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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4년(선조27년) 1천의 의승군 정예부대를 거느린 사명당은 울산 서생포를 점령하고 있던 왜장 가토를 만나 화평회담을 가진다. 회담자리에서 가토가 사명당에게 "조선에 보배가 있는가?"라고 물었는데, 그는 "없다. 보배는 일본에 있다"라고 대답했다.

가토가 그 까닭을 묻자,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당신의 머리를 보배로 생각한다"라고 하였다.가토가 놀라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왕이 그를 궐내로 불러 "지금 국세를 생각하여 3군을 통솔하게 하겠다"라고 했으나 사양..(중략)

얼마 전 우연히 들은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서 "당신의 목은 우리의 보배"라는 유적지순례기 책을 펴낸 사명당 기념사업회의 대표가, 사명당의 일화를 예를 들어 말한 것 중에 한 부분이다.

"사명당기념사업회는 임진왜란 당시 민족의 영웅이었으며, 뛰어난 외교력의 소유자였던 유정 사명당을 연구, 선양하여 민족정기를 확립한다는 목적하에 1997년...."

사명당을 어느 관점에서 바라 보는냐는 학계나 종교계 또는 사업회마다 다를 수 있다. 왜군을 물리친 장군으로서, 스님으로서, 사명당을 바라 볼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승려의 신분으로써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승병장. 호국 불교의 화신으로 보는 것이 적당하지 않나 싶다.

"사명당을 연구 선양하여, 민족정기를 회복한다" 사명당을 연구 선양하는 것까지 좋지만 무엇으로 민적정기를 회복한다는 것일까? 위기의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살생계까지 파하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승려로서, 아니면 "당신의 목은 우리의 보배"라는 뛰어난 말을 한 외교가로서, 그런 사명당의 정신을 이어받아 전쟁이 일어나면 성직자들 모두 국가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고, 평화회담에 외교관을 보내 "당신의 목은 우리의 보배"요 하면 민족정기가 확립되는 것일까?

우리가 정말 사명당을 통한 민족정기를 확립하려 한다면, 그건 더 이상의 사명당 같은 승려를 만들지 않기 위한 반전과 평화의 노력일 것이다.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승려의 입장으로써 살생을 한다는 것, 그럼으로써 겪었을 그들의 고통을 이해한다면, 더 이상 그들과 같은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한 것을 호국불교의 전통으로 내세워야 할 것이다. (제발 불교 신자로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을 한 사람에게 호국불교의 전통을 내세워 괴롭히지 말고)

이야기가 좀 새는 거 같지만 얼마 전 이화여대를 방문한 정몽준 후보에게 어느 학생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자 "왜 군대도 안 가는 여자가 병역거부 운동을 하느냐"라는 놀라운(?) 반문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학생이 "전쟁이 날 경우 여성이 피해를 입기 때문" 이라고 답했다.

그 일이 있기 전에도 그 학생과 비슷한 이유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지지한다는 이대 총학의 발표가 있자, 얼마 후 여러 남성 네티즌들의 사이버 테러가 일어났다. 남성 네티즌의 사이버 테러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지지한다는 데는 동의 하지만, 전쟁이 일어났을때 여자들이 피해를 입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병역 거부를 지지하는건 옳치 않다는 것이 대부분의 테러의 핵심이였다(혹은 군대도 안가는 것들이 무슨 병역 거부지지는 지지냐는 것도)

하지만 시각을 조금 돌려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일제 시대하에 군 위안부로 젊은 시절을 보낸 김OO 할아버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 이라든가 '술에 취한 미군병사들(제인과 메리외 2명) 하교길 남고생 집단 성폭행'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전쟁이 일어났을시 남성과 여성이 처하는 입장이 다르다면, 그들이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를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지지한다는 것에, 남성이냐 여성이냐는 중요치 않다. 서로의 다른 입장에서 바라보는 양심적 병역 거부 지지는 그 차이를 차이로써 인정하면 되는 것일 뿐이다.

참고로 사명당 기념사업회측에서는 월드컵 기간이였던 지난 6월에 사명당을 이달의 문화인물로 추천하려 하였다고 한다. 민족간의 앙금이 가라않지 않은 우리와 일본의 관계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일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왜 몇백년 전의 인물인 사명당 이여야 하는가? 아직까지도 친일의 잔재를 청산하지도, 청산할 수도 없는 우리의 현실에서 아주 오래된 사진첩만 꺼내어 추억에 잠기는 건, 현실의 문제를 간과하는 건 아닐까?

마지막으로 종교나 개인의 양심마저도 국가라는 개념아래에 두고 생각하는 국가주의자 분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

당신의 목은 우리의 보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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