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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동 '느티나무' 작업실에서
만년동 '느티나무' 작업실에서 ⓒ 정세연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애 둘씩 딸린 아줌마(?)와 아저씨(?)들이 모여 음악을 한다? 대개 '음악을 하는 그룹'하면 요란한 치장에 특이한 헤어스타일, 어디가도 뒤지지 않을 춤솜씨 등을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면 평균 연령이 30세가 넘는 느티나무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있을까?

12일 저녁, 만년동에 위치한 '그룹 느티나무' 작업실을 찾았다. 얼마 전 새로 단장한 작업실이라 그런지 풋풋하고 싱그러운 분위기다. 김유신 대표(37)를 비롯 김대경(31·보컬), 조중정(32·보컬), 김명호(32·기타), 최수항(29·베이스), 장진영(27·건반) 이렇게 여섯 명의 식구들은 하루 일과를 마친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작업실을 둘러본 후 건물 1층에 있는 민속주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먹서먹한 분위기는 술이 한 잔씩 돌자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그리고보니 느티나무에는 참 특이한 게 있다. 대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자유분방하고 다양하게 자기 개성을 표현하는데 느티나무는 최고령자인 김유신 대표만 머리를 길러 묶고 있고 다른 분들은 지나치게 준수하지 않은가.

왜들 그렇게 노티(?)나게 하고 있냐고, 무슨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냐고 묻자 보컬을 맡고 있는 대경씨가 '대표에 대한 반항심' 때문이란다. 다들 한바탕 웃고 난 후 대경씨는 "사실 우리는 언제나, 누구를 만날 때나 똑같은 모습"이라며 씨익 웃는다.

1995년 시작, 2002년 아마츄어리즘 극복 위해 스튜디오 개원

1995년 세 명의 멤버로 느티나무는 시작됐다. 1996년 3월 창단공연을 갖고 지금까지 활동을 해오고 있는 느티나무는 '사람·뜻·음악'을 모토로 포크음악과 밴드를 주로 한다.

막연하게 느티나무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으레 락을 하는 그룹이거니 할지도 모른다. 느티나무가 락이 아닌 포크를 선택한 이유는 보컬의 목소리가 락과는 영 맞지 않아서라는 소문(?)도 있는데.

ⓒ 정세연
느티나무는 아마추어리즘을 극복해야 음악을 계속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 시작됐다. 김 대표는 "저를 비롯해 다들 80년대 학번들이었는데 이같은 생각에 대해 합의는 했지만 방법을 모르겠더라구요. 음악적으로도 준비가 안된 부분이 많았고, 그래서 고민만 하다가 95년 들어 '일단 시작해보자, 과정에서 방법을 찾아보자'하고 마음을 모았죠"라고 말한다. 그리고 현재 남아 있는 창단 멤버는 조중정씨.

창단공연할 때 조중정씨가 임신한 상태로 배가 이만큼 불러 노래를 했던 걸로 기억해요. 중정씨는 창단 때부터 보컬로 활동해왔는데 예전과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다른 것 같아요?

"처음 시작할 때는 임신도 한데다 할까 말까 많이 망설였어요. 그래서 제가 멤버라는 생각보다 '느티나무라는 그룹이 생겼는데 나는 노래하는 사람으로 초대됐다'는 느낌으로 시작했죠. 그래서인지 열심히 하지 못한 부분도 있구요."

하지만 이제는 '이게 진짜 내 일'이라는 책임감이 든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나이도 많고 아이가 둘이니 있어 예전보다 상황이 좋지는 않지만 다시 시작하는 계기로 삼고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는 중정씨의 모습이 밝아 보인다.

늘 노래를 하면서도 자신이 노래를 잘 한다거나 어떤 음악을 추구한다거나 하는 것들이 명확하게 서 있지 않았던 중정씨는 느티나무를 통해 보다 편안하게 사람들을 음악으로 만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좋은 음악으로 자연스럽게 대중과 만나고 싶다"

사람들은 느티나무를 지역에서 음악운동을 하는 모임 정도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예전의 느티나무와 현재의 느티나무는 어떻게 다르죠?

'느티나무'와의 대담을 3시간동안 진행한 신명식 기자
'느티나무'와의 대담을 3시간동안 진행한 신명식 기자 ⓒ 정세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학교 때 시작했던 노래 운동의 부분들, 그때의 경직된 부분에서는 많이 해방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에 대경이랑 초청공연을 하러 갔는데 어떤 분이 우리에게 그런 걸 물었어요. 노래패냐구. 운동가요 같은 것들을 불러야 되지 않겠냐고. 그러자 대경이가 '우리는 노래하는 단체지 노래패는 아닙니다'라고 답했을 때 잠깐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좋은 음악으로 자연스럽게 대중과 만나고, 음악으로 인해 사람들이 감동하고 변화해서 사회적으로도 좋은 영향을 준다면 좋겠죠. 우리가 추구하는 바도 그런 것이고."

느티나무는 이제는 어떤 성격으로 틀 지워진 음악이 아닌 자유롭게 자신들의 음악을 하고 싶다고 한다. 대학 때부터 줄곧 노래패 활동을 해오고 소위 '운동권'에 몸담았던 그들이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있는 그대로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것이다.

"당장 우리에게 '너희가 하는 음악이 뭐냐'하는데 사실 저희도 아직 모르겠거든요. 우리가 그리는 것들을 지금도 고민하고 있고 앞으로도 꾸준히 준비해가야 하는데 미리 규정짓고 바라보는 시각에는 거부감이 있기도 해요."

반주, 편곡, 음악지도, '나만의 앨범 만들기' 등 수익사업 구상

음악을 하면서 돈벌이는 되는지, 경제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해하자 다들 잠시 고개를 돌린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다들 고개를 돌리고 듣지 않기로 했다나. 그만큼 경제적인 문제는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전에서 음악만 해서는 먹고살기 힘든데다 가정도 있고, 현실적인 부분을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음악과 동떨어진 일을 하면서 음악과 생활을 따로 할 수는 없고 음악을 하면서 같이 할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반주, 편곡, 레코딩, 음악 지도 등의 사업들이 그것.

경제적으로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느티나무에는 열정이 있다. 멤버들은 무엇보다 음악을 하고 싶은 열망이 강하다. 마음놓고 음악을 할 만한 조건이 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고, 조건을 바꾼다는 것도 쉽지 않지만 음악에 대한 강한 열정 하나만으로 시작한 것이다.

대경씨는 애가 둘인 가장인데 어떻게 직장까지 그만두고 음악을 할 생각을 했어요?

"회사가 망할 것 같아 나왔어요.(웃음) 사실 가능성을 시험해 보고 싶었어요. 오기도 생기구요'

ⓒ 정세연
1년에 두 번씩 하는 정기공연 말고 사회단체나 노동조합에서 공연요청을 많이 하지 않나요? 그런 공연요청을 받아 공연을 할 때 힘들거나 속상한 점은 없었어요?

우리는 노래하는 팀이니까 어디 가서 노래하는 것에 대해서는 속상하지 않은데, 가끔 공연비 때문에 속상할 때가 있어요. 가령 어떤 행사를 기획하는 사람이 엠프 하나가 얼마인지는 알고 있어요. 그래서 엠프 대여료는 확실히 계산을 하고 들어가는데 우리 공연비는 행사비에서 남으면 준다는 식으로 뒷전에 두는 경우가 많죠. 이건 엠프하고 사람하고의 비교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식이라면 우리가 엠프에 밀리는 거잖아요. 속상하죠. 엠프는 고장나면 수리할 수 있지만 우리는 고장나면 끝인데"

"그건 정말 문제예요. 행사를 기획하는 사람들이 끼워 맞추기, 구색 맞추기식의 문화공연을 요구할 때가 많아요. 음악을 하는 저희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들죠. '이 부분에 노래 하나 있어야 분위기가 살겠어' 뭐 이런 식이니까. 그 단체가 좋은 일을 하는 것이고 우리가 참여하면 좋겠다 해서 가는 건데도 불구하고 섭섭할 때가 많죠"

무료공연도 마다하지는 않는다. 이제껏 시민단체의 행사 무대에도 자주 오른 느티나무는 다만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함께 나눴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느티나무는 음반제작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나 대전이라는 곳이 워낙 문화환경이 열악하고 소비시장이 작아 레코드를 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지 김 대표에게 물었다.

"저변을 넓히는 작업이 중요한 것 같아요. 평상시 음악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과 친분을 쌓아 저변을 넓힌다면 나중에 우리 음반이 나왔을 때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웃음) 물론 시간은 걸리겠지만요. 샐러리맨이 결혼해서 월세에서 전세로, 그리고 십수년 혹은 수십년 후에 자기 집을 사는 것처럼 우리가 음악을 하는 것도 한순간에 어떤 경지에 오른다기보다는 차근차근 믿음을 가지고 해나가는 거죠.

또 느티나무의 예술적 가치가 객관적으로 인정이 된다면 우리 음악이 살지 않겠나 생각해요. 우리가 좋은 음악을 하고 우리의 가치를 사람들이 알아준다면 곧 최소한의 음악활동을 해갈 수 있는 연결되지 않을까요?"

느티나무는 대표적 사업으로 '나만의 음반 만들기'를 내놓고 있다. 가족음반, 직장·동아리음반, 졸업음반 등을 여름 휴가를 다녀올 비용 정도로 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중이 음악에 보다 쉽게 다가서고 친숙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정세연
김 대표는 대전방송 라디오 해피투게더 '올드 댓 팝스'를 6개월째 진행하고 있는데, 월요일 저녁 7시 30분이면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올드 팝을 선정해 들려주면서 김 대표는 "퇴근길 버스 안에서 누구나 편하고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느티나무는 11월 중 정기공연을 갖는다. 아직 장소를 구하지 못해 정확한 일정은 나오지 않았다. 공연을 하고 싶어도 공연할 장소가 없어 안타깝다는 대경씨.

"솔직히 공연할만한 데는 많은데 일반인에게 대여를 잘 안 해요. 시립미술관이나 시청, 시민회관 등에 마련된 공간은 너무 닫혀 있어요. 그런 곳은 상업성이 아닌 공공성을 우선으로 하니까 우리 같은 그룹은 안 된다는 거죠. 공연을 하고 싶어도 공연할 데가 없으니..."

정기공연이 아니더라도 일상공연을 통해 대중들과 만나고 싶다는 느티나무. 현재 음반유통구조는 소비자가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고 있기에 느티나무는 길거리로 나가 대중들을 직접 만나겠다고. 길가다 문득 은은하고 따뜻한 음악 소리 들려온다면 느티나무를 만날 수 있을까?

(느티나무 작업실 전화 483-6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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