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응아의 영정 앞에서 손을 모은 베트남 노동자들
ⓒ 박현주
추모제가 시작되는 오후 5시가 다가오자, 대전시 대화동 빈들교회의 좁은 예배당이 추모객들로 북적거린다. 외국인 노동자들, 대화동 주민들, 시민사회단체 회원들 그리고 집을 잃고 1백일째 노숙투쟁중인 용두동 주민까지 교회에 속속 모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재작년 10월 26일 대전 대화동 1.2공단의 D염색회사에서 베트남 산업연수생으로 일하던 응아(당시 22세)씨가 사귀던 한국인 남성 노동자에게 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1주일만에 사망한 지 2주기가 되는 날이다.


관련
기사
한 베트남 여성 노동자의 죽음


조촐한 추모대 앞에는 생전에 아리따웠던 응아의 영정이 놓여 있다. 어린이 문화패 '씨알무늬'의 풍물과 몸짓공연 후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대전지역외국인노동자와 함께하는 모임'(이하 외노모임) 자원봉사자 강경영씨의 추모시 낭독, 김규복 목사의 추모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추모객들이 모두 함께 부르는 추모의 노래가 예배당에 울려퍼졌다.

"아름답게 만날 수도 있었을텐데, 당신과 마주선 곳은 힘겨운 이주노동의 현장.
우리는 가해자로 당신은 피해자로 역사의 그늘에 내일의 꿈을 던지고
어떤 변명도 어떤 위로의 말로도 당신의 아픈 상처를 씻을 수 없다는 것 알아요.
그러나 두손 모아 진정 바라는 것은 상처의 깊은 골 따라 평화의 강물 흐르길.
미안해요 베트남, 미안해요 베트남
어둠속에서 당신이 흘린 눈물자욱마다
어둠속에서 우리가 남긴 부끄런 기억마다..."
"

▲ 빈들교회 어린이 풍물패의 추모공연
ⓒ 박현주
베트남 전쟁 때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참회하는 노래 "미안해요, 베트남"을 약간 개사한 곡이다. 30년 전 한국인은 아무런 원한도 없고 싸울 이유도 없는 베트남 땅에서 양민을 죽이고 짓밟았던 비극을 만들었다. 피의 대가는 미국에게 현금으로 지불받았고 그 돈은 경부고속도로를 뚫었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그 일을 잊었지만,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은 아직도 그 비극의 날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그리고 30년 후 그들의 자손들은 가난을 벗어나려 한국땅에 왔다. 3D업종에 종사하면서 갖은 멸시를 받으며 이 나라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응아의 죽음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모순덩어리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여러 개의 단어들이 떠오른다. 제국주의, 남성우월주의, 천민자본주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 약자에게 가하는 자연스런 폭력...

2년전 응아의 영정 앞에서 흐느끼던 베트남 노동자들과 외노모임의 자원봉사자들의 얼굴이 가만히 떠오른다. 연락을 받고 급하게 달려간 병원, 처참한 모습, 동료노동자들과의 대담, 죽음의 원인을 밝히려는 노력, 회사와의 싸움, 공장 안에서의 추모제.... 늦가을의 찬 비가 흩뿌리는 잿빛하늘 아래에서 눈물 흘렸던 우리들.

응아의 죽음 후 빈들교회와 대전지역외국인노동자를 위한 모임(외노모임)에서는 응아의 고향땅에 복지관을 건립하기로 하고 여러 차례 베트남을 방문하였다. 필자는 외노모임 일행과 함께 지난 3월, 고향 땅에 묻힌 응아의 묘를 찾아갔었다.

▲ 응아가 남긴 어린 딸 위인. 귀엽기 그지없다.
ⓒ 박현주
아무 것도 모르는 응아의 어린 딸은 무덤가를 깡총거리며 뛰어다니고, 늙은 어머니는 잡초를 걷어내고 있었다. 응아의 고향은 '호치민시 구찌현 타이미사 미카인아'에 있는 전형적인 마을. 길 양옆으로 끝없는 푸른 논이 펼쳐져 있고 3월의 저녁햇살이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 곳은 전쟁 때 고엽제 피해를 많이 입은 가난한 동네다.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응아의 집엔 이렇다할 살림살이도 없고, 벽에 덩그라니 걸린 응아의 영정만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응아의 딸 위인(4)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한국에서 온 이방인들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정말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응아의 이름은 베트남어로 쓰면, 'Nga'인데, 한국어엔 없는 발음이다. 베트남 사람들의 발음을 가만 들어보면, 코와 목구멍 안쪽에서 내는 소리다. 이 이름엔 '고니'란 뜻이 있단다. 예쁜 이름이다.

그래서인지 베트남 여자 중에는 'Nga'란 이름이 많다. 고니처럼 아리따웠던 응아가 세상을 뜬 지도 2년. 하얀 새처럼 어머니 가슴으로 날아간 베트남 여성노동자의 영정 앞에 하얀 국화 한송이 바친다. 폭력을 걷어낼 평화로움을 기원하며...

▲ 응아의 묘를 돌보는 어머니
ⓒ 박현주

▲ 가난한 응아의 집.
ⓒ 박현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