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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레인이 산소를 만들고 있다.
포크레인이 산소를 만들고 있다. ⓒ 최성수
고모님을 생각하면 늘 함께 떠오르는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던가, 원주에 사시는 고모님 댁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 이미 고모부님은 돌아가시고, 고모님은 딸 하나에 아들 셋, 다섯 식구가 가난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마침 점심 때라 상을 차려주는데, 다섯 식구에 나와 우리 어머니까지 일곱이 작은 상에 둘러 앉았습니다.

그런데 내 밥그릇에만 계란 프라이가 올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모네 아들 딸들은 모두들 내 밥그릇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살림이라 모두들에게 계란 프라이를 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날 내가 혼자 그 계란 프라이를 다 먹었는지는 기억에 없습니다. 다만 지금도 내 밥그릇을 바라보던 고종 사촌 형제들의 눈빛은 기억에 선합니다.

자식들 모두 이제는 장성하여 제 몫의 일을 잘 해내고, 시집가고 장가들어 손주들 재롱 보며 사실만 하니 그만 세상을 뜨신 고모님. 그 고모님을 마지막 보내기 위해 사람들은 산 발치에 모여 무덤을 만들고, 낙엽송 숲에 솥을 걸어 국을 끓이고 술을 마셨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고향을 떠난 사람이지만,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잊지 않고 바쁜 농사일을 접어두고 고모님의 저승길을 배웅했습니다. 마을 이장인 내 친구도 수해 복구로 바쁜 틈을 타 장지에까지 와 산역(山役)에 동참해주었습니다. 친척 동생들이야 고모님 장례니 그렇다쳐도, 동네 주민들은 정말 고추 따기에 논 피사리에 한창 바쁜 때인데도 찾아와 직접 회를 다져 주었습니다.

미리 포크레인이 무덤을 파고, 삽으로 관 넣을 곳을 만들어 놓았지만, 그러나 그냥 관을 넣고 포크레인으로 또 흙을 덮어버리는 법은 우리 고향에서는 없습니다. 회다지는 전국 민속 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는(물론 그 대회와 상이 최고의 민속이라는 의미는 전혀 아니지만) 횡성 지역의 민속 예술이라고 합니다.

하관을 하고, 석회를 섞은 흙을 덮고 나자 회다지가 시작됩니다. 회다지는 무덤을 단단하게 다지는 의식입니다. 보통은 여덟 사람의 회다지꾼이 들어서고, 한 명 선소리꾼은 옆에서 소리를 합니다만, 고모님 장례에는 여섯 명이 들어서고 한 사람이 소리를 했습니다. 모두들 회작대기를 하나씩 들고 산소에 들어선 사람들은 할아버지부터 청년까지 다양했습니다.

서로 등을 맞대고 회를 다지는 모습.
서로 등을 맞대고 회를 다지는 모습. ⓒ 최성수
그러나 나이와 관계없이 회다지꾼들은 신명을 다해 회를 다져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선소리꾼의 소리에 맞춰 회다지꾼들이 서로 등을 대고 허리를 굽혀 다리를 천천히 들었다 놓았다 합니다. 느린 동작이기 때문에 선소리꾼의 소리도 느리게 이어집니다. 물론 회다지꾼들이 대답하는 소리인 '어허 달구야'하는 소리도 구슬프고 느립니다.

어허 달구야, 어허 달구야
부모님전 살을 받고
어허 달구야
부모님전 뼈를 받아
어허 달구야..
.

'달구야'하는 소리는 때로 '단호야' 혹은 '달호야'하는 소리로 섞여 부르기도 합니다. 한동안 그렇게 이어지던 회다지는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회다지꾼들은 회작대기(모통 자기 키보다 조금 긴 막대기입니다)를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바꾸어가며 회를 다집니다. 이때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며 발을 굴러 바닥을 다집니다.

"옛날에는 정말 회다지기가 대단했는데. 지금은 그저 형식적으로 다지고 포크레인이 최종적으로 꾹꾹 눌러 다지면 그만이지요."
곁에서 회다지는 모습을 보던 친척 동생이 한마디합니다.
"그래도 요즘 이런 풍습 있는 마을이 어디 있나? 저렇게 모여 망자의 넋을 위로해주는 것만도 고맙지 뭐."
나는 회다지기에 시선을 빼앗긴 채 그렇게 대답을 합니다.

회다지기를 하다가 상주들과 장난을 치기 위해 돈을 걸 줄을 늘이는 모습.
회다지기를 하다가 상주들과 장난을 치기 위해 돈을 걸 줄을 늘이는 모습. ⓒ 최성수
회는 모두 삼 쾌나 오 쾌를 다진다고 합니다.
"요즘 어디 오 쾌 다지는 집이 있나? 삼 쾌만 하지?"
앞줄의 머리가 하얗게 센 회다지꾼이 숨이 찬지 밖으로 나오며 땀을 닦습니다. 그러자 모두들 목에 건 수건을 풀어 땀을 닦습니다. 그 사이 망자의 친척들이 쟁반에 술과 안주들 들고 회다지꾼들에게 돌아다니며 권합니다.

그 틈에 고종 사촌의 친구 몇이 선소리꾼에게 제안을 합니다.
"우리가 한 번 다져보면 안될까요?"
선소리꾼이 얼른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허 좋지. 친구 어머니 산자리 밟는 건데 누가 마다 해."
그러자 친구들 중 하나가 지갑을 열어 만 원짜리 몇 장을 선소리꾼의 회작대기 위에 묶어줍니다.

선소리꾼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제 자리에 서더니 다시 소리를 시작합니다. 친구들은 서툰 몸짓과 발짓으로 쿵쿵 회를 다집니다. 아마 그들은 고모님이 살아 생전, 때로는 집에 찾아와 밥을 먹기도 했고, 술을 마시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연을 귀하게 여겨 이렇게 낯선 골짜기에 와 회를 다지고 있을 것입니다.

"허허, 이렇게 다지다간 해 저물겠어. 저 봐. 날씨가 꼭 저녁 굶은 시어미 상이잖어. 얼른 우리가 마저 한 쾌 다지고 끝내세."
회다지꾼 중의 하나가 그런 소리를 하며 안으로 들어섭니다. 그러자 나머지 회다지꾼들이 다시 작대기를 잡고 들어서고, 서툰 회다지를 하던 친구들이 물러납니다.

느릿느릿 시작한 회다지 소리를 상주들의 눈물을 빼놓더니, 점점 빨라지며 때로는 웃음을 짓게도 만들고, 때로는 신명을 돋구기도 합니다.
"진짜 선소리꾼은 장례식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한다니까요."
세 쾌째, 마지막을 향해 치달려가는 빠른 소리를 들으며 동생이 내게 소리를 칩니다.

회다지꾼들은 이제 허공에 붕 뛰어 올랐다가 쿵 쿵 땅을 내려 디딥니다. 앞으로 향했던 몸을 휙 돌려 두 번 땅을 찍기도 하고, 세 번 찍기도 합니다.
"저 게 두발 치기, 저 건 세발 치기라는 거지요."
고향을 지키며 농사를 짓는 사촌 동생이 내게 일일이 설명을 해줍니다.

근동 사람 보기 좋게
어 허 달호야
먼데 사람 듣기 좋게
어 허 달호야


끝이 없을 것 같던 선소리꾼의 소리가 어느 순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회다지가 끝났습니다. 이제 회다지꾼들은 낙엽송 숲 속에 차려진 음식 앞에서 숨을 고르며 술을 마시고 밥을 먹습니다. 포크레인이 마무리를 하고, 떼를 입히고, 그렇게 고모님의 장례식은 끝이 납니다.

사람들은 숲에 모여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마지막 길을 배웅한다.
사람들은 숲에 모여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마지막 길을 배웅한다. ⓒ 최성수
한 사람이 이제는 완전하게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어선 것입니다. 사람들은 숲 속에 모여 술잔을 나누며 망자를 생각하고, 모두들 조금씩은 취해서 비틀거리며 산을 벗어납니다. 망자의 가족들도 다시 한번 새로 생긴 무덤에 인사를 하고 돌아갑니다.

이제 산에는 고향을 지키며 사는 동생 둘과 제수씨와 나만 남습니다. 우리는 남은 술과 안주를 마시고 먹으며, 이제는 정말 한 세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을, 우리 윗대 분들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그중 한 분이었던 고모님도 이제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하여 세대의 무거운 짐이 그 어른들에서 점점 우리에게로 옮겨지고 있다는 것을, 산그늘의 어둠처럼 무겁게 느낍니다.

"우리 대에서야 어디 저런 회다지나 있겠어? 이젠 다 화장해야지. 아마 회다지를 보는 것도 우리 세대가 마지막일 거야."

동생들과 헤어지면서 나는 그런 말을 술기운처럼 뱉어냈습니다. 그러자 정말 내 귓가에는 아까 선소리꾼이 부르던 회다지 노래가 구성지면서도 힘차게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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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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