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최근 '제주 4·3 사건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일부 위원과 보수우익단체들은 고씨와 같은 수형자들은 재판을 통해 '폭도'로 인정된 사람들이라며 4·3사건 '희생자' 선정 과정에서 제외시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8월 30일 '제주 4·3연구소'와 '제주4·3 진상규명 명예회복 추진 범국민위원회' 등은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제주 4·3 군법회의 수형인을 통해 본 국가폭력과 인권'이란 제목 아래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당시 '군법회의' 재판은 정당한 요건을 갖춘 '재판'이라 볼 수 없고 수형자들은 도리어 국가공권력의 피해자였다는 주장이 다수를 이뤘다.
수형인들은 대개 4·3 당시 군경의 학살을 피해 한라산에 피신했다가 귀순했거나, 혹은 도피자 가족으로 몰려 군경토벌대에 잡힌 후 고문과 형식적인 재판으로 처형되거나 육지 형무소에 수감됐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각 형무소별로 이들 대부분은 몰살당했다. 최근 정부기록보존소의 '수형인명부' 공개와 생존자 중 10명의 증언 채록 등을 통해 지금껏 행방불명된 것으로 알려졌던 이들 행방의 자취를 그나마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인하대 법대 이경주 교수는 "제주 4·3 사건 기간 동안 두 차례 열린 고등군법회의는 각각 '계엄령'과 국방경비법 제32조와 제33조에 근거한 것으로 돼 있다"라며 "그러나 당시 계엄은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행해진 것이었고 '국방경비법' 역시 당시 미군정에 의해 공포된 바 없는 정체불명의 법률"이라고 지적했다.
즉, 법률에 의한 재판이 아니었다는 것. 이어 이 교수는 "유죄의 증거가 됐다고 하는 자백들도 강압에 의하거나 혹독한 고문의 결과였음이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나아가 이 교수는 "국가긴급권 하에서도 재판을 받을 권리의 본질적 내용이 침해될 수는 없다"라며 "수형자들은 재판을 받을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된 국가폭력의 희생자로 봐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국민대 법대 이재승 교수는 "더구나 군법회의 재판은 소위 '국방경비법'의 규정조차 지키지 않았다"라며 한날에 수백명을 불러다 놓고 피고인에 대한 심문도 없이 변호인의 참여도 없이 일방적으로 죄목과 형벌을 고지했다는 생존해 있는 수형자들의 증언을 그 근거로 들었다. 나아가 이 교수는 "자의적인 권력판결에 지나지 않는 군법회의 재판을 무효화시키는 특별법 제정"을 제안했다.
덧붙이는 글 | 인권하루소식 2002년 9월 3일자(제216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