째의 인공위성 자력 발사국이 된다. 특히 인공위성 발사 때마다 외국에 지급해 오던 발사비용을 10년 동안 1000억원 가량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주센터 뿐 아니라 국비 571억원을 투입해 오는 2007년까지 16만평 규모인 고흥 간척지구내에 무인 비행선 제작을 위한 지상설비와 활주로 1개, 격납고 2동도 함께 건설할 계획이어서 고흥은 우리나라의 항공우주산업의 메카로 떠오를 전망이다.

산업연구원과 광주·전남발전연구원이 지난 2월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3단계(2002∼2005년, 2006∼2010년, 2011∼2015년)로 추진될 우주센터의 생산유발효과는 연계사업 투자 4014억원, 관광부문 4130억원등 모두 8144억원에 이르며, 이에 따른 고용효과는 연계사업 5547명, 관광부문 6446명 등 모두 1만 1993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우주센터를 찾는 관광객은 2005년에만 138만 2000명, 2010년 163만 2000명, 2015년 207만 9000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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