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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의문사진상규명위(위원장 한상범, 아래 의문사위)는 전향 여부에 따라 재판없이 신체의 자유를 앗아갔던 사회안전법은 위헌적인 법률이라 규정하고, 이 법의 폐지 등을 주장하며 단식농성 중 강제급식 과정에서 사망한 변형만씨와 김용성씨에 대해 민주화운동 관련성을 인정했다.

의문사위에 따르면, 1980년 7월 11일 변씨와 김씨는 이모 청주보안감호소 소장의 지시에 따라 고무호스로 입에 짠 소금물을 투여하는 강제급식을 당한 후 각각 같은 날 밤 10시 30분과 저녁 7시 50분 경에 사망했다.

당시 청주보안감호소 수용자들은 7월 8일 오모 감호과장의 지시로 부당하게 참고서적들을 압수당한 서준식 씨가 항의 단식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 그 다음날부터 △사회안전법 폐지 △보안감호제 철폐 △피보안감호자들에 대한 처우개선 등을 주장하며 3일째 단식농성을 벌이던 중이었다.

당시 감호과 변모 계장은 의문사위의 조사 과정에서 강제급식에 사용된 것은 "맹물에다 왕소금을 넣어 만들었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도 먹으면 속이 타서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고 진술했으며, 강제급식은 환자, 나이 등을 가리지 않고 단식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이루어졌다고 의문사위는 밝혔다.

의문사위는 "사회안전법은 양심의 자유와 재판받을 권리 등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며 죄형법정주의·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위배하는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법률로서 권위주의 통치에 해당한다"며 사회안전법의 폐지를 주장하며 단식농성을 한 변형만과 김용성은 권위주의적 통치에 적극 항거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민주화운동 관련성을 인정했다.

또한 의문사위는 "당시 강제급식은 수용자들에게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주기 위해 행해진 고문에 해당한다"라며 "변형만과 김용성의 사망은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회안전법이란?

1975년 7월 16일 새벽 3시 야당의원들의 반대 속에 날치기 통과된 사회안전법은 당시 출소가 예정됐거나 형기가 이미 만료된 비전향자들을 가두어두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됐다.

75년부터 78년 사이 150여명이 이 법에 따라 보안감호처분을 받았다. 법무부 소관 하에 매2년마다 처분 갱신 여부를 결정했으나, 전향을 하지 않는 한 사실상 기한 없이 가두어둘 수 있었다.

노골적인 사상탄압법으로 국제적 비난을 받은 사회안전법이 89년 폐지되면서 보안감호처분제도는 사라졌다. 그러나 이를 대체한 보안관찰법은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형을 이미 살고 나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든 일상을 신고할 의무를 강제하며 여전히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 이주영 기자
전향 거부만으론 민주화운동 아니다?

그러나 의문사위는 지난 8월 29일 고문을 수반한 전향공작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발표된 최석기, 박융서, 손윤규 사건은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사망한 것은 인정되지만 민주화운동 관련성은 인정하기 어려워 기각했다고 밝혔다.

의문사위의 김준곤 제1상임위원은 "사상전향의 강요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에선 이견이 없었지만, 전향 거부만으로는 그 의도가 자유민주주의의 신장에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민주화운동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의견이 위원들 내에서 다수를 이뤘다"며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데 저항한 것 그 자체가 민주화운동이라는 소수 의견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에 대해, 의문사위는 최씨 등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할 경우 사상 시비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점을 지나치게 의식해 일관성없는 판단을 내렸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의문사위는 과거 최종길 교수 사건에 대해선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행위가 아니더라도 권위주의적 권력 행사에 대해 순응하지 않음으로서 소극적으로 저항한 행위도 민주화운동에 포함된다고 결정한 바 있다.

민주화운동정신계승 국민연대 이은경 사무처장은 "의문사위가 사회안전법 폐지 투쟁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 것은 진일보한 점이지만, 위헌적 제도인 전향을 거부한 행위 자체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위원회 역시 편협한 이데올로기 장벽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덧붙이는 글 | 인권하루소식 2002년 9월 18일자(제21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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