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0일 조선일보 오피니언/의견란에 주한미국대사관 리비어 대리대사가 “‘미군병사 폭행 납치’ 관련 보도에 대해“라는 글을 실은 적이 있었다. 리비어 대리대사로 하여금 우리나라 신문에 글을 쓰게끔 한 그 ‘주한미군에 의한 서경원 전의원 폭행사건’이 일어날 당시 나는 해외출장 중이었으며, 이 글을 귀국 후 한참 후에야 접했다.
조선일보에 실렸다는 그의 글을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상에서 읽고는 어처구니가 없어 반론 글을 쓰려했으나 초고만 쓴 채 완성시키지 못하고 있다가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대리대사의 항의문 성격의 그 글로 인해 마치 그의 주장이 사실로 굳어질 것 같은 생각에 늦게나마 반론을 제기하려고 했었는데 아까운 일이었다.
그런데 지난 10월 22일 조선일보의 김대중 편집인은 “반미정서와 반미주의”라는 칼럼에서 “한국의 반미만이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한국기피’도 심상치 않다.... 최근 '미군병사와 서경원씨 사건'과 이에 대한 한국언론의 보도로 주한미군이 주재국에 대해 이렇게 분개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라고 쓰고 있다.
그리고 마침 리비어 대리대사의 그 글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나는 당시의 사건을 추적조사하여 잘잘못을 가리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고, 리비어 대리대사의 잘못된 인식에 대해 지적을 하고자 했었던 것인데, 비록 늦었지만 이제라도 김대중 편집인의 그 칼럼 덕에 그때 써 놓은 글을 다시 끄집어 낼 핑계가 생겼다. 사실 김대중 편집인의 그 칼럼도 문제가 많은 글이나 이 글의 목적상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리비어 대리대사의 글은 우선 제목부터가 “‘미군병사 폭행 납치’ 관련 보도에 대해“로 거두절미하고 사건을 아예 ‘미군병사 폭행납치 사건’으로 규정하였다. 그 사건의 전말은 온데간데 없이 미군병사가 일방적으로 폭행당한 쪽으로 몰고가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미국인들에게 지난 14일은 힘든 주말이었습니다. 세 명의 젊은 미군병사들이 귀댓길에 서울지하철에서 다수의 과격한 시위대로부터 폭행을 당했으며 그 중 한명은 강제납치되기도 했습니다”라는 말로 글을 시작하고 있다.
‘한국에 있는 미국인들(모두)’, ‘힘든 주말’, ‘다수의 과격한 시위대로부터 폭행’, ‘강제납치’ 등, 세줄 밖에 되지 않는 글을 이렇듯 처음부터 진솔하지 못한 엄살과 과장으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대리대사가 우리 언론에게 불평하고 있는 바로 그 편파와 왜곡의 한 모습 아닐까. 그들은 시위대가 아니었다. 폭행은 우리 젊은이들만 한 것이 아니었다.
미군은 노인인 서경원 전 의원을 폭행하여 안경을 부러뜨렸으며, 눈을 시퍼렇게 만들고 코뼈까지 부러뜨렸다. 그 노인이 미군병사에게 위해를 가했는가. 그렇다하더라도 무슨 힘이 있어 몸집이 두배는 될법한 미군 병사에게 큰 위력을 행사했겠는가. 그것도 정당방위인가?
우리말로 ‘잘못했다’고 사과까지하고 갔다는 병사가 미군내로 돌아가서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미국 측은 며칠 후엔 ‘납치와 총기위협 사건’이라는 주장을 들고 나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미국의 대리대사는 “그런데 어쩐 일인지 한국의 언론은 이 사건을 미군들의 탓으로 돌렸습니다”라며 마치 우리 언론이 편파적으로 보도를 해댔으며, 미군/미국 측이 큰 피해를 본 듯이 말하고 있다. 그가 한국에 부임한지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실상을 잘 못 파악하고 있다. 실상이란 우리 언론의 편파보도의 가장 큰 수혜자는 미국이라는 사실이다.
리비어 대리대사가 말하는 ‘한국의 언론’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자세히 알 수 없고, 정말 그가 말하는 대로 ‘한국의 언론’이 편파보도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 사건에 대해 그 후 자세히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 국민 사이에도 메이저 신문과 방송들이 “도대체 어느 나라 신문/방송이냐? 미국 대변하냐?”는 등의 질타가 나오고 있으며, 그가 항의문을 실은 조선일보에 대해서는 대규모 거부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그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러한 주한미군/미국 관련 사안에 대해 우리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우리의 목소리를 내려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시각에서 미국의 목소리를 내려한다는데 있다. 그리고 거대언론이 그런 보도행태를 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에 반미감정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렇듯 우리의 거대언론이 거의 모두 한국민의 반미감정의 방패막이가 되어 미국의 편에 서서 멸사봉공하는 터에 고마워하기는 커녕 이렇게 불만을, 그것도 ‘발행부수가 제일 많다'는 ‘1등신문’에 게재하여 한국민 전체를 상대로 표출해서야 어디 우리 거대언론이 섭섭해하지 않을까. 다음부터는 공정보도에 힘쓸까 걱정(?)된다. (그들이 밸이 있다면 그러련만...)
대리대사는 연초 부시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이 나왔을 때 우리 메이저언론의 보도행태에 흡족해하지 않았던가? 북핵문제로 한참 시끄러운 요즘에도 우리 메이저언론의 미국을 향한 일편단심은 전혀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만족스럽지 않은가.
리비어 대리대사의 나라 신문인 워싱턴 포스트가 오히려 더 객관적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그만큼 우리의 메이저 언론은 미국을 위해 ‘갈진충성’을 다하고 있다. 마치 과거에 일제시대 때 그랬던 것처럼.
이쯤에서 리비어 대리대사에게 우리말을 좀 가르쳐주고 싶다. 리비어 대리대사의 이런 행위를 4자성어로 ‘적반하장’, 그리고 우리의 메이저언론 입장에서는 대사의 그런 행위가 ‘배은망덕’이라고 한다는 것을.
그리고 대리대사의 자국민을 이유불문 보호하려는 그 눈물겨운 노력은 실로 감동적이나, 우리말에 이런 속담도 있다. “남의 중병이 제 고뿔만 못하다.” 설사 우리 ‘시위대’에게 몇 대 맞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토록 분통이 터질 일이었을까? 김대중 편집인이 전하는대로 ‘주한미군이 주재국에 대해 이렇게 분개한 적이 없었“을 정도로 그렇게 억울한 일이었을까? 그렇다면 여태껏 주한미군에게 죽어간 수많은 우리 국민의 ’목숨‘에 대해서는 우리가 얼마나 분개를 했는지를 생각해 보았을까. 저네들은 주둔국 국민을 죽여놓고도 잘못이 없다고 우기면서, 몇 대 맞은 것을 (설사 그것이 대리대사의 말대로 우리측의 과잉대응으로 그랬다하더라도) 그토록 문제삼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오만한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리비어 대리대사는 메이저언론이 편파왜곡보도를 해대는 통에 그나마 미국이 우리나라에서 지금의 입지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공정보도를 하는 순간부터 미국은 곤경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만큼 미군이 우리에게 저지르고 있는 범죄행위가 심각하다는 말이다. 대사는 그 사실부터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미군범죄 중 이번에는 미군의 잘못이 없다는 확증을 잡은 것일까. 그래서 그렇게 기고만장하여 신문에 반박글까지 발표하는것인가. 아니면 ‘미선이와 효순이’를 깔아뭉갠 미군의 범죄행위로 들끓는 우리의 정서에 마냥 밀릴 수만은 없다는 계산을 했던 것일까?
어쨌든 좋다.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 미군/미국과 관련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신문에 글을 올리는 것을 환영한다. 앞으로도 계속 있을 걸로 짐작되는 미군범죄에 대해 명확하게 잘잘못을 가려서 억울하면 항의문을, 잘못했으면 사죄문을 올려주기 바란다.
이제 와서 그의 글에 일일이 조목조목 반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한가지 그의 글 중에서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는 “조선일보가 지난 17일자 사설을 통해 미국측 입장을 게재해준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사설 내용중 미국측이 시위대의 정서를 헤아려야 한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어떻게 한국의 자유수호를 위해 이 땅에 온 세명의 병사를 구타협박하고 이들을 끌고 다니며 침을 뱉은 과격한 시위대의 정서까지 헤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썼다.
우선 리비어 대리대사의 왜곡기술도 왜곡의 대명사 조선일보에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인 것 같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우선 미군측이 이번 사건의 배경적 요인에 대해 더 깊은 배려와 인식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측은 미군병사들이 시위대에게 끌려간 것만 생각하기에 앞서 여중생 사건에 대한 주둔국의 정서를 먼저 헤아려야 할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즉, 여중생 압사사건으로 격앙되어 있는 한국민의 정서를 헤아려야 할 것이라는 말을 “세명의 병사를 구타협박하고 이들을 끌고 다니며 침을 뱉은 과격한 시위대의 정서까지 헤아려야 한다”고 왜곡해서 그들의 주장을 정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사설을 교묘히 틀고 있는 것이다. 왜곡하면 조선일보인데 조선일보를 능가하는 강자가 드디어 나타났다.
그리고 “한국의 자유수호를 위해 이 땅에 온 세명의 병사”라는 대목에서는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김대중 편집인은 마치 내 글의 초고를 보기라도 한 듯이, “아마도 젊은 세대를 포함해 많은 한국인들이 그 표현에 실소했을 것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김 편집인도 실소를 했을 것이다.)
이게 주한미국대사관 대리대사의 인식수준인가. 나는 그의 이 말을 망발이라 규정한다. 누구 보라고, 우리나라 국민을 도대체 어떻게 보길래 이런 망발을 하는것인가. 그런 말은 주한미군 정훈시간에나 할법한 소리다. 적어도 대리대사쯤되는 인사가 뱉을 말은 아니다.
“한국의 자유수호”는 미군이 이 땅에 주둔함으로써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부산물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그 정도의 낡은 프로파갠다는 이젠 통하지 않는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이익 수호를 위해 이 땅에 온” 것일 뿐이다. 물론 나의 이 말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들도 이 땅에 있을 줄 안다. 말은 바로 하자, 미국의 대리대사여. 우리가 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허약하지는 않다.
우리 서로 솔직해져야 한다. 주한미군 주둔으로 미국이 마치 한국에게 큰 시혜라도 베푸는 양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의 주둔비로 우리 국민은 허리가 휘고 있다. 인명살상, 환경파괴같은 눈에 보이는 피해는 물론, 민족적 자존심 훼손과 같은 무형적 피해는 그 값을 셈하기 어려울 정도다.
더 이상 우리가 예전처럼 어리숙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일부 위정자와 안보를 장사밑천을 삼는 부류들이 아직도 대리대사와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고, 또 일부 깨지 않은 국민이 그에 동조를 하고 있으나, 때는 온다. 진실이 밝혀질 때가.
대사의 수준이 지극히 낮거나 아니면 우리를 우습게보고 거짓말을 하거나, 둘중의 하나라는 생각이다. 대사가 우리 언론의 미국을 향한 충정을 잘못 이해하고 흥분한 나머지 실언을 한 것쯤으로 생각을 하려 한다.
전반적으로 대사의 글을 읽으며 메스꺼움, 모욕감 같은 것을 느낀다. 아직도 이 땅의 미국인은 우리의 정서를 헤아리지 못하고 그저 오만에 빠져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저 한명의 미군병사라면 모르되 대리대사쯤 되는 고위직마저도 그런 오만에 빠져있다면 대등하고 공정한 한미관계는 요원해 보인다.
대리대사는 “자유민주사회의 정의는 법과 균형, 공정성을 통해 보장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아주 옳은 말이다.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자유민주사회의 정의뿐만 아니라 “한미관계의 정의” 또한 그렇다. 법의 공정한 집행과 공정성을 통해 한미관계의 정의가 세워지는 것이다.
이 점에 동의한다면 대리대사는 공정한 법집행을 위해 지금 한미간의 불평등한 법집행을 강제하는 SOFA협정의 개정에 동의해야 한다. 죄없는 여학생 둘이나 참혹하게 죽여놓고는 병사에게 잘못이 없어 정상적인 영내생활을 시킨다는 둥, 미군 트레일러와의 충돌사고로 죽어가는 우리 운전자의 구호를 막아서는 반인륜적 작태를 저지르고도 (이 사안은 개인적으로는 유엔인권위 등에 제기되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미군병사를 보면 그저 공정한 법집행을 어떻게 이룩하나 하며 한숨만 나오던데 마침 대리대사의 그 발언은 참으로 고맙기 그지없다.
제발 좀 대리대사의 말마따나 '법과 균형, 그리고 공정성이 보장된' 한미관계를 이룩해 나가도록 힘을 써주면 고맙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자보>와 하니리포터에도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