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률 조사관이 초인종을 눌러 봤지만 집안은 인기척 없이 조용했다. 이재범 조사관이 서씨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핸드폰은 꺼져 있었다. 이들은 우편함에 우편물이 쌓여 있지 않은 사실을 통해 "사람이 장기간 집을 비워둔 것 같지는 않다"라고 추측만 할 뿐,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의문사위 조사권한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조사관들이 서씨의 업무일지를 본 것은 19일 밤이다. 그때 서씨는 83년 군에서 의문사한 김두황씨와 관련해 조사를 받다가, '자신이 김두황 사건과 무관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업무일지를 보여줬다고 한다. 업무일지에는 김두황씨에 관한 내용이 없었지만, 비슷한 시기 의문사한 한영현씨, 이윤성씨를 프락치로 활용했던 기록이 보였다. 또 83년 3월말부터 3개월간 당시 보안사령부와 보안사 예하 보안대가 진행한 녹화사업 진행과정이 개인별로 빼곡이 정리돼 있었다.
이에 의문사위는 20일 서씨에게 업무일지를 제출하라고 요구했지만, 다음날 서씨로부터 받은 것은 '자료제출을 거부한다'는 내용의 서한과 업무일지를 소각하는 사진 3장이었다. 하지만 의문사위는 서씨가 실제 업무일지를 소각했다고 믿을 수 없고 업무일지가 더 많이 있을 것으로 판단, 26일 서씨의 집을 실지조사 하려 했으나, 이때부터 서씨와의 모든 연락이 끊어졌다.
의문사위 박래군 조사3과장은 "우리는 통화내역을 조회할 수도, 차적을 조회할 수도 없고, 계좌추적도, 압수수색도 불가능하다"라며, "눈앞에서 역사적인 기록물을 확인해 놓고도 입수할 방법이 없다"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또 "서씨가 잠적했으나 추적할 방법도 따로 없다"라며, "현재로선 (서씨의) 자발적인 협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라고 한탄했다.
의문사위가 서씨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 하지만 과태료를 부과한다 해도 서씨의 업무일지가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 진실을 캐기 위해 서의남 씨를 아시는 분은 의문사위로 제보해 주기 바란다"라는 박 과장의 애처로운 호소로 30분 정도 진행된 실지조사는 마무리됐다. 의문사위 전화번호는 02-3703-5980.
덧붙이는 글 | 인권하루소식 2002년 8월 31일자 (제216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