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얼굴이 변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10년은 훨씬 더 젊어진 새로운 얼굴의 인상이 그다지 밝아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물러나는 얼굴 위로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지난 14일 폐막된 제 16대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전대회)를 마지막으로 지난 13년간의 장쩌민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이른바 '후(後)장쩌민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후(後)장쩌민 시대를 이끌 중국의 새로운 리더는 예상했던 대로 후진타오였다. 그러나 그 주인공은 예상치 못하게도(?) 후진타오가 아니었다. 여전히 그 얼굴 그대로인 장쩌민이다.
주룽지 등을 비롯하여 이번 전대회를 끝으로 장주석과 함께 물러나는 다른 6명의 중앙정치국상무위원들의 얼굴 위로 나타난 굳은 표정과는 달리 장주석이 대회 기간 내내 터져나오는 웃음을 억제하지 못한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비록 얼굴은 바뀌어도, 그 뒤에서 목을 조르고 있는 것은 자신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8일부터 14일까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 16대 중국공산당 전대회는 21세기 중국 정치권력의 변화와 집권 공산당의 새로운 이정표의 설정이라는 점에서 대외적으로 많은 관심을 집중시켰다.
2114명의 공산당 전국대표들이 참석한 이번 대회에서는 장쩌민 주석의 '3개대표론'(공산당은 선진생산력과 선진문화, 광범위한 인민의 근본이익을 대표)이 당장에 실리는 것을 비롯해, 16기 중앙위원 198명과 후보위원 158명을 선출하는 등 제 4세대 지도자그룹의 인선작업을 마무리 하였다.
또한 폐막 이후 다음날 열린 제16대 1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후진타오를 새로운 총서기로 선출하고 중국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기구인 중앙정치국과 그 상무위원회에 각각 24명과 9명의 위원들을 선출하였다.
이번 전대회가 고별무대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장주석은 여전히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유지함으로서 향후 상당 기간 동안 후(後)장쩌민 시대의 실질적인 무대 감독이 될것으로 보인다.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위험한 동거’
“앞으로 중국의 중요 정책결정은 베이징과 상하이 두 곳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중앙정부가 두 개가 들어선 셈이다.”
중국의 모 정치학 교수가 말한 이번 16대 전대회 결과에 대한 ‘의미심장한’ 총평이다.
이 말을 한마디로 쉽게 풀어쓰자면, 중국정치무대에서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위험한 동거’시대가 개막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장쩌민이 총서기직을 후진타오에게 물려준 뒤 외형적으로는 공식적인 정치일선에서 물러나 상하이의 새 사택으로 내려갈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상하이 사택은 여전히 ‘이동 집무실’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이다.
베이징의 중앙정부에는 후진타오가 새로운 주인으로 들어서기는 했지만, 장의 오른팔인 쩡칭홍(曾慶紅)을 비롯해 자칭린(賈慶林)전 베이징(北京)시 서기, 황쥐(黃菊) 전 상하이(上海)시 서기 등의 핵심 측근들이 9인의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입성함으로써 정면에서 후진타오를 견제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새로 선출된 중앙정치국과 정치국상무위원들의 대다수도 장의 계열로 분류되는 인물이어서, 당분간은 ‘상하이 중앙정부’에 더 힘이 실릴 전망이다.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의 숫자가 기존의 7명에서 두 명이 더 늘어난 9명으로 확대된 배경도 일인으로의 권력집중을 막기 위한 민주적인 권력분산화 차원이라는 표면적인 논리보다는 후진타오를 포위하려는 장의 계산된 의도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여러 모로, 이번 전대회의 최대 ‘승리자’는 장쩌민이라는 것이 서서히 입증되고 있다.
이번 16대 전대회의 인선과정에 나타난 또 다른 특징은 젊은 테크노크라트들의 전면적인 부상이다. 중국의 관영통신 신화사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새로 선출된 중앙위원회와 그 후보위원회 위원들의 평균연령은 55.4세로서 이중 처음으로 중앙위원회에 진출한 비율은 절반 이상인 180명에 달하고 있다.
이들 모두는 신중국 건립 이후의 세대들이며 대학전문 이상의 학력이 98.6%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혁명에 참가했던 원로급 간부들이 중국정치일선에서 완전히 퇴장을 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젊은 세대들이 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최고의 권력기구라고 할 수 있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선출된 9인의 위원들이 모두 이공계통 출신의 테크노크라트들이라는 점은 이번 16대 인선과정의 이러한 특징을 잘 집약해서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신중국 건국 이후 가장 최대 규모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젊은 중국’으로의 세대교체에는 성공했지만 실질적인 권력교체와 그 과정에서의 제도화된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 후진타오 역시 덩샤오핑이 살아있을 때 미리 ‘점찍혔던’ 인물이라는 점도 그렇거니와, 핵심적인 자리에 장의 측근들이 포진된 것 역시 앞으로도 당분간은 중국의 정치과정이 여전히 막후의 실력자에 의해 움직이는 권력정치의 구태를 유지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때문에 장쩌민이 발표한 이번 16대 전대회 보고서에서 최초로 제기된 ‘사회주의 정치문명’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비제도적이고 불투명한 정치문화를 개선하지 않는 한 한낱 공허한 수사에 불과할 것이다.
21세기 중국의 개혁사령관으로 총대를 맨 새로운 총서기 후진타오는 과연 정쩌민과의 위험한 동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것인가. “향후 2-3년이 관건이 될 것이다. 이 기간 중 장과 후간에 별다른 잡음이 없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만일 장의 친정체제에 불만을 품은 후와 장의 반대파들이 본격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장과 맞서려 한다면 중국정치는 예측할 수 없는 심각한 혼란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앞서 인용한 중국의 모 정치학 교수의 전망이다.
1988년 분리독립투쟁이 벌어지고 있던 티벳장족자치구의 당서기로 임명되어, 철모를 쓰고 계엄군들과 함께 라싸에 처음 진군 했던 것처럼 지금 후진타오의 심정도 그때와 마찬가지가 아닐는지. 다른 점이 있다면, 여전히 철모를 쓰고 총서기에 취임했지만 그를 지원사격해줄 계엄군들이 주변에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이다. 고독한 계엄사령관 후진타오의 진압작전은 성공할수 있을 것인가.
‘집권당 이데올로기’의 탄생
이번 16대 전대회를 요약하고 있는 핵심어를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시대와 함께 날로 진보한다’(與時俱進)는 것과 ‘3개대표 중요사상’(3个代表重要思想), ‘소강사회의 전면건설’(全面建設小康社會)등일 것이다. 이중에서도 “시대와 함께 날로 진보한다”(與時俱進)는 표현은 이번 전대회 기간중 가장 유행한 구호이다.
이 구호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말 그대로 시대가 변했으니 중국공산당도 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된 중국 공산당의 시대사상을 반영하고 있는 이론이 바로 ‘3개대표 중요사상’이고 향후 20년 동안 중국사회의 장기적인 발전목표는 ‘소강사회의 전면적인 건설’이다.
지난 2000년 초, 장쩌민이 제기한 ‘3개대표론’은 이번 전대회를 통해 중국 공산당 당장에 공식적으로 삽입됨으로서 맑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 등소평 이론과 더불어 당의 중요 정책과 원칙들을 해석하는 ‘권위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3개대표 중요사상’이 당장에 수록되었다는 것은 또한 중국 공산당의 이데올로기의 수정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3개대표 중요사상’의 핵심적인 함의는 즉, 자본가들에게도 공산당의 문호를 개방한다는 것으로 재산의 유무 정도에 따라 계급을 구분했던 기존의 계급론을 철폐하고 ‘가장 광범위한 인민의 근본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공산당원이 될 수 있는 자격제한의 문턱을 대폭 넓힌 것이다.
장주석은 대회개막식인 지난 8일 행한 보고서의 두 번째 부분인 ‘3개대표 중요사상을 전면적으로 관철하자’를 통해 “모든 합법적인 노동수입과 합법적인 비노동수입은 당연히 보호를 받아야 한다”며 “재산이 있고 없고와 재산의 정도에 따라 간단하게 사람의 정치적인 선진성과 낙후성을 판단하는 표준으로 삼아서는 안되며 주요하게는 그들의 사상정치적인 상황과 현실적인 표현을 봐야할 것”이라고 천명함으로써 자본가들의 공산당 입당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이로써 중국공산당은 지난 82년 제 12대 전대회 당시 개정했던 당장의 내용보다 훨씬더 ‘유연한’ 계급포용책을 취함으로서 개혁개방이후 가장 근본적이고도 획기적인 당의 체질변화를 이루게 되었다. 소위 ‘혁명당’에서 ‘집권당’으로의 완전한 탈바꿈을 하게 된 것이다.
이번 전대회의 개막을 전후하여 중국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표현 역시 ‘집권당’이라는 단어이다. 덩샤오핑 시대에도 이러한 표현이 간혹 나타나기는 했지만, ‘집권당’이라는 표현은 이번 16대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집권당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3개대표 중용사상’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으로서, 계급간의 조화와 협력을 추구하는 ‘당’을 지향하고 있다.
주간신문 ‘南方週末’에 실린 상하이교통대학 정치학 연구소 소장인 후웨이(胡僞)교수는 ‘혁명당’은 “어떤 계급을 기초로 하여 그 존재 가치가 다른 계급의 통치를 전복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혁명당의 본질특성이다. 따라서 혁명당의 주요한 일은 철저한 계급분석을 통해 누가 적이고 누가 친구인지 등을 가려내는 것이다.
그러나 집권당은 이와는 다르다. 집권당의 이데올로기는 계급조화와 계급협력을 강화하고 사회협력을 통해 당의 계급적 기초와 협력의 토대를 확대하는 것이다”라고 ‘혁명당’과 ‘집권당’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이와같은 ‘집권당 이데올로기’로의 전환은 지난해 7월1일 중국공산당 80주년 기념식에서, 정쩌민 주석이 그의 ‘3개대표론’에 기반해서 발표한 “당의 계급적 기초를 부단히 확장하고 그 대중적 기반을 확대해야”한다는 요지의 발언에서도 이미 예고된 바 있다. 바야흐로 중국공산당에 ‘부자정치’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선부론’에서 ‘공동부유론’으로의 전환
“중국의 과거 20년동안의 주제는 ‘일부 사람이 먼저 부자가 되고 일부 지역이 먼저 부자가 되게 하는 것’이었으나 향후 20년 동안의 주제는 ‘전면적인 소강사회의 건설’이라는 것으로 이것은 즉 ‘공동부유’의 문제 해결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칭화대학교 후안깡 교수가 중국언론을 통해 말한 이번 16대 보고문에 나타난 중국사회 발전목표에 대한 분석이다.
지난 8일 장쩌민 주석은 16대 보고문의 발표문은 통해 “전체국면을 총괄하여 보면, 중국에 있어서 21세기의 첫 20년은 반드시 꽉 붙잡아야만 하고 능력을 크게 발휘할수 있는 중요한 전략적 기회이다”라며 “공동부유를 목표로 중등소득자의 비중을 확대하고 저소득자의 수입수준을 높여야 한다”라는 요지의 중국사회의 새로운 경제발전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먹고살 만한 수준, 즉 중산층의 보편화를 의미하는 ‘전면적인 소강사회’의 실현목표는 후안깡 교수의 지적대로 향후 20년간의 발전목표가 기존의 ‘선부론’에서 전인민의 ‘공동부유’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중국정부의 계획에 의하면, 앞으로 20년간 국내총생산액은 2000년의 네배로 늘리고 매년 평균 7.18%의 성장속도를 유지하며 일인당 평균소득은 3000달러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이때쯤 되면, 중국의 경제는 세계 GDP 총량의 22%를 차지해 미국을 추월하는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면적인 소강사회의 건설’이라는 발전목표는 그것의 선언적 의미와는 달리 상당한 어려움들이 예상되고 있다. 먼저 부자가 된 동부연해지역과 중서부 지역의 발전격차 및 도시와 농촌의 소득격차, 그리고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 지니계수(소득불평등지수) 등의 문제는 그 동안 파이를 키우에만 급급해 분배의 문제를 소홀히 한 중국사회의 ‘빈익빈 부익부’ 구조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의식해 16대 보고서 곳곳에서도 분배의 공평성 문제와 빈곤소득계층에 대한 사회보장혜택의 강화, 농촌문제의 적극적 해결 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광대한 인민의 근본이익을 대표’하려는 집권당으로서의 중국공산당이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의 문제와 분배의 공평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성공적으로 이루기란 만리장성을 쌓는 일보다 훨씬 더 장기적인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시대와 함께 날로 진보한다’는 구호를 필두로 개막된 중국공산당 제 16대 전대회는 중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여전히 ‘발전’이라는 것과 그것을 위해서는 당의 이데올로기도 시대의 조류에 맞게 ‘사상해방’시킬 수 있음을 재차 확인시켜준 대회였다.
그러나 많은 분석가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중국공산당이 이데올로기의 사상해방에 걸맞는 그들의 통치의 합법성을 어떻게 유지할수 있을 것인가는 여전히 남아 있는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집권당으로 변모한 중국공산당은 더 이상 그들의 합법성의 근원을 과거의 ‘인민동원’ 방식이나 ‘경제발전’의 성과에만 기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21세기 중국 공산당은 ‘가장 광대한 인민의 지지’를 받기위한 그들의 통치의 합법성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