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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을 시작했던 9명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은 박경석 교장(오른쪽)과 최재호씨(맨 왼쪽)
단식을 시작했던 9명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은 박경석 교장(오른쪽)과 최재호씨(맨 왼쪽) ⓒ 참세상방송국

국가인권위 점거 단식농성 17일째, 최재호(38·지체장애 3급·장애인실업자종합지원센터)씨는 걷기가 힘들 만큼 몸이 쇠약해졌다. 처음 9명의 동료들과 함께 단식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박경석 대표와 단둘이 남아 있다.

"개인적으론 1주일만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닷새만에 7명이 떨어져 나갔고, 거기다 저마저 빠지게 되면 경석 형도 힘들 것 같아 버틸 때까지 버티기로 했습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이번 장애인 단식농성의 직접적 계기가 됐던 '발산역 리프트추락사고'에 대해 서울시측은 여전히 공식적인 사과를 거부하고 있다.

'사고원인이 사망한 장애인의 부주의'라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속내는 '책임을 인정할 경우 뒤따를 문제'에 대한 고려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서울시의 완강한 태도는 농성자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앞이 안 보이는 게 답답하기도 합니다. 메아리 없는 아우성이니까요."

그러나 서울시의 무반응이 농성자들의 결의를 꺾지는 못하고 있다.

"처음엔 좋은 결과를 내고 나가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성과를 못 내더라도 끝까지 할 생각입니다. 추후 이 투쟁에 대한 '평가'는 평가대로 진행하되, 지금 만큼은 단식투쟁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최씨의 결의에선 자못 '여유'가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서울시의 사과를 받아야만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치 않아요. 그날 그날 최선을 다한다면 성과가 없더라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정당하다면 다 우리 편이 되지 않겠어요? 우리가 다시 투쟁에 나설 때 그들은 또 우리에게 올 것입니다."

그는 '미래를 위한 준비'로써 이번 투쟁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꼭 승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앞으로도 싸울 것은 더 많습니다. 여기서 안 된다고 다른 것까지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다음을 준비해야죠."

"편하게 자고 싶네요"

인권위에서 17일째 단식농성중인 최재호씨.
인권위에서 17일째 단식농성중인 최재호씨. ⓒ 참세상방송국
단식을 진행하는 동안, 최씨에겐 개인적인 '사건'도 하나 벌어졌다. 바로 가정사다. 단식 15일째였던 26일은 아버지의 생신이었다. 그는 이날 집에 들르게 되면 음식을 먹게 될까봐 하루 전에 미리 선물을 들고 집에 다녀왔다.

"단식한다고 말씀드리니까 어머니가 '죽을 먹으라'며 1시간 동안 저와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부모님께, '나 자신과의 약속이니까 평생 후회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설득했습니다. 괜히 어머님 가슴에 멍을 지운 것 같아 마음 아프지만 가족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나니까 누구보다 이 일에 대해 당당하고 자신감이 생깁니다."

단식 사흘을 넘긴 후 배고픔의 고통은 거의 사라졌다는 최씨. 그러나 그에겐 '배고픔'보다 고통스러운 게 있었다.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제가 신경이 좀 예민해요. 그래서 조금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도 잠을 잘 못 자거든요."

하루 평균 숙면시간이 1시간 남짓에 불과한 그에겐 '편하게 자고 싶은 욕망'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

- 농성중에 주로 무슨 생각을 하나요?
"아무 생각 없이 지낼 때가 많아요. 주로는 본능적인 생각, 편하고 싶고 안주하고 싶은 생각을 해요.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이나 센터 일 걱정도 합니다."

8월 27일 단식농성장을 방문한 '통일광장' 선생님들의 글

불편한 몸으로 살아가는 것도 힘이 드실텐데 불의에 항거하는 여러분을 보고 인간의 고결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인간의 가치는 육체보다 정신에 의해서 규정된다고 볼 때, 여러분들이야말로 돈만 아는 저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들보다는 몇 배나 나은 존귀하고 향기롭고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존경합니다.

서울시장 이명박은 몸 한쪽을 못 쓰는 분들의 아픔을 알고 있는가. 얼마나 괴롭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알고 있는가. 동료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하며 동료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곳 농성단 성원들보다 인격적으로 낫다고 보는가.

적어도 사람이라고 하면 시급히 와서 사죄하고 복식하도록 조처를 취해야 하며 불편한 분들의 요구를 신중히 듣고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냉혈동물이라고 천하에 못된 놈이라고 지탄받을 것이다.

/ 통일광장 임방규 등
최재호씨는 인터뷰 동안 '동지'에 대한 고마움을 거듭 강조했다.

"동지들 덕택에 꿋꿋이 서는 것 같아요. 동지들 생각 많이 하고, 동지들 힘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사회단체나 대학생들이 지지방문을 올 때도 많은 힘이 된다고 한다.

"인권단체들도 처음엔 장애인투쟁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서로가 가까워진 것 같아요. 이런 점들은 농성투쟁의 성과라고 볼 수 있죠."

최씨는 어떤 과정을 거쳐 단식농성에까지 결합하게 됐을까?

- 언제부터 이동권투쟁에 관심을 갖게 됐나요?
"지난해 8월 장애인실업자종합지원센터(아래 센터)에 근무하게 되면서였습니다. 대학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장애인이면서도 장애인과 생활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한동안 방황하다가 장애인들과 함께 보람된 일을 하고 싶어서 센터를 찾아갔습니다. 거기서 처음 이동권투쟁을 알게 됐죠."

- 단식농성까지 진행할 만큼, 이동권 문제가 절박한가요?
"장애인에게 있어 이동권과 접근권은 교육, 노동, 사회통합 등에 앞서 가장 기본적인 문제입니다. 좋은 시설만 만들면 뭐합니까. 시설이나 공공기관까지 갈 수가 없는데…. 이 문제는 사실 '배려'의 문제입니다. 조금만 신경쓰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요.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만들자면 어차피 돈이 드는데, 이왕이면 장애인이 쓸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부나 비장애인들 모두 '장애인과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년 사이 두 차례나 경찰서 신세를 질 정도로 최씨는 빠짐없이 이동권 투쟁에 참석해왔다고 한다. "당당한 장애인활동가로 서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다"는 그는 이미 전투적인 장애인 활동가였다.

이제 그가 서둘러 단식을 끝내고 편한 잠을 청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서울시가 '책임'만 인정한다면 당장 오늘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장애인이동권연대의 단식농성에 대한 지지방문과 지지단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11층에 농성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8월 26일부터 인권단체들도 동조단식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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