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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준 씨.
최상준 씨. ⓒ 오마이뉴스 이승욱
경북 칠곡군에서 벼농사만 평생 짓고 살았다는 최상준(61. 북삼면 율리)씨. '평범한 농사꾼'인 최씨이지만 그를 평범하게만 볼 수 없는 것은 그의 특이한 이력 때문이다.

최씨는 지난 99년 칠곡군을 상대로 처음 정보공개 청구를 신청한 이래 지금까지 경북지역 23개 시·군을 상대로 총 300건의 행정정보 공개신청을 한 인물. 뿐만 아니라 정보공개 청구에 '불응'하는 칠곡군수, 구미시장, 경북도지사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해 모두 승리를 거머쥔 주인공이기도 하다.

최씨가 처음 정보공개 청구를 신청할 때만 해도 '사태'(?)가 이쯤 될 것이라는 짐작은 못했을 터. 최씨가 정보공개 청구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가 지난 99년쯤이었다. 당시는 신문지상을 통해 대구지역 한 시민단체의 소식을 듣고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최씨는 이때 자신이 '직접 해보자'는 마음을 먹게 됐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이 관청을 대할 때면 죄스런 마음이나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잠재의식 때문에 주저해요.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해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시민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이고, 지방자치를 앞당기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최씨의 시도는 처음부터 벽에 부닥쳤다. 적법한 절차를 통해 정보공개를 청구하더라도 행정관청의 '입맛'에 따라 '비공개'라는 낙인이 찍혀 되돌아오기 때문. 당시 최씨는 행정관청에서 '선택적'으로 정보공개를 하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여기에 대해 최씨는 일부 공무원들의 '이중성'을 지적했다.

행정관청 '입맛'에 따라 '비공개' 낙인

"정보공개 하라고 하면 한결 같이 (관련 공무원들은) '당연히 공개하는 게 맞다'면서 맞장구를 치죠. 하지만 이건 두 얼굴을 가진 거예요. 전화로, 구두로 하면 그렇다고(공개해야 한다고) 하지만 막상 서류를 들이밀면 상황이 틀려지죠."

특히 판공비와 시책추진업무추진비 등에 대한 '비공개'가 많다고 최씨는 귀띔한다. 그리고 거기엔 대충 이런 이유가 뒤따른다. '개인신상에 관한 내용이다' '정보량이 너무 많아 행정력 낭비다' 등등.

정보공개 신청이 해당관청의 변명으로 난관에 봉착하면 최씨는 행정심판제도의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마땅치는 않았다. 최씨는 한마디로 이를 두고 '가재는 게 편'이라는 속담에 빗대어 설명했다.

"돈 안들이고 할 수 있는 게 그래도 행정심판 신청인데 이것도 여의치 않죠. '가재는 게 편'이라고 승소 재결이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또 같은 건이라도 군수 건은 기각되고, 부군수 건은 승소하는 상이한 결과가 나오죠. 게다가 행정심판 결과가 구속력이 없어요. 해당관청에 집행을 강제하기 위해선 '의무이행심판' 청구라는 걸 또 해야하니…."
최씨는 아예 "이럴 바에야 행정심판제도를 폐지하는 게 오히려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며 그 동안의 분을 삭이지 못했다.

결국 최씨가 문을 두드린 곳은 '법원'이었다. 지난 2000년 하반기에는 칠곡군청이 해당군수의 '시책업무추진비'에 관한 집행내역과 관련 증빙서류 제출을 거부하자 행정정보 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을 낸 것. 그리고 구미시장을, 또 지난해 5월에는 "지난 96년부터 5년간의 시책추진업무추진비 60억4500만원의 내역을 공개하라"며 경북도지사와 법정싸움을 시작하게 됐다.

현재 그의 재판 성적은 '백전백승'. 칠곡군과의 소송에서는 1심과 2심 모두 최씨가 승소했으며 현재는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23일에는 구미시장과 경북도지사를 상대로 한 재판에서 모두 1심 승소 판결을 얻어냈다.

칠곡군·구미시·경북도 상대 소송 '백전백승'

지난 23일 대구지법 제2행정부는 판결문에서 "원고가 요구하는 도지사 업무추진비에 관한 집행내역과 관련 증빙서류의 양이 많아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만 열람하게 한 뒤 복사해 주겠다는 경북도의 입장은 사본 교부 제한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요지로 원고 최씨의 손을 들어줬다.

마땅한 변호인도 선임하지 않고 시민단체와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사례를 경험하고 있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관청과의 '싸움'을 벌인다는 최씨는 "내가 이런 일을 벌이고 있으면 마누라는 '불안해서 못 살겠다' 원성이 많죠. 날아오는 우편도 법원에, 검찰청에, 관청에서 날아오고 전화는 얼마나 오는지…, 허허."

하지만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던 이웃들도 이젠 최씨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주위에서 쓸데없는 일 한다고 말도 많았어요. 하지만 요즘은 '우리가 낸 세금이 우리를 위해서 쓰이지 않고 엉뚱한 곳에 흘러가는 것을 누가 용서할 것이냐'면서 내 의견에 동조하죠."

최씨는 "언젠가는 대구지법에 재판 때문에 갔더니 한 판사가 '당신은 왜 그렇게 자주 소송을 하느냐'면서 놀라워했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판사들마저 최씨의 성실함에 '탄성'을 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최씨는 아직 손을 놓기는 이르다고 말한다.

"아직 언제까지 이런 일들을 반복할지는 모르지만 '행정이 많이 나아졌다', '주민들을 인정해주는 행정을 한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는 계속해야겠죠. 난 돈도 없고, 지식도 없지만 다만 얼마라도 그 변화를 앞당긴다면 좋겠죠. 변함이 없다면 어느 누군가는 주민으로서 권리를 요구해야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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