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정권말기가 돼서 우리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를 하고 있고 비판도 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어느 한 시절 우리를 만나려고 애쓰던 그런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때를 생각하고 지금을 비교하면서 인생의 무상을 느낍니다."
김홍일 의원 후원회에서 한화갑 대표가 한 말이다.
보통 국회의원의 후원회는 분위기가 밝고 떠들썩하다. 그러나 정권 말기, 대통령 아들의 후원회는 엄숙하고 쓸쓸했다.
7일 오전 11시30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민주당 김홍일 의원의 후원회가 열렸다. 김 의원이 국회의원이 된 후 세번째 열린 후원회. 첫해에는 김 의원이 후원회를 연다고 하자 일각에서 "대통령의 아들이 후원회를 하려고 한다"고 따갑게 비판해 그만 두기도 한, '사연 많은 후원회'였다.
이 자리에는 한화갑 민주당 대표와 이협·정균환·김태랑 최고위원을 비롯해 현역의원 약 40여명과 약 200여명의 후원자들이 참석했다. 김 의원은 부인 윤혜라씨, 둘째·세째 딸 정화·화영씨와 함께 손님을 맞았다.
참석 의원은 김경천·김상현·김성호·김영진·김운용·김태홍·김화중·김희선·남궁석·윤철상·박병윤·박양수·배기선·배기운·심재권·이강래·이상수·이재정·이훈평·장재식·장태완·전갑길·정대철·정동채·정범구·정세균·정철기·천용택·최명헌·최재승 의원과 자민련의 이양희·원철희 의원, 무소속의 이윤수·김덕배 의원 등이다.
국회의원 후원회는 동료·선배 의원과 외빈들의 덕담이 줄을 잇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날 후원회는 그렇지 않았다. 한화갑 대표만이 단상에 올랐다.
한 대표는 "김홍일 의원을 보면, 우리가 살아온 과거의 역사가 알알이 점철된 현장을 목격해서 대단히 가슴이 아프다"면서 무거운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우리가 과거에 어두운 세상을 살 때, 우리는 '누가 우리를 보는가' 이렇게 옆을 살피면서 사람을 상대했고, 우리를 상대한 사람들이 우리를 경원시할 때, '왜 우리를 경원시 하느냐'는 항의보다는 '우리가 저 사람들을 이해해야지' 이런 식으로 살았고, 우리가 70년대와 80년대을 살면서 무슨 때만 되면 굴비처럼 엮여서 감옥행이었던, 그 세월의 흔적 하나하나가 김홍일 의원 모습에서 다 나타납니다."
한 대표의 축사가 끝나자 주인공인 김 의원이 비틀비틀거리며 불편한 몸을 이끌고 단상에 올랐다. 김 의원은 71년 '서울대 내란음모사건', 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 관련해 투옥돼 심한 고문을 받아 고문후유증을 앓고 있다.
연설을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김 의원의 발음을 알아듣기 힘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김 의원의 부인 윤애라 씨와 한 대표 등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내외 귀빈 여러분! 회고해 보건대 제 인생은 대통령 아들이라는 현실과 정치인이라는 의무 사이에서 단 한번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습니다. 때로는 사회 일각의 부당한 비난을 받아들여야 했고, 주위의 기대가 너무 힘겨워 피하고 싶은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매사를 정정당당하게 대응했지 적당히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연설 때는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연설 후 확인한 김 의원의 연설문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거물 야당정치인의 아들, 원내에 진출한 이후 한 정치인, 아버지의 대통령 당선과 노벨상 수상,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발병과 두 동생의 구속 등 수많은 사연이 이 말속에 담겨 있다.
이날 후원회 행사는 12시 20분경 한 시간 가량만에 1부가 끝나고 2부로 포크송 음악회 행사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