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만 해도 이라크는 유엔결의안은 미국의 침략책동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이라크에 대해서 매우 불공정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이에 마침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열리고 있는 아랍연맹외상회의에 모여있던 외무장관들은, 이번 유엔결의안 내용이 이라크에 대해서 자동적으로 군사공격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바그다드 당국에게 이해시켰다는 소식입니다.
그러나 아랍외상들의 생각하고는 별도로, 미국관리들은 아직도 이 부분을 강경일변도로 해석하고 있는 바, 백악관 비서실장인 앤드류 카드는 오늘 일요일 NBC-TV의 'Meet the Press'라는 대담프로그램에 나와서, 이라크에 대한 군사공격에는 유엔의 승인이 따로 필요치 않다고 잘라 말했고, 국방부관리들은 국방부관리들대로 이라크가 결의안을 준수하지 않을 때를 대비한 군사공격계획들을 언론에 흘리는 교묘한 심리작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앤드류 카드 비서실장은 방금 말씀드린 일요일 대담프로그램에서, "유엔에서 모여서 토의를 하고 그럴 수는 있겠지만, 우리(미국)는 군사행동을 벌이기 위해서 유엔의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미국정부로서는 만약 이라크가 생물학무기나 화학무기 혹은 핵무기를 은닉하고 있을 경우, 이라크에 대해서 군사행동을 가해도 좋다는 청신호쯤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금요일날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이라크관련 결의안에 의하면 이라크는 금요일인 11월15일 이전까지 결의안 수용여부를 유엔에 통고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이라크는 12월8일 이전에 대량파괴무기 보유내용을 선언해야 합니다.
역시 CBS의 대담프로그램인 'Face the Nation'에 출연한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만약 선언내용이 허위였다고 한다면, 이는 그들이 유엔결의안을 수용하지 않는 것이 되고, 바로 이런 사태는 유엔결의안에 대한 중대한 위반행위가 되는 것"이라고 금을 그었습니다. 그러면서 파월 장관은, "우리는 이라크가 무기사찰에 즉각 협조하도록 해야합니다. 2월까지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아랍인 무기사찰단원 포함 요구
카이로에 모인 아랍연맹외상들은 - 여기에는 이라크 외상도 포함돼 있습니다 - 일요일, 유엔결의안에 대한 암묵적 수용을 밝히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무기사찰단에 아랍출신 무기전문가들을 포함시킬 것과 결의안이 군사행동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보증을 요구했습니다.
유엔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던 시리아의 파루크 알샤라 외무장관도, 시리아는 유엔결의안이 자동적인 군사개입을 허용하는 내용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는 파월 장관의 편지를 받은 연후에 결의안 찬성을 결정했다면서 시리아는 또 유엔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들로부터, 이라크가 '중대한 위반'을 하는 경우에도 자동적인 군사행동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보장을 받았기 때문에 결의안에 찬성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부시대통령, '이라크, 마지막 시험대에 올라'
한편 부시대통령은 어제 토요일 정례 라디오 연설에서 - 미국대통령은 매주 토요일 아침 정례적으로 대국민연설을 합니다. 대개 한 5분에서 10분 정도 - 유엔결의안은 사담 후세인에게는 그야말로 마지막 시험대라는 점을 강조하고, 이라크는 지금, 지체하거나 협상하려들지 말고, 대량파괴무기를 포기할 것이며, 지난 10년간 해왔던 태도를 버리고 유엔무기사찰단에 적극 협력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면서 부시대통령은, 이라크 당국은 즉각적이고도 무제한적인 사찰을 허용하되, 어떤 문건, 어떤 인사에 대해서도 언제 어디서라도 사찰이 가능하도록 해야한다고 못박고, 과거처럼 속이고 빠지는 식은 그때는 통했을 지 모르지만 더이상 통하지 않을 것임을 엄중하게 경고했습니다.
무기사찰 어떻게 진행되나?
유엔결의안이 규정하고 있는 무기사찰절차는 엄격한 시간표로 짜여져 있습니다.
11월 15일까지 이라크가 결의안수용을 밝히면, 이라크는 12월 8일까지 화학무기와 생물무기 그리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면, 이를 선언해야 합니다.
또한 결의안은 이와는 별도로, 한스 블릭스 사찰단장이 11월 18일까지 사찰준비팀을 이라크에 보내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블릭스 단장은 만장일치로 채택된 결의안이 사찰단의 임무수행에 큰 힘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이후 사찰단은 45일 이내에 사찰준비를 마치고 사찰에 들어가서 60일 후에는 그 결과를 유엔에 보고해야 합니다.
또한 사찰단에게는, 과거와는 달리, 대통령궁을 포함해서 이라크내 어떤 곳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적인 접근"이 보장됩니다.
문제는 두 가지 - 이라크와 미국
이라크 사태의 핵심은 두 가지라고 봅니다. 하나는 이라크 쪽 사정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쪽 사정입니다.
이라크는 무슨 얘기로 적당한 은폐를 시도하든 간에, 그동안 생화학 및 핵무기개발을 해온 것이 사실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돈도 많이 들였을 거고, 결정적인 부품만 확보하면, 일단 핵 보유를 선언하고, 쉽게 건드리지 못 할 지위를 확보하고 싶을 것입니다. 또 그동안 입만 벌렸다하면 숨길 대량파괴무기는 없다고 해온 마당에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보유내용을 선언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닐 것입니다. 죽으나 사나 끝까지 숨길 것은 숨기고 버티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미국은 이미 이라크의 무기확보내용을 정보차원에서 거의 확인해 놓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라크가 유엔결의안에 대해서 소위 "중대한 위반"을 했다고 몰아가기는 여반장일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미국정부와 부시대통령이 사담 후세인을 제거해야할 존재로 보느냐에 달려 있는데, 사담한테는 불행하게도 미국은 이미 사담에 대한 평가를 오래 전에 끝냈습니다.
여기에 과거 클린턴이나 민주당 정권처럼 '가시적 성과'에 매달리는 실적 위주 외교를 '국익에 위험한 거래' 정도로 보는 시각이 주조인 공화당 군사 외교팀이 실질적인 자리에 포진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결론은 사담은 '삼진아웃'이 돼야하는데, 그 방법은 유엔결의안도 무기사찰도 아니고, 군사적인 외과수술 외에는 없다는 쪽으로 이미 나 있다는 얘깁니다.
그러므로 전쟁은 터지게 돼 있습니다
시간표 대로라면 전쟁은 12월 어느 시점에서 터지겠지만, 어쩌면 그보다 빨리 올 지도 알 수 없습니다. 러시아와 프랑스, 중국 - 제각기 전쟁을 막기 위해서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이고는 있지만, 이들의 노력에는 뚜렷한 명분이 없습니다. 전쟁이 무슨 명분싸움일까마는, 전쟁을 시작하려는 미국은 분명한 목표와 명분을 가지고 있는 데 반해서 이들한테는 이 부분이 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들의 존재가 사담의 오판을 가능케 해서 결과적으로 전쟁을 부추기고 있는 효과를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이래서 나오는 지도 모릅니다.
김정일 당국은 안심해도 좋은가?
미국이 악의축으로 규정했던 나라들 중에 이라크도 북한도 끼어있고, 그후 상황은 달라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최근에는 핵개발 시인 발언으로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는 악화일로에 있습니다. 선거다운 선거가 없는 나라, 독재자의 전횡으로 주민들이 고통을 대신 받는 나라 - 미국사람들 눈에는 사담의 대망 때문에 세계 2위의 원유 매장국이면서도 노예 같은 생활을 하는 이라크나 살상무기만 잔뜩 늘어놓고 주민들을 굶겨 죽이는 김정일의 북한이나 하등 다를 것이 없이 보일 수밖에 없게 돼 있습니다. 아마 모르기는 몰라도 이라크전이 끝나면, 북한 팩트가 여론조사에 단골메뉴로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북한을 선제공격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북한이 반격해서 서울을 공격했을 때, 미국은 핵을 써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류의 설문과 그 결과들이 뉴욕타임즈, 뉴스위크에 발표되는 상황이 올 거고, 그렇게 되면, 미국에 있는 재미동포들을 보는 미국인들의 눈은 아마 미국에 사는 이라크 사람들을 보는 눈으로 차갑게 변할 것입니다.
시간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시간이 없습니다. 북한과 김정일을 편드는 것만이 민족애는 아닐 것입니다. 이들은 바로 이같은 세태에 편승해서 불장난을 벌이고, 한반도에 전쟁의 공포를 불러들이는 화약 같은 존재들인 까닭에.
오늘 이라크사태를 보면서 위태위태한 한반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실과 이상은 항상 갈등관계에 있어야 하는 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