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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으로 제재는 받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신 교수에게도 억울한 면이 있으리라 생각한다"라는 정운찬 서울대 총장의 발언을 놓고 논란이 한참인 요즈음에, 필자가 재학중인 학교에서도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 파문이 일고 있다. 그것도 총학생회의 집행 간부 사이에 벌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모으고 있다.
사실 대학내 성폭력 관련 사건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교수-조교간에서 벌어지는 일까지는 잘 모르지만, 학생들 사이에 벌어진 사건들만 세어 봐도 필자의 기억에는 동아리 연합회 내에서 벌어진 성폭력, 모 단과대 학생회장의 성폭력, 도서관 내에서 벌어진 성추행 등 많은 사건들이 자리잡고 있다. 더욱이 공개되지 않고 은폐, 축소된 사건들 또한 즐비할 것이기에, 학내 성폭력의 심각성은 간단히 덮고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들어가 보면 각각의 사건이 각자 다양한 맥락에서 발생한 것이겠으나, 일련의 성폭력 사건에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일단 그 사건이 공개 되었을때, 의외로 성폭력 가해자인 남성 측의 반응은 일면 의연하기까지 하다. 아, 물론 그들은 대부분 정중히 사과한다. 그것도 그들이 "노회한" 교수가 아니고 아직은 "순수한" 학생들이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그들의 사과는 진지하며 또 솔직하다.
그리고 그 사과문을 읽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씩 씹히고, 그 사건은 흐지부지 잊혀지는 것이다. 으레 젊은 남성이 잠깐의 욕망을 참지 못해 사고친 것이겠거니 하고 다들 넘어간다. 군생활 기간을 포함하여 대학에 머무른 기간이 벌써 6년째이고 그동안 많은 성폭력 사건들을 보았고 또 가해자들의 사과문을 보았지만, 아직까지 그들이 저지른 "범죄"로 인해 특정한 처벌/제재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학내에 "성폭력 예방 및 처리에 관한 시행세칙"이라는 규정이 있긴 하지만 여기에서도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징계 수단은 "학보를 통한 - 그것도 가해자의 동의를 구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 공개사과"와 "재교육 프로그램"에 국한되어 있는 실정이다.
연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에서 문화학을 전공하고 있는 '다다'씨는 "'성폭력'은 거리에서 발을 밟히는 것만큼이나 빈번히 일어나는 것인데, '성폭력'이라는 어감이 지니고 있는 무거움 때문에 여성주의자가 아닌 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기는 힘들다"며, "성폭력을 분명한 하나의 범죄로 인정할 때만이 성폭력 피해자를 문란한 생활의 당사자로 오해되며 되려 비난의 눈초리를 받는" 지금의 현실이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 성폭력은 분명히 범죄이다.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자신들을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라고 일컫고 있는 현실은 성폭력이 남기는 신체적, 정신적 충격이 다른 형사상의 범죄가 낳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 문제에 있어 사회적으로 합의된 부분이 지나치게 보수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에 입각해 있기 때문에, 엄연한 범죄자인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그들이 저지른 범죄에 합당한 법적/사회적 제재를 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운찬 총장의 발언이 담고 있는 "성폭력에 대한 접근방식"에 대해 많은 비판적 담론들이 생성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여성주의/여성운동 단체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곤란하다. 노혜경씨의 말대로, "다른 부분은 다 진보적인데 성 문제에 대해서만 보수적인"성향을 지닌 남성들은 "진짜" 진보주의자라고 할 수 없다.
적어도 대학에서부터라도, 한 인격에 커다란 상처와 후유증을 입히는 성폭력 문제를 여성들만의 운동 주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주제로 고민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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