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 한국인의 주식인 '쌀'을 생각하면 쌀이라는 명칭에서부터 흥미로움을 느낀다. 언어학자나 국어학자가 아니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원을 찾아 올라가면 '살(肉)'이라는 말과 만나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쌀과 살은 사람, 삶, 살림 등의 말과도 밀접한 연관을 갖거나 한 갈래의 말일 거라고 여겨진다.
언어학은 고고학과 불가분의 관련을 맺는다. 그래서 쌀의 재배 기원을 찾는 일에 있어서도 언어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이 함께 연구를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쌀의 재배가 있었고, 특히 신라에서는 귀족들이 주로 쌀을 먹었고,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쌀이 농산물의 대종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의외로 쌀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을 뿐 아니라, 조와 보리 등 다른 농산물들이 먼저 주곡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다른 곡식들에 비해 역사가 짧은 그런 곡식에게 살, 사람, 삶, 살림 등과 불가분의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 거의 분명한 쌀이라는 명칭이 부여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정말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쌀이 원래는 살로 불렸다는 말도 있고, 경상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지금도 쌀을 살로 발음한다.)
사람의 삶과 살림에서 참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온 쌀이 오늘에는 그 가치가 나날이 하락되고 있는 현상을 겪고 있긴 하지만, 나는 다행스럽게도 쌀이 사람의 살과 피, 더 나아가 목숨과 한가지로 귀하게 대접받던 시절에 대한 좋은(또는 슬픈) 기억들을 알뜰히 간직하고 있다.
1950년대 중후반, 우리나라에는 쌀이 너무도 부족했다. 그래서 동남아에서 쌀을 들여와야 했다. 그것이 외국의 무상 원조였는지, 후에 갚기로 하고 빌려온 쌀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지만,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와 함께 자루를 가지고 면사무소에 가서 '안남미'라고 부른 쌀을 배급받아 어깨에 메고 왔던 기억이 아련하다. 가늘고 길쭉길쭉한 그 쌀로 밥을 해서 먹을 때 밥이 메마르고 푸석거리면서 이상한 냄새도 나고 맛이 없던 기억도….
어머니는 밥을 지으려고 쌀을 씻을 때 한 톨도 흘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곤 했다. 어쩌다 몇 톨을 흘리기라도 하면 우물가 수채 구멍 앞의 쌀알들을 일일이 손끝으로 주워담곤 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쌀알을 흘리는 것은 하늘에 죄를 짓는 짓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밥을 먹을 때 밥알을 흘리기라도 하면 아버지로부터 꾸지람을 들었다. 밥그릇에 밥풀들을 붙여놓은 채로 숟갈을 놓았다가 된통 꾸지람을 들은 기억도 선연하다. 아버지는 '밥상머리교육'이 엄했다. 손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쥐지 마라, 밥은 꼭 숟가락으로 먹어라 등등의 말씀도 따지고 보면 밥(쌀)의 귀중함을 일깨워주는 가르침이었다고 생각된다. 아버지는 쌀을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만이 큰일을 할 수 있고 하늘을 두려워할 줄 아는 법이라는 말씀도 하곤 했다.
지금은 나도 어린 자식들을 기르고 있지만, 내 아버지의 엄한 가르침과 권위를 도저히 모방할 수조차 없다. 배고픈 것이 전혀 뭔지도 모르고, 많이 먹기보다는 적게 먹는 것이 몸에 좋은 이 시절에는 쌀의 귀중함을 가르쳐 줄 여지는 더욱 없다.
사람들은 살을 불리지 않거나 빼기 위해서 밥을 기피하기까지 한다. 자칫하면 밥에 대한 혐오증마저 생길 판이다. 그러다 보니 쌀을 생산하는 농민들의 노고도 알 턱이 없고, 하늘에 감사할 줄도 모른다.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늘에 진정으로 감사할 줄 모르니, 남아도는 쌀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하늘의 뜻일까는 더욱 알지 못한다. 남는 쌀을 가축 사료로 써야 한다는 논의를 하면서 지금도 굶주리고 있는 북한 동포들을 돕는 일에는 두 손을 내젓고 눈에 쌍심지를 켜는 사람들이 많다.
남아도는 쌀로 북한을 돕는 것을 반대하면서 가축 사료로 쓸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과연 쌀의 귀중함을 알까? 그들이 감히 하늘의 뜻을 헤아릴 수 있을까? 쌀을 천대하면서도 하늘 우러러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들이….
못 먹고 못살았던 시절에도 이웃의 굶주림을 헤아리는 인정은 사람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최고의 미덕이었다. 동정심은 조물주가 사람에게 베푼 가장 고귀한 마음이기도 하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말도 있듯이 쌀은 인정의 원천이기도 하다. 사람은 결코 인정과 동정심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쌀의 가치를 잊고 푸대접하는 이 시절에도 쌀의 마음―인정만큼은 절대로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인하대학신문'에도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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