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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의문사위원회)가 지난 10월1일 1980년 신군부의 삼청교육대 운용 실태를 발표하고, 정부에 철저한 진상규명과 당시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및 배상을 권고했다. 주요 언론들이 의문사위원회 발표를 대서특필하며 의미를 부여했지만, 언론 역시 80년에는 신군부의 삼청교육대 운용을 옹호하는 보도를 해 과거사에 대한 뼈아픈 자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IMG1@ 의문사위원회는 "80년 불량배 소탕 명목으로 수립된 '삼청계획 5호'에 근거해 6만명 이상이 검거됐고, 이중 4만여 명이 군에 인계돼 이듬해 1월까지 '순화교육'을 받았다"고 밝혔다. 검거자 4명중 1명은 미성년자였고, 교육중 사망자도 최소 50명(의문사위원회 추정)에서 최대 1천여명(피해자 단체 주장)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순화교육 대상으로 분류된 사람들 중에는 예비군 중대장의 비위 사실을 경찰에 진정했다가 끌려간 사람도 있었고, 기도원에서 목사와 말다툼을 하다가 문패를 던졌다는 이유로 경찰서로 연행돼온 사람도 있었다. 각급 경찰서가 상부에 보고할 실적을 채우기 위해 양민들을 무차별하게 '범죄자'로 만든 것이다. 곤욕을 치르고 사회에 돌아온 교육생들은 이웃에게 "사소한 잘못으로 경찰서에 연행되거든 차라리 1급으로 분류돼 교도소로 가는 게 낫다"고 권유했고, 한 교육생은 출소 후 친구와 언쟁을 벌였다가 또다시 삼청교육대에 끌려갈 것이 두려워 자살했다고 하니 '사회정화'의 미명하에 자행된 인권유린이 얼마나 처절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국가기관에서 뒤늦게나마 국가차원의 인권유린을 인정해 신군부 집권시기 공권력의 역할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고 있지만, 당시 '삼청교육' 실상의 은폐-왜곡에 가담했던 언론들이 의문사위원회의 발표를 보도하는 것만으로는 '면책특권'을 주장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사회정화 차원의 '불량배' 단속이 이뤄진 지 한달 보름만인 80년 8월13일, 당시 발행된 6개 중앙일간지는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이른바 '순화교육 현장르포'를 일제히 사회면 머리기사로 게재했다. '땀을 배우는 인간교육장' (조선일보) "검은 과거 씻는 참회의 땀방울" (동아일보) "그늘진 과거를 땀으로 씻어낸다" (중앙일보) '얼룩진 과거를 땀으로 씻는다' (한국일보) '땀으로 과거를 씻는다' (서울신문, 현 대한매일) "새출발의 의지 / 폭염도 무색" (경향신문) @IMG2@ 조선일보는 "교육생들을 받아들일 때 장교들은 '도망'과 '선동'을 걱정하며 초긴장 상태에 있었지만, 부대장의 '새사람을 만들겠다'는 방침에 따라 기간병이 막사를 이들에게 내주고 의료진과 인근보건소의 협조로 교육생들의 성병을 치료해 주는 등의 인간적인 접근을 시도하자 예상외로 교육이 순조로이 진행됐다"고 전했다. 한국일보 역시 "입소 첫날엔 그렇게 혼란스러울 수 없었다. 양보도 모르고 질서도 없었다. 규칙을 지킬 것을 강요할 때 대드는 것은 연병장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고 보도했지만 이들의 행동이 불법연행에 대한 항거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 한국일보는 대신 "이들의 구성요소와 사회생활로 미뤄 첫날의 혼란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는 부대 간부의 설명을 소개했다. 교육생들을 '인간으로 개조'하기 위해 고문에 가까운 구타와 기합이 자행됐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은 5공화국이 몰락하고 난 이후였다. 동아일보는 "여기서 나갈 때는 반성문을 모두 가지고 나가 죽을 때까지 보관하면서 생활의 지표로 삼겠다"는 원생의 반응과 함께 "때론 지도요원들도 함께 눈물을 흘리며 수련생들을 위로하기도 한다"는 정훈장교의 말을 전했다. 한국일보 또한 "엄격한 규율과 고된 훈련에 뒤따른 사회 저명인사들의 성의 있는 정신교육은 헛되지 않았고 부대장 이하 전 장병의 따뜻한 우정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부대측은 이들로부터 죄인이라는 열등감을 씻어주기 위해 최대한의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한 목사의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라'는 설교를 듣고 거의 모두가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들이 흘린 눈물이 '참회'를 의미하기보다는 권력이 휘두른 폭력에 희생된 것에 대한 억울함의 표현에 가깝다는 것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의문사위원회가 언론사에 배포한 '삼청교육 실태보고서'에 나타난 군부대의 인권유린은 상상을 초월한다. 모 부대 식탁에는 '돼지보다 못하면 돼지고기를 먹지 말고 소보다 못하면 쇠고기를 먹지 말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고, 식사시간이 '1초'인 경우도 허다했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식판을 물고 땅바닥을 기어다녔다는 피해자의 증언도 나왔다. 삼청교육대 피해자 유모씨는 "기합 받는 동안 물을 한 모금도 못 먹어 세차장의 고인 물을 허겁지겁 먹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시커먼 구정물이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 기자는 "위병소를 지나 귀로에 오르면서 저들이 제대로만 순화되다보면 아이러니컬하게도 일선기자들이 경찰서에서 취재해야 할 일들이 그만큼 줄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고소(苦笑)가 머금어졌다"는 말로 8월30일자 기사를 끝내고 있다. 중앙일보 기자 역시 "목이 터져라 합창하는 군가 속에는 '새사람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굳은 결의가 담겨있는 것 같았다"고 대동소이한 소감을 전했다. 신군부의 총칼에 굴복했던 것인지 시류에 영합했던 것인지 당시 교육생들의 피눈물나는 고통을 외면했던 신문들의 왜곡보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8월30일자에 "10년전 생이별한 두 형제가 우연히 한 교육장에서 만나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미담 기사를 게재했다.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중앙일보 정운경 화백의 4컷 만화 '왈순아지매'는 순화교육중 봉체조로 곤욕을 치른 교육생들이 출소후에 새출발하자며 공사장에서 전주 공사를 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억울하게 끌려간 당시 피해자들이 이 만화를 다시 본다면 "자전거를 주겠다"는 중앙일보의 경품공세에도 중앙일보를 구독할 지 의문이다. 조선일보는 8월31일자에 4주 훈련 끝에 사회복귀 판정을 받은 운 좋은 수련생들의 귀가 모습을 전하며 "이들이 교육을 끝내고 나가는 것을 보니 마치 국민학교 학생을 내보내는 선생님의 심정이 이런 것이리라는 생각이 든다"는 한 대대장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군부독재 정권은 순화 교육이 끝난 뒤에도 80년 12월 사회보호법을 급조해 1만여 명을 붙잡아 둔 뒤 노역을 시켰고, 이중 7578명은 재판도 받지 않고 청송보호감호소로 끌려갔다. 당시 신군부의 입맛대로 삼청교육을 실상과 전혀 딴판으로 왜곡보도한 신문사들 중 경향신문과 대한매일은 의문사위원회 발표를 대서특필한 반면, 조선일보는 아예 보도 자체를 하지 않았다. '삼청교육대의 인권유린'을 어떤 방식으로 보도했건 이들 신문들은 스스로의 잘못에 대해 적극적으로 변명하지도 않고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경향신문은 2일자 사설에서 "우리가 불행한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행위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일보도 사설에서 "국가권력이 저지른 야만적인 범죄행위를 20년이 넘도록 모른 채 해온 과오가 부끄럽다면, 관련부처는 서둘러 특별법을 제정해 사과와 보상으로 그늘진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80년 8월의 언론보도는 국가권력의 야만적인 범죄행위에 협조하고, 진실 규명과 피해자의 고통을 20년이 넘도록 방치한 책임으로부터 언론 역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삼청교육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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