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절기는 소설을 지나 겨울철로 줄달음을 치고 있다. 차가운 바람이 살 속으로 파고든다. 매년 이맘때면 우리네 가정은 김장이 가장 큰 일 중의 하나였다. 집안에 따라서는 100-200포기까지도 하곤 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김장하는 풍습이 거의 사라질 위기다.
KBS의 보도에 의하면 최근 대전의 한 백화점이 주부 1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0%가 김장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한다. 특히 2,30대 신세대 주부들의 80%가 김치를 사먹거나 시댁이나 친정에서 갖다 먹는다고 답했다고 하는데, 김치를 사먹는 주부들이 늘다 보니 김치 공장만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김치 공장의 김치가 과연 우리에게 바람직한 것일까?
김치 공장이 사용하는 배추가 농약 투성이가 아니라는 보장도 없고, 김치를 담글 때 들어가는 부재료나 과정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는 상황이다. 바람직한 먹을거리, 바람직한 식생활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조미료, 소금 등의 무분별한 사용과 김장 방법에 따라 좋은 김치가 안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런 때에 토종연구가 홍석화 선생과 '팔당생명살림연대'가 공동으로 연 토종김장 행사가 11월 24일(일요일)에 있었다. 장소는 양평군 단월면 석산2리 섬이마을의 폐교인 '산대초등학교'.
'팔당살림생명연대'는 10여년간 유기농업을 펼쳐온 팔당 주변의 유기농가들과 구리, 남양주, 하남, 양평, 서울 동북부 시민들이 손을 맞잡고 설립한 단체이다.
이웃과 협동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대하여 농약과 화학비료로 죽어가는 땅과 밥상을 살리고, 공해로 찌들어가는 자연을 되살려 나와 이웃 그리고 모두가 더불어 사는 길을 추구한다는 것이 이 연대의 목표이다.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리의 팔당생명살림연대 매장에서 출발한 시간은 9시 50분경. 6번 국도를 따라가다 좁은 시골길과 꼬불꼬불한 산길을 넘어 한참을 들어간다. 결국 눈앞에 떡 막아서는 해발 855m의 봉미산에 우리는 압도된다. 무려 1시간 30분이나 걸려 도착했다.
'섬이마을'. 참 아름다운 이름이다. 무슨 뜻일까? 옛날 이 심심산골에 한 사람이 소를 몰고 오다가 산세가 너무 험해서 소가 쓰러지자 쌀가마 지듯이 소를 등에 지고 왔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마을은 가뭄이 없고, 땅, 물, 공기가 깨끗한 곳이며, 눈이 오면 며칠을 밖에 나가지 못하는 산골이라고 한다.
또 이 '산대초등학교'는 지금은 폐교된 곳으로 7가정이 교육공동체인 '하늘섬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다고 공동체 오충미 간사는 말한다. 정규학교가 아니어서 1년 4차례 유치원, 초등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농사와 자연학습 위주로 진행한다고 전한다.
우선 식사 전까지 봉미산 아래의 잣나무 군락지를 산책하기로 했다.
오충미 간사가 안내를 한다. 예전엔 아름드리 나무들이 울창했지만 화전민들에 의해 나무들이 타서 없어지고, 산림청에서 잣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작은 잣나무들이 끝없이 줄을 서있다.
산림은 잡목과 어우러져야 하지만 산림청에서는 오로지 잣나무 일색으로 심은 나머지 목재로도 쓸 수가 없고, 다른 나무가 자랄 수도 없으며, 자기들끼리의 싸움에 의해 스스로 죽어간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말한다. 게다가 산림을 가꾸어주고 싶어도 나무에 손을 대는 것 자체가 산림법에 의해 처벌을 받으니 손을 쓸 수 없다고 한다.
한참을 올라가니 원형흙집이 나타난다. 무엇하는 곳일까? 이곳은 탱화작가 황산선생이 그림을 그리던 집인데 스스로 벽돌을 찍고, 서까래를 놓았다고 전한다. 이 집은 구들도 원형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불을 때면 따뜻하다고 한다.
자연스레 산림욕을 한 뒤 돌아오니 홍석화 선생은 우리 일행에게 줄 밥을 하는 가마솥에 불을 때고 계신다. 홍선생의 명함에는 토종, 뒷간연구가로 되어 있다. 선생의 뒷간에 가보니 흔히 보던 그런 화장실이 아니다. 그야말로 토종이다. 이 토종 뒷간에 대한 설명은 않겠다. 아직 그에 대한 지식도 없고, 설명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뒷간 이야기는 다음에 시간이 나면 토종과 함께 홍선생을 인터뷰할 일이다.
홍석화 선생은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중퇴했다. 어떻게 미래가 보장된 치대를 중퇴하고 이런 어려운 길로 들어섰는지 묻는다.
"대학생 때 마당굿을 했어요. 그런데 살다보니까 흘러흘러 여기까지 왔습니다."
참으로 소탈한 말씀이다. 그런 선생의 철학이 외모에서도 그대로 풍긴다. 꾸밈이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그저 토종이다. 선생은 밥 먹기 전에 김장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을 들려준다.
"토종음식 중 핵심은 밥, 된장, 김치, 젓갈, 막걸리 등입니다. 여기서 밥 이외에는 모두 발효식품입니다. 세계의 장수촌은 모두 발효식품을 먹는 마을입니다. 우리 겨레는 이렇게 현명한 사람들입니다."
이후 홍 선생은 토종음식들에 대해 간단하게 하나하나 특징을 짚어주었다. 그리고는 김장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준다.
"김장은 원재료, 과정, 보관의 삼위일체입니다. 이 세 가지가 어우러져야 훌륭한 김장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김장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어떻게 담가야 맛있는지, 왜 맛있는지 설명이 안 됩니다. 정성을 기울이되 나머지는 자연과 하늘에 맡기는 것입니다. 기후와 지기는 매번 다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종묘회사의 85%가 미국의 다국적 기업에 넘어갔습니다. 따라서 토종고유의 맛이 사리진 것도 어려운 것의 하나입니다."
김장을 담글 때에 따라 맛이 다름을 이해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는 이곳의 토종김장의 특징을 말했다.
"첫째, 절이는 시간을 짧게 해야 합니다. 둘째, 절일 때 처음 뒤집어주고 나온 물은 버린 다음 아침에 마지막으로 나온 물로 양념을 버무려야 합니다. 배추가 원래 갖고 있던 좋은 성분들이 빠지는데 그것을 활용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 늦게 먹을 것은 새우젓, 빨리 먹을 것은 멸치젓이 좋습니다. 넷째, 보관온도는 0~3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다섯째, 양념 속을 만들 때 마늘과 생강을 3:2의 비율로 생강을 많이 넣습니다. 생강은 중화, 해독작용이 우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김장일도 택일했습니다. 생리일이나 심기가 불편한 날은 피하고, 목욕재계를 했습니다. 그런 것들이 맛을 교란시킨다는 생각에서 이었습니다."
거침이 없다. 토종김장에 대한 철학이 분명해 보인다.
"요즘은 김치냉장고가 많이 보급되어 편하게 쓰고 있지만 옹기와 땅의 생명력에 의한 장독을 김치냉장고는 따라 올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둘 사이의 간극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완전하게 일치시킬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기계와 자연의 차이가 아닐까요?
빨리 시는 것을 방지하려면 달걀껍질, 밥껍질이나 숯덩이 등을 넣습니다. 우리는 수천 년을 훌륭한 발효식품, 항암식품인 김치를 향유하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우리 조상들이 지켜온 정성이 유전자(DNA)로 전해질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홍 선생은 분명한 어조로 심중의 믿음을 토로하고 있었다. 이후 우리는 것절이, 동태찌게, 돼지고기 보쌈과 함께 정말 맛있는 음식을 나누었다. 구수한 숭늉을 먹었고, 아궁이 속에서 구운 고구마도 맛을 보았다. 처음 만난 분들과도 좋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 시간이었다.
식사 뒤 참여한 사람들은 토종김장을 실습했다. 직접 양념 속을 버무려 김치를 담았다. 보통의 김장과 다른 점이 보였다. 양념 속을 만들 때 무, 멸치, 다시마, 양파를 각각 끓인 국물을 합쳐서 고춧가루를 개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리고 청각과 함께 갓, 파, 마늘, 생강, 쪽파, 대파를 찹쌀풀, 새우젓에 섞어서 양념 속을 만들었다.
산골이라 빨리 어두워지고 쌀쌀해지는 날씨 속에 김장담기 행사는 끝나고 있었다. 김장하는 동안 홍선생은 내내 배추를 자르고, 다듬고, 떼어낸 배추 겉잎을 버리는 등 한가하게 앉아있지 않았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김장을 마을잔치로 생각할 정도였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두레로 수백 통의 김장을 해냈다. 겨울을 나기 위한 음식을 장만하는 큰 행사인 이 김장의 생명이 끊어질 위기에 처해있는 때에 토종김장을 살리는 행사는 그래서 큰 의미가 있어 보였다.
오는 길에 우리는 장승과 솟대의 향연을 보았다. 백여 개의 아기자기한 장승과 6~7개의 솟대 그리고 고인돌 등의 어우러짐은 우리의 눈을 끌기에 충분했다. 나는 전에 광주군 퇴촌면의 장승무리를 사진과 함께 소개한 적이 있었지만 이곳은 솟대가 더 있어 한층 운치가 있어 보인다.
나와 내 아내는 광주군 남종면 한강변의 한적한 지방도를 즐겼다. 그러면서 보았던 붉은 해가 구름 속에 사라지는 아름다운 정경을 잊을 수가 없다.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지켜나가는 모습을 또 보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