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으로 오랜만에 뭍으로 나왔습니다. 근 2년만에 다시 찾아온 감기 때문입니다. 보건소에서 지어 온 약으로 다른 증상은 잡았지만, 기침이 멎질 않았습니다. 한 달 가까이 마른기침이 계속 됐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괭이로 텃밭을 갈아엎고 둑을 만들어 월동배추 씨앗을 뿌린 뒤 갈두행 여객선을 탔습니다.
가을되면서부터 나고 드는 여행객들의 모습이 뜸해졌습니다.
광주로 갈까하다 목포 쪽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방금 섬을 빠져 나왔으나 나는 그새 또 바다가 그리운 것일까요. 병원을 가겠다고 나온 길이지만 실상은 뭍으로 나들이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지요.
공기 좋은 곳에 사는데도 기침이 멎질 않는 걸 보면 나의 기침이란 단지 몸의 질병만은 아닌 성도 싶습니다.
해남 들녘의 벼들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벌써 추수를 끝낸 논도 눈에 띕니다. 많은 벼들이 지난 태풍에 쓰러진 채 방치되어 있습니다. 벼를 일으켜 세우는 늙은 농부의 모습도 간간이 보이지만 그 또한 힘에 부쳐 보입니다.
영암군으로 들어서자 도로변에 무화과 노점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영암 일대는 본격적인 무화과 철입니다.
"아주머니 무화과 달지요?"
"그럼요, 달다 마다요. 말할 수없이 달아요."
길가 노점에서 무화과를 한 광주리 삽니다. 나도 참 실없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무화과 팔려고 나온 아주머니가 달지 않다고 할 턱이 없을 것을.
무화과가 별로 달지 않고 심심합니다. 그렇게 여름 내내 비가 퍼부어 댔으니, 달 까닭이 없지요. 목포의 병원에 들러 진료를 받고 일주일치 약을 지었습니다. 예상대로 그저 감기 뒤끝에 기침이 좀 오래가는 것 뿐이라더군요.
이제 어디로 갈까. 그래 월출산으로 가자, 지금쯤 도갑사 성보 박물관도 다 지어졌겠구나. 도선 국사, 수미 왕사, 유물들이나 구경하자. 도갑사 둘러보고 천황사도 들러야겠지. 도갑사에 다녀온 지 그새 또 2년이 흘렀군요.
해탈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자 성보박물관 건물이 번듯하게 잘 지어져 있습니다. 박물관 앞, 오래된 나무들이 서 있던 자리에 나무들은 간데 없고, 넓은 잔디밭이 새로 생겼습니다. 처사 한 분이 예초기로 잔디를 깍고 있습니다.
절 마당 돌 확에서 솟아오르는 물로 목을 축인 뒤 성보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박물관은 문이 잠겨 있습니다.
자물통 위에 '토일.공휴일 휴관'이란 팻말이 걸려 잇습니다. 어, 이상하네,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이거, 화요일인데, 왜 문을 닫았지. 다시 안내 푯말을 자세히 봅니다.
'토.일.공휴일 휴관'이 아니라 '토.일.공휴일 개관'입니다.
이용객들이 많은 토요일, 일요일이나 공휴일만 문을 연다는 뜻이겠지요.
참 많이 섭섭합니다.
유물들을 관람하기에는 사람들 복작대고 시끌벅적한 공휴일보다는 지금처럼 한가롭고 사람 적은 평일 날이 좋을 터인데.
그거 참, 천일기도 염불 소리는 산중에 울려 퍼지고, 약을 먹고 가라앉는가 싶었던 마른기침이 다시 쏟아져 나옵니다. 망연해진 나그네는 이미 여러 차례 둘러본 대웅전과 명부전, 미륵전, 국사전들만 하릴없이 서성입니다.
성보 박물관을 관람할 심산으로 주차비 4000원, 문화재 관람료, 국립공원입장료 2500원, 6500원씩이나 지불하고 들어왔는데 이거 어디 가서 환불받아야 하나.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지는 미륵전 천일기도, 기도접수는 종무소로' 큼직한 플래카드가 미륵전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접수해라, 접수해라' 파닥거립니다.
복을 대신 빌어주는 곳, 저것은 마치 복권 판매소 안내문 같군. '복권 판매소, 천장을 사면 반드시 한 장은 당첨되는 곳' 그래 나도 6등 짜리 몇 번은 당첨된 적이 있었지.
서둘러 도갑사를 빠져 나와 천황사로 향합니다. 천황사로 오르는 오솔길은 여전히 한가롭고 오붓합니다. 한참 익어 가는 정금나무 열매도 더러 따먹으며 산사로 갑니다.
몇 해 전, 천황사에 처음 들렀을 때 받았던, 뭐랄까 가슴 한구석이 뻥 뚫려버리는 듯한 휑한 감동이 다시금 밀려옵니다.
광주행 국도를 타고 영암, 강진 부근을 지날 때마다 도갑사, 무위사, 백련사 등의 유명 사찰 간판과 나란히 대로변에 서 있던 천황사 안내판을 보며 언제 한번은 꼭 들러봐야지 마음먹고 있었지요.
그렇게 여러 해 별러서 찾아든 그때의 천황사. 오르는 길부터 심상치가 않았습니다. 국립공원 내의 유명 사찰이라면 대부분 절 안마당까지 포장도로가 나 있기 마련인데… 옛날의 좁다란 오솔길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보지 않고도 참 아름다운 절이겠구나 싶었지요.
그렇게 기대를 앉고 마침내 다다른 천황사. 천황사에는 천황사가 없었습니다. 절터에 자리잡은 것은 웅장한 건축물이 아니라 소박한 감동이었습니다.
해방 무렵에 지어졌다는 오래 되고 낡은 스레트 집 한 채. 거기에 법당도 있고, 요사채도 있었습니다. 극락전도 있고, 명부전도 있고, 산신각도 있고, 미륵전도, 범종각도 다 있었습니다.
절 집 주변으로 벌통 몇 개가 놓여있을 뿐 일체의 허례나 장식이 없이 편안한 고향집. 작고 낡은 집 한 채로도 수도하고 불공드리는 데는 조금의 부족함도 없을 터이지요.
주변에는 발굴 조사를 하는지, 기와장들이 쌓여 있고, 안내문도 붙어 있었지만, 기원이 백제 시대까지 올라간다는 전통 사찰터에서 나는 전혀 폐사지의 초라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 터에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아직까지도 거대한 사찰이 다시 들어서지 않고 있다는 것은 마치 기적 같은 일이 아닌가.
거기에 노승 한 분만이 살고 있었습니다.
전통의 복원이라는 명목으로, 관광 수입 증대라는 명목으로 이곳에 다시 거대한 건물들이 들어선다면 오솔길도 사라지고, 오래된 나무들과 바위들도 아주 사라지고 말겠지요.
이 터가 욕심 없는 노승의 개인사찰로 남아 있다는 것이 월출산에게는 얼마나 큰 행운이며 복권판매소 같은 거대 사찰들에 질린 나그네에게는 얼마나 큰 복이었던지요.
아직은 월출산을 찾는 등산객들도 뜸합니다. 혹시 그 사이에 발굴조사가 끝나고 새로 복원 공사가 시작된 것은 아니겠지. 혼자 속으로 걱정하며 절 입구에 오릅니다.
그런데, 절이 없습니다. 절이 있던 자리는 잡초로 뒤덮였고, 터의 가장 자리에 천막이 두 개 새로 처져 있습니다. 걱정했던 대로 복원 불사를 시작한 것일까.
나는 이제 막 화려하고 거대한 궁궐 같은 사찰을 빠져 나와 눈을 씻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인데, 잘못 온 것이 아닌가.
그렇게 답답한 마음으로 천막 부근을 기웃거리는데, 천막 안에서 인기척이 납니다. 노승이 천막 밖으로 나와 합장을 합니다.
나도 합장을 합니다.
"스님, 복원 불사를 시작하셨습니까."
노승은 눈을 감고 있습니다.
엄숙한 얼굴로 한참을 머뭇거리던 노승이 말을 합니다.
"벌에 쏘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눈을 못 뜨고 있어요"
벌 쏘인 노스님에게는 미안하지만 웃음이 터지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절은 작년에 불이 나서 없어졌다고 합니다. 전기 누전이었는데, 노승은 그것 또한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여 참회 기도를 하고 있답니다.
일흔 셋의 노승은, 자신이 잘못 살아왔기에 불이 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지을 만한 여력도 없고, 군에서 지원해준다 해서 마냥 기다리고 있다는군요. 작년 겨울은 전기담요 하나로 천막에서 났는데, 그래서 온 삭신이 성한 곳이 없는데, 이제 다시 닥쳐올 추위 걱정에 노승은 잠을 이룰 수가 없을 테지요.
더러 젊은 스님네들이 찾아와 이곳은 자신들에게 맡기고 걸망 메고 내려가시라 그러기도 한다더군요.
"탁발도 젊었을 때 해야 시주하는 사람도 있고 그러지, 나이 들면 그도 어렵지요. 내가 갈 곳이 어디 있겠소. 큰절에서 늙은이를 받아 줄 리도 만무하고. 내가 공부가 부족하니, 어디 절 뒷방이라도 차지하고 기침이나 하며 살 수도 없고, 이래저래 나는 여기 있다가 죽어야지요"
"어떤 노인이 찾아와 그럽디다. 절대로 죽기 전까지는 젊은 스님들한테 물려주지 마라고. 자신도 논 팔고 집 팔아 자식들한테 다 주고 도시의 아들네 집에 갔다가 일 년도 못살고 쫓기듯 내려왔다고. 지금은 다시 고향 마을에서 빈집 한 칸 얻어 품팔이하며 살지만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절 새로 짓고 나면, 한 일년이야 잘 해주겠지. 하지만 늙은이를 누가 좋아하겠소. 곧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겠지."
노승은 벌에 쏘인 눈이 아플 법도 한데, 눈 한번 찡그리지 않습니다.
산중의 겨울은 일찍 찾아 왔다 늦게 물러갑니다.
저 노인이 다가올 길고 추운 겨울을 또 어찌 견디실까. 내년 봄에도 다시 뵐 수 있을까. 노승은 매일 같이 찾아와서 똑같은 질문을 해대는 사람들이 귀찮아 부러 피하기도 한다면서, 한번 시작한 이야기를 좀 채 그칠 생각을 않습니다.
이제 곧 밤이 오겠지요. 외롭고 고적하겠지요. 살아온 칠십 생애의 어느 때보다 외롭고 쓸쓸한 밤이 깊어 가겠지요.
나도 더 어두워지기 전에 산을 내려가야 합니다. 노승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지 못한 것을 못내 미안해하며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내일 또 누가 와서 내가 못들은 이야기를 마저 들어 줄 것입니다.
"늙은이가 말이 길었지요. 늙으면 다 그런다오. 잘 가시오. 어쨌든 건강하시오. 건강하고 밥 세 끼 안 굶고, 마음 편하면, 그것이 극락이오, 극락이 어디 따로 있겠소."
어둠은 산아래 마을로부터 몰려옵니다. 산을 내려가면 이제 나에게는 또 어떤 밤길이 시작될 것인지. 칠십의 생애로도 이르지 못한 길이 있었던가.
월출산 그 거대한 바위로도 누르지 못한 마음 하나 산중을 떠갑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