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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소년> 책겉장
<까마귀 소년> 책겉장 ⓒ 야시마 타로/비룡소
책이름 : 까마귀 소년
지은이 : 야시마 타로
옮긴이 : 윤구병
펴낸곳 : 비룡소(1996)

<까마귀 소년>은 1955년에 나온 책입니다. 일본에서 반국국주의 운동을 하다가 더는 일본에서 살 수 없어서 미국으로 건너갔던 야시마 타로라고 하는 이가 그려낸 책이죠. 그이가 그려낸 <까마귀 소년>은 자기 자신 모습이기도 하며, 남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도 부지런하고 꿋꿋하게 자기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이 땅 모든 힘없고 가난한 보통 사람이기도 합니다.

`땅꼬마'라는 아이가 나옵니다. 키도 작고 두려움에 젖어 쉽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아이죠. 땅꼬마는 초등학교 다니는 다섯 해 동안, 그리고 6학년이 되어서까지도 따돌림받고 혼자서 외로이 삽니다. 그러나 그렇게 따돌림을 받으며 살면서도 학교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다녔다지요.

그러던 중 6학년 때 그 학교로 새로 온 이소베 선생은 땅꼬마가 무슨 꽃은 언제 피고, 어디서 자라고, 돼지감자는 어디서 캘 수 있는가를 잘 알고 있는 걸 깨닫고 땅꼬마에게 조금씩 눈길을 두며 그 아이가 학교를 잘 마치고, 자기 모습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선보일 수 있게 학예회 자리를 마련해 줍니다.

학예회 자리에서 땅꼬마는 자신이 여섯 해 동안 학교로 오는 길에 터벅터벅 걸어서 오가는 동안 만나고 들었던 까마귀 소리를 들려 줍니다. 알에서 갓 깨어난 까마귀부터, 엄마 까마귀 소리, 아빠 까마귀 소리, 슬플 때 우는 소리, 기쁠 때….

땅꼬마는 까마귀 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가고 학교로 오는 길에 만난 자연 속에서 자기를 담금질한 거죠. 외로움, 괴로움, 슬픔, 쓸쓸함을 까마귀 소리를 들으며, 꽃과 인사하면서, 흙을 밟고 흙 냄새를 맡으며 여섯 해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때 6학년 학예회에서 그동안 자기 안에 쌓였던 울음을 까마귀 소리에 담아서 털어 놓았습니다.

여섯 해 동안 땅꼬마를 괴롭히고 따돌렸던 아이들에게 시달림을 받으면서도 자기 삶을 놓을 수 없고, 자기 삶을 끊임없이 당기면서 살아가야 하던 자기 목소리이기도 한 까마귀 울음 소리.

그 가슴을 찢는 까마귀 울음 소리를 들은 이소베 선생도, 반 아이들도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들이 땅꼬마에게 무슨 짓을 했는가를 느낍니다. 그리고 함께 눈물을 흘립니다.

그때부터 땅꼬마는 `까마귀 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죠.

까마귀 소년. 그래도 까마귀 소년이 다닌 학교에서는 여섯 해만에 그 아이를 보아 준 선생이 있고, 그 선생이 가운데에 서서 다른 아이들에게 자기가 그동안 무얼 어떻게 해 왔는지를 똑똑히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삶은?

지금 우리 목소리를, 우리 삶을 제대로 보면서 우리 삶을 보듬는 이웃은, 정치인은, 대통령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나아가 우리 목소리와 삶을 담아 주는 매체는 있는가요?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얼마나 담아 주고 있는가요.

가만히 생각해 보며 <까마귀 소년>을 들춰 보세요. 눈물 한 줄기 뺨을 타고 흐르면서도 시익 웃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남습니다. `까마귀 소년'이 다니던 학교에서는 그 뒤로 `땅꼬마'처럼 따돌림을 받는 아이가 없었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학교에서 따돌림 받는 아이가 없는지. 나아가 야시마 타로씨가 일본에서 1930년대에 반군국주의 운동을 하다 쫓겨나다시피 제 나라를 떠나야 했듯, 옳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따돌리고 내쫓는 환경이 아닌지. 다른 나라가 아니라 바로 우리 나라가 말입니다.

중국에서 온 조선족을 뱀눈으로 보며 그이들이 `조국'이라는 생각을 품고 찾아온 나라에서 환멸과 비굴함을 느끼며 속으로 `까마귀 울음 소리'를 삭히고 있지는 않을까요? 먼 옛날이 아니라, 가까운 날을 헤아려 보아도 미군 장갑차에 짓밟혀 죽은 아이들 목소리는 묻히기만 하고, 대통령 후보 아들이 군대에 안 가도록 빼돌리고도 뉘우치는 말 한 마디 없는 이 나라 정치 현실 속에서 세 해 꼬박 땅바닥을 박박 기는 군대 생활을 한 수많은, 수백, 수천만에 이르는 돈도 빽도 힘도 없는 사람들 속에 담긴 `까마귀 울음 소리'는 누가, 언제, 어떻게 들어줄까요?

덧붙이는 글 | * 그림책은 보통 어린이만 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림책은 길게 쓰는 소설과는 또 다른 `시'가 있듯, 이야기를 풀어가고 담아내는 또 다른 형식입니다. 그래서 그림책을 볼 때면 시를 읽듯, 그냥 그림을 보고 사진을 보듯 가슴을 잔잔히 적시고 울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린이만 보는 그림책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도 함께 나누며 가슴 뭉클함, 가슴 적심을 이끌어 주는 그림책 이야기를 가끔씩 펼쳐 보렵니다.


까마귀 소년

야시마 타로 글.그림, 윤구병 옮김, 비룡소(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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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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