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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해적판 DVD 타이틀. 중국정부가 수입을 금지한 영화가 버젓이 불법 복제판으로 판매되고 있다.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해적판 DVD 타이틀. 중국정부가 수입을 금지한 영화가 버젓이 불법 복제판으로 판매되고 있다. ⓒ 모종혁
중국정부가 수입금지한 영화도 수두룩해

중국산 불법 복제판 DVD 타이틀이 한국에까지 진출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지역코드가 3으로 동일하다는 데 있다. DVD는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들의 글로벌 판매전략에 따라, 각 지역마다 다른 코드의 플레이어와 타이틀을 사용하고 있다.

미국과 중남미가 1, 일본이 2, 한국·중국·동남아가 3, 서유럽이 6 등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중국이 같은 지역코드를 사용함으로써 음성과 자막이 함께 엮어져 있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애니메이션으로, 중국 내에서 팔리는 해적판 중 <포카혼타스> <타잔> <슈렉> 등 홍콩에서 제작된 타이틀은 영어, 한국어, 중국어로 된 음성과 자막이 모두 포함되었다.

영화 <쉬리>의 경우 한국에서 판매되는 정품과 똑같은 매뉴얼에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칼어 등 지역번호 1의 음성대와 중국 광동어까지 끼여넣는 놀라운 기술력(?)까지 보여주고 있다. 해적판이 정품보다 더 다양한 기능을 갖춘 것이다.

외국에서 발행된 DVD 타이틀을 복사하여 불법 복제판으로 판매하는 데에는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전세계 영화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 극장 상영중인 < i am sam >은 중국에서 이미 지난 10월초부터 해적판 DVD 타이틀이 나돌고 있다.

영화 <친구>와 <2009 로스트 메모리즈>는 한국에 비해 단 10일 늦어 중국 DVD 애호가와 만났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타이틀은 일본과 같은 시기에 중국시장에서 선을 보였다.

이 가운데에는 중국정부가 엄하게 금하는 영화를 국내에 판매하고 있어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지난 1999년 아카데미영화제 작품상은 거머쥔 <아메리칸 뷰티>는 중국정부가 정식수입을 금지했는데 불구하고 DVD, VCD 타이틀 제품이 한국과 같은 시기에 출시되었다.

뿐만 아니라 영상판매점에서 팔리는 해적판 DVD 타이틀에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정인> <쇼걸> <부기나이트> 등 노출과 섹스 신이 심하여 중국관영언론에서 언급마저 꺼리는 영화도 수두룩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티벳에서의 7년>과 같은 노골적인 반 중국 영화도 등장하여 해적판이 외국문화를 전파하는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진출에서 주의해야 할 점

이러한 불법 복제판 덕분에 한국의 대중문화가 중국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DVD 타이틀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영화의 붐을 일으키면서 또 다른 형태의 한리우(韓流)를 일으키는 현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명한 화질과 깨끗한 원음으로 접하는 한국영화를 통해 중국인들은 더욱 다양한 한국의 모습을 접하기 때문이다.

한국영화 매니아인 왕양(王洋)씨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보고 '사랑은 뭐길래'에서 받았던 한국사회의 남성우월주의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면서 "DVD 타이틀로 본 '쉬리', '공동경비구역JSA' 등을 통해 한국인이 지니는 분단의 아픔을 조금 엿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왕씨는 또한 "한국 드라마가 미남미녀들로 잘 포장되긴 했지만 천편일률적인 애정이야기나 남녀간의 삼각관계로 점점 식상해져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다양한 스토리구조를 지닌 한국영화가 중국인들에게 환영받는 것은 정서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중국은 통일된 단일시장이 아니라 분할된 시장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크게는 8개의 광역권 시장에서 수백 개에 달하는 소규모 소비시장으로 나뉜다. 여기에 지역마다 강한 지방색은 외국 엔터테인먼트기업의 진출을 어렵게 하고 있다.

중국에 기진출한 한국 문화산업 관계자들은 이런 현실을 들어, "무수한 인적·제도적 장벽으로 인해, 점을 만들기는 쉽지만 선이나 면으로 시장을 형성하기 무척 어려운 것이 중국시장"이라고 토로한다.

따라서 예기치 않은 해적판의 공로로 인지도를 높인 한국 대중문화가 제대로 중국에 진출하여 상업적으로 성공하려면 깊이 있는 연구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본질적으로 소비적인 성향이 강한 한국 문화산업이 단순한 유행으로만 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갈수록 외부 문화의 충격에 강한 저항능력을 키우는 중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젊은이들의 문화·소비 트렌드를 부단히 이해하고 중국정부의 문화개방 방향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한국 대중문화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현지화의 노력을 접목하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충칭 궈타이(國太)영화관 매표소 옆에 걸려져 있는 전지현 주연의 영화 '화이트 발렌타인' 포스터와 북한 예술단의 '꽃파는 처녀' 선전 포스터. 남북이 합작한 '한리우'가 중국 내륙에까지 진출했다.
충칭 궈타이(國太)영화관 매표소 옆에 걸려져 있는 전지현 주연의 영화 '화이트 발렌타인' 포스터와 북한 예술단의 '꽃파는 처녀' 선전 포스터. 남북이 합작한 '한리우'가 중국 내륙에까지 진출했다. ⓒ 모종혁
"중국의 장기적인 발전에 독이 될 것"

범람하는 최첨단 가짜상품 DVD 타이틀을 비롯한 문화상품의 해적판 문제에 일부 중국 지식인들은 우려하고 있다.

서남정법대학 법률학과 션핑(沈萍, 34, 여) 교수는 "중국정부가 문화상품의 불법 복제판에 대해 단호한 정책을 취하지 못하는 데에는 복잡한 사정이 얽혀져 있다"면서 "현재 중국 내 가전산업은 공급과잉상태인데 그나마 해적판이 가전제품 보급에 일조하기 때문에 쉽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녀는 또한 "아직 개인수입이 적은 일반 대중들이 비싼 가격을 치르고 정품인 문화상품을 구입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인민들에게 즐길 만할 오락거리를 마련해주어야 할 정부로서는 해적판이 싸게 먹히고 다양한 콘텐트를 구비하고 있어 근절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계륵'과 같은 존재인 중국의 불법 복제문제에 대해 설명하면서 "지금은 해적판의 폐해가 그다지 크지 않지만 결국에는 중국경제와 문화의 장기적인 발전에 독이 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같은 폐해를 인식한 중국정부 또한 지난해 WTO를 가입하면서 지적 저작권 보호의 입장을 수시로 천명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연해지역을 중심으로 중앙정부 차원에서 해적판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다.

상하이의 경우 음악·영상제품의 규범화와 효율적 관리를 목표로 음반판매업체의 등록자금과 영업면적을 일정한 규정으로 정하여 체계적인 감독관리를 진행했다.

이에 따라 상하이는 중국 내에서 해적판의 시장 점유율이 가장 적은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지방정부가 안정적인 재정수입을 내세워 불법복제판의 생산과 유통에 눈을 감는 현실은 쉽게 시정되기 어렵다.

중국 소비자들 스스로 해적판을 구입하는 것이 범죄에 동조하는 행위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는 한 중국정부의 노력을 물거품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중국 내에서의 불법 복제판 문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철저하고 끊임없는 단속과 소비자들의 의식제고 상황에서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한겨레의 하니 리포터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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