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번화가는 그리 크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한 곳은 걸어서 가기에도 적당하다. 물론 지하철이 잘 되어 있어 지하철을 타도 문제는 없지만 시간을 다투지 않는 일이라면 그저 걷는 것도 괜찮다.
고풍스러운 건물, 유적, 박물관, 극장 등 그 자체로 볼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지하철 요금도 한 정류장을 가도 1.1 파운드 정도로, 우리 돈으로 2000원 꼴이니 몇 번 타다보면 그 돈도 꽤 들어간다.
영국박물관 앞의 샌드위치 가게에서 10분쯤 천천히 걸으니 코벤트가든 지하철역이 나온다. 그곳 역에 도착하여 마켓 쪽으로 가는 길은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차량 통행이 금지된 넓지 않은 길 양쪽으로는 늘 누군가가 특이한 복장을 하고 행위예술을 펼치거나, 특이한 악기를 연주하거나 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 북미대륙 인디안 후예들(?)의 연주 |
| 거리의 성악가의 오페라 아리아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
| 거리의 성악가의 오페라 아리아 'Nessun Dorma' (1) |
| 거리의 성악가의 오페라 아리아 'Nessun Dorma' (2) |
| '로얄오페라단'의 '투란돗' 3막의 아리아 'Nessun Dorma' |
오늘은 한쪽에 몇몇 중국인들이 지압을 한다며 엉성한 의자 몇 개 놓고 장사를 하고 있다. 5분 정도 대충 이리저리 비틀고 돌리고 주무르고 하면서 5 파운드를 받는다. 대단한 수입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모습이 서양인들에게는 신기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남편과 같이 온 관광객인 듯한 한 부인이 민소매 옷차림으로 대담하게(?) 몸을 맡기고 5분쯤 지나더니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5파운드를 주고 간다. 사람들이 주위에서 구경하다가는 용기를 내서 의자에 앉는다.
그런 중국인들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으로, 누가 나서서 저 사람들의 눈길을 끄나... (동북)아시아적인 것의 모든 것이 중국적인 것, 아니면 일본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한국적인 것은 그 아류(epigone)쯤으로 인식이 되고 있는 이곳에서.
이렇게 몇 개의 관문(?)을 통과하고 나니 옛 인디언의 후예같은 모습의 사내 둘이서 음악을 연주하는데, 한 사람은 팬플루트(처럼 생긴 악기), 피리(같은 악기), 그리고 북과 만돌린(같은 악기)을 부지런히 번갈아가며 연주하여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그 음색이 왠지 모를 슬픔을 자아내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다른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세우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앞으로 나와 동전을 놓고 간다. 나도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왠지 그들의 음악 속에 미국 서부개척 당시의 인디언 조상의 운명이 녹아있는 것 같아 마음이 처연해졌다.
나의 코스는 항상 정해져 있다. 그렇게 몇 개의 관문을 거쳐 마켓의 북쪽에 다달으면 오른쪽 교회 앞으로 간다. 그곳에는 항상 대행사(?)가 펼쳐지곤 한다. 오늘은 높이가 5미터는 될법한 높은 곳에 쳐놓은 밧줄 위에서 칼을 가지고 져글링을 한다. 연신 뭐라 떠들어대면서 사람들을 끌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 마켓 서쪽 정문을 지나 벼룩시장과 노천카페를 지나 클래식음악을 연주하는 곳에 이른다. 코벤트가든에 오고 싶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곳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음악을 들으며 왔다갔다 하다보면 몇 시간이 금방 가버린다.
연주자들도 계속 바뀐다. 그들 사이에는 나름대로 서로 시간이 정해져있는 것 같았다. 한 팀이 거의 끝날 무렵 다음 팀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인수인계(?)를 한다. 그러니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질리지 않고 오래 머무를 수가 있다. 그러면서 이 가게 저 가게 다니며 물건을 사게끔 유도를 하니, 상술치고는 고급 상술이다.
이곳의 음악은 콘서트홀에서 정장을 빼 입고 듣는 '보자르'나 '이무지치'와는 다르다. 그 아마츄어들의 음악이 콘서트홀에서 듣는 정제된 음악보다 훨씬 더 큰 감흥으로 다가온다. 이름없는 그들이 아무런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펼치는 음악이 서민대중과 같이 호흡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한 흑인 여성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흑인 성악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귀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이하게 느껴졌다. 성량이 대단했다. 그런데 귀에 익은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아리아 '여자의 마음은(La donna e mobile)'과 '라 트라비아타'의 아리아 '축배의 노래(Libiamo ne'lieti calici)'를 끝내고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돗'의 아리아 '아무도 잠들지 못하리(Nessun Dorma)'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마음이 뛰었다. Nessun Dorma... 첫 만남에서 나의 온 신체기관이 정지하는 듯한 전율을 느낀 곡이다. 그런 웅장한 아리아를 이런 곳에서 듣게 되다니...감개가 무량했다. 오늘 마침 부근의 '로얄오페라하우스'에서 '투란돗' 공연이 있을 예정인데, 그래서 그 곡을 택한 것일까? 저런 성악가들이 있기 때문에 제시 노만(Jessie Norman)같은 세계적인 성악가가 탄생하는 것이리라.
그 흑인여성의 순서(?)가 끝나자 바로 5중주단이 들어왔다. 클래식음악 하는 사람들 답지않게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친구가 넉살좋게 분위기를 이끌고 있었다.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악기를 이리저리 돌리기도 하고, 펄쩍펄쩍 뛰기도 하면서 흥을 돋구었다.
그러다 지나가는 할머니를 하나 붙들어 놓고 박수를 유도하자 그 할머니는 박수를 치더니 이윽고 흥이 나셨는지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소위 '캉캉' 춤이었다. 연주자, 할머니 그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 하나가 되어 박수를 치고 있었다.
음악연주가 끝나자 그 할머니에게 박수가 터져 나왔다. 등이 굽고 머리가 허옇게 센 할머니와 중주단, 그리고 관중의 하모니, 부러운 광경이었다.
그 광경을 뒤로 하고 '로얄오페라하우스'로 표를 구하러 갔다. 공연 당일 날 표를 구한다는 것이 조금 무리다 싶었지만 그래도 지난번에도 성공하지 않았던가. 친구가 못 나왔다며 공연 시작 5분전쯤에 표를 사지 않겠느냐는 여성이 있어서 그때도 싼값에 쇼팽의 곡을 발레화한 공연을 감동스럽게 본적이 있었다. 그것도 그녀의 옆자리에서 마치 남자친구처럼.
가느다란 희망을 안고 가 보았다. '투란돗'은 무리를 해서라도 꼭 보고싶었다. 언제 이곳에서 '로얄오페라'단의 '투란돗' 공연을 볼 수 있겠는가. 런던에야 다시 올 수 있겠지만 런던에 왔을 때 나의 런던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로얄오페라단이 '투란돗' 공연을 올릴 가능성은 0에 가까운 것, 기약이 없는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비싼 표만 몇장 남아있을 뿐이었다. 값을 물으니 45 파운드, 49파운드 그리고 140파운드, 그렇게 세 종류의 좌석만 남아'있다고 했다. 45파운드면 우리 돈으로 9만원 돈이다. 갈등이 일었지만 어쩌겠는가, 45 파운드짜리 좌석을 하나 확보하고 다시 광장으로 나와 아까 갔던 그 장소로 갔다.
가는 도중에 평소엔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마술이며 져글링이나 하던 곳에서 여자성악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겠는가. 그곳에선 큰 체구의 백인여성이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고 있었는데 아까의 그 흑인여성보다도 성량이 엄청 풍부했다.
아리아도 평소에 듣기 어려운 고급 아리아를 주로 불렀다. 들리브의 오페라 '라크메(Lakme)' 중의 아리아 '꽃의 이중창(Viens, Mallika)'을 부르더니, 푸치니의 오페라 '지아니 스키키(Gianni Schicchi)'의 아리아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를 부른다.
그러면서 관중 속으로 들어가 나이 지긋한 한 할아버지에게 무릎꿇고 애원을 한다. 노래가사의 의미처럼,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아버지에게 간청하듯... 그러자 그 머리가 허옇게 센 할아버지 포옹으로 화답한다. 그 할아버지, 그 노래에 담겨진 의미를 알고 있었을까...
이어 그녀도 'Nessun Dorma'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프로같았다. 제스처며 인사하는 것이며 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 하며... Oh, my God!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 엄청난 아리아를 오늘 하루에만 두 번째 듣는 것이다. 이따가 공연 때 들을 것까지 합하면 하루에 세 번이다. 그것도 live로.
그곳에서 다시 광장 쪽으로 눈을 돌리니 머리가 허옇고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다. "Tears in heaven", "Wonderful tonight" 같은 달콤한 노래들을 기타를 치며 부르고 있었다. 한참을 있다보니 어느덧 7시가 가까워졌다. 오페라하우스로 향했다.
7시에 시작한 오페라 공연이 끝나서 밖에 나온 것이 밤 10시 20분경. 처음 관람하는 '투란돗' 공연의 감흥으로 가슴은 뛰고 있었다. 밖에는 온갖 세계 명차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쟤규어, 롤스로이스, 베엠베, 벤츠 등등. 그 사이로 나는 부지런히 빠져나왔다. 런던의 코벤트가든에서의 나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었다.
이곳에 수없이 와 봤지만 오늘처럼 횡재(?)를 한 것은 처음이다. 물론 원하면 CD로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이지만, 생음악으로 듣기는 그리 쉬운 노래들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오페라 아리아를 보면서 들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챈널인 KBS의 '열린 음악회'에서도 쉽사리 들을 수 없는 수준 높은 오페라 아리아들이다. 그런 아리아 중에서도 압권인 "Nessun Dorma"를 오늘 3번이나 들은 것이다. 어찌 횡재(?)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아까 낮의 광경을 떠올린다. 부럽다. 넓지 않은 광장 이곳 저곳에서 서로 다른 취향과 성격의 공연(?)이며 퍼포먼스들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곳. 그런 공간을 요모조모 기가 막히도록 잘 활용하는 그들. 커피든 포도주든 한잔씩 앞에 놓고 조용히 담소를 나누면서 작은 공연을 지켜보는 그 사람들의 세련된 모습이 자꾸 어른거렸다.
꼭 삼겹살에 소주를 들이키거나, 그것도 남의 입에까지 꼭 부어넣어야 하고, 술에 절어 갈짓자 걸음을 걸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의 문화적 심성도 조금은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남을 배려하는 훈련이 잘 안 되어 있어 사소한 일에 목숨걸고 싸우거나, 거칠고 공격적인 우리네의 심성도 조금 누그러져야 하지 않을까.
서민대중이 푼돈으로 후원하는 그런 거리공연 문화 속에서 고급문화가 싹트고 그런 토양 속에서 세계적인 음악가, 예술가, 행위예술가 들이 탄생하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언제나 그런 문화를 가지게 될까.
우리도 앞으로 시장이라든지 쇼핑몰을 짓는다면 이런 것들도 좀 고려를 해서 지으면 어떨까. 우리에게는 광장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도 문화적 욕구가 분명 있을 것이며 그것을 표출하고 누릴 수 있는 공공의 문화공간이 필요하다. 시장이 지금처럼 필요한 물건만 달랑 사서 돌아오는 곳이 아닌, 여유롭게 커피나 차를 마시며 작은 공연을 지켜볼 수 있는 그런 문화공간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나라 공연장의 관람료 체계도 상대적으로 덜 부유한 사람들이 혜택을 지금보다 더 많이 누릴 수 있도록 바뀌면 좋겠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오페라 전용극장이 없고, 대개의 공연장은 관현악단의 연주와 기타 다른 공연을 염두에 두고 설계를 해서 만든 공연장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의 관람료 체계는 주머니가 얇은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되어 있다.
로얄오페라하우스 같은 곳의 관람료는 (투란돗 공연을 예로 들면) 8 파운드(1만6천원 가량)에서 140 파운드(28만원)로 차이가 크게 나, 돈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많이 내고 좋은 자리에서 볼 수 있고, 없는 사람은 아주 싼 값에도 원한다면 좋지 않은 자리에서라도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심지어는 1층 맨 뒤에서 서서라도 볼 사람들을 위해 4파운드짜리 표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런 수준의 공연의 표 값이 대개 2만원 정도부터 시작해서 10여만원 정도까지로 그 차이가 크지 않으며, 싼 좌석 값이 상대적으로 비싸게 책정되어 있다. 좌석을 세분화하지 않고 대충 총액을 맞추어 값을 매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돈 없는 사람은 마음은 있어도 누리기 힘들게 되어 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다 같이 문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런던의 코벤트가든에서의 하루는 나에게 많은 것을 뒤돌아보게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9월 런던 체류중에 쓴 글이며, 대자보(jabo.co.kr)와 하니리포터에도 올렸습니다.
오페라 '투란돗(Turandot)'의 줄거리
오페라는 고대중국의 북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제 왕은 늙고 병들어 그의 딸 투란돗 공주가 결혼을 함으로써 남편(왕)과 함께 나라를 다스려 주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투란돗 공주는 스스로 맹세를 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그 맹세란 그의 먼 조상인 여왕이 외적의 침략으로 살해당한 사실을 떠올리며 자기는 어느 누구와도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오는 남자들에게는 도전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것은 그녀가 묻는 수수께끼에 답을 맞추면 그녀와의 결혼이 허락되나 만일 답을 못하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었다. 많은 젊은이가 시도를 하였으나 답을 하지 못 해 죽음을 맞이하였다. 결국 그 도전의 기회란 투란돗이 결혼을 하지 않으려 만들어 놓은 덫에 불과했다.
지금은 망한 왕조 타타르의 왕자 칼라프(Calaf)는 투란돗 공주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리하여 그는 목숨을 걸고 그녀가 내는 수수께끼에 도전하기로 마음먹는다. 그의 늙은 아버지 티무르(Timur), 그리고 남몰래 칼라프를 사모하고 있는 몸종 류(Liu)가 완강하게 말리지만 소용이 없다.
드디어 시련의 순간을 이겨내고, 칼라프는 어려운 수수께끼 세 개를 모두 푼다. 그러나 투란돗 공주는 왕에게 어떤 남자도 자기를 소유할 수 없다며 결혼하지 않을 수 있도록 간청을 한다. 그러나 황제는 약속은 신성한 것이라며 거절을 한다.
이에 칼라프 왕자는 그녀의 마음을 얻고자 그녀에게 수수께끼를 하나 낸다. 만일 그녀가 다음 날 새벽까지 그가 누구인지 이름을 알아맞히면 자기를 죽여도 좋다는 것이었다.
공주는 그의 이름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잠들어서는 안된다 (Nessun Dorma)는 명령을 북경 전역에 내린다. 그리고는 그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칼라프 왕자에게 부와 여자를 제공하며 마음을 돌리려 하기도 하고, 티무르의 몸종 류가 그 내막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류에게 고문을 가한다.
그러나 류는 그의 이름을 밝힘으로써 배신하기보다는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류의 이러한 지고의 사랑은 얼음같이 차가운 투란돗을 움직이게 한다. 칼라프는 스스로 그의 이름을 공주에게 말한다.
다음 날 아침 왕과 궁정대신, 그리고 백성들이 모여있는 자리, 칼라프의 운명이 결정될 순간이다. 투란돗 공주는 그 이방인의 이름을 알아냈다고 말한다. 칼라프가 품에서 단도를 꺼내 자결을 하려하는 순간, 투란돗은 “그의 이름은 ‘사랑’”이라고 선언한다.
칼라프 왕자가 투란돗 공주를 ‘소유’하고, 중국을 통치하게 되는 순간이다.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기뻐하며 환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