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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막중한 국사를 팽개치고 청와대로 몰려가 집회 신고도 하지 않은 불법 시위를 했다. 'DJ 정권·정치 검찰 공작 만행 규탄 대회'라는 이름을 내걸고 '국민'을 팔아가며 시위를 하던 그들의 손에는 정치 검찰과 공작 수사를 규탄하는 딱지들이 들려 있었다. 지난 8월 23일에 벌어진 일이다.

검찰은 지난 10월 25일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아들 형제 병역 면제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발표를 통해 검찰은 '병역 비리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무혐의 결론을 내려 버렸다. 이는 한 가문을 지키기 위한 한나라당 사람들의 흐트러짐 없는 투쟁, 자동차 매연을 줄이기 위해 전국에 자전거를 뿌리고 있는 조폭 신문들의 절대적인 후원, 권력을 향한 검찰의 해바라기 사랑이 잘 버무려져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지금 생각하니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외친 '정치 검찰', '공작 수사' 구호가 참으로 정확한 표현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혜안에 자못 고개가 숙여진다.

병풍 수사도 10여 년 뒤 텔레비전이 하게 되려나

'편집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한 검찰의 발표는 '편집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의미로 읽히는데도 검찰과 한나라당, 조폭 신문들은 김대업씨가 증거물로 제출한 테이프가 조작되었다고 합의를 본 듯이 수사 결과 발표 이후 이 사건을 덮기에 바쁘다.

그 많은 의혹들을 다 묻어두고 테이프 하나 '뻥'이라고 사건 자체를 없던 일로 하자는 검찰을 '정치 검찰' 말고 달리 부를 말이 없다. 병역 비리 핵심 인물들 가운데 힘없는 사람들만 불러다 조사하고 그 빽 좋은 사람들은 소환할 기미도 보여주지 않고서 수사에서 손을 떼려는 우리의 용감한 검찰, 이들이 벌인 수사는 누가 봐도 분명한 '공작 수사'다.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아들들 병역 면제 의혹 수사는 소위 빽이면 다 통하는 이 땅의 강자들이 만들어 놓은 몰상식을 무너뜨리는 상징이어야 했다. 그러나 권력 앞에만 서면 끝없이 작아지는 대한민국의 검찰은 현재 '집권 야당'이란 별칭을 우리 헌정사상 처음으로 얻게 된 정당과 현재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의 힘 앞에 또 넙죽 엎드리고 만 것이다.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검찰이 권력에 초연하게 비리를 수사하는 걸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권력 앞에서는 알아서 꼬리 내리고 힘이 없다 싶으면 가차없이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검찰의 꼬락서니가 조폭 언론을 꼭 닮았다. 권력을 이용한 비리를 밝히는 일은 늘 '이제는 말할 수 있다'나 '그것이 알고 싶다' 따위의 보도 프로그램 몫이었다.

검찰이 나가떨어졌으니 이회창 후보 아들 형제의 병역 비리 의혹 사건도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말해 줄 것 같다. 이미 흘러가 버린 옛날 일이니 이제는 '그것이 알고 싶다'고 하면 텔레비전이 뒤늦은 수사에 나서게 될 것이다. 이 병풍과 함께 총풍도, 세풍도, 안풍도 10년쯤 뒤 텔레비전이 밝혀주리라.

한나라당, 검찰 중립 요구 딱지 다시 들어라

한나라당만이 알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킨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 무지렁이 백성들도 잘 알고 있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민자당, 민정당이 집권하고 있을 때도 검찰의 중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지금과 다를 바 없었다. 한나라당도 집권 경험이 있었던지라 검찰이 정치 중립을 지키기가 너무도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불법 시위까지 하면서 검찰의 중립을 소리 높여 외쳤음이라.

한나라당이 정치 검찰이라 규정하고 공작 수사라고 판단한 정연, 수연 형제의 병역 비리 의혹 수사 결과가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나왔다고 해서 정치 검찰이 비정치 검찰이 되는 것도 아니고 공작 수사가 공정한 수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이번에 정치 검찰이 내린 수사 결과도 공작 수사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또 한번 망가진 검찰의 위상을 바로 세우는 일에 한나라당이 다시 분연히 나서기를 바란다. 정치 검찰, 공작 수사가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한나라당의 충정 어린 투쟁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 수사 결과에 만족한 듯 그 많은 국회의원들이 핏대를 가라앉히면 한나라당의 힘 앞에 정치 검찰이 고개를 숙였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된다.

한나라당 입맛에 맞게 검찰이 '노력'했다고 정치 검찰이 거듭난 듯 경고 딱지를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한나라당이 요구하는 검찰의 중립 요구가 진정성을 지니려면 한나라당은 시간이 나는 대로 청와대로 검찰청으로 몰려가 빨간 딱지를 높이 치켜들어야 한다. 그래야 검찰의 중립성을 확보하려는 한나라당의 의지가 국민들 가슴에 선의로 다가설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기자들이 질문 공세를 퍼붓자 정현태 서울지검 3차장 검사는 역사적 진실을 검찰에게 요구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우리 검찰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 귀한 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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