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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서한 표지
옥중서한 표지 ⓒ 야간비행
1971년은 내가 태어난 해이다. 내가 세상에 처음 머리를 내밀고 아우성칠 때, 한 사내는 중앙정보부의 음산한 지하실에서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87년 6월 변화의 불길이 거리를 활활 태웠을 때도 그 사내는 차가운 감방 안에서 냉정한 외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올림픽이 치러지던 88년 5월에야 그 사내는 뜨거운 햇살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되었다. 7년의 징역형과 10년의 보안감호처분, 그가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치러야 했던 대가였다.

고종석은 이 책을 일컬어 '사전' 혹은 '성경'과 같다 했다. 앞에서부터 밑줄을 그으며 차근차근 읽어갈 책이 아니라 펼쳐들어 그 호흡을 느껴보고 일상에 다시 잠겼다, 다시 맘 내키는 부분을 펼쳐 들 수 있는. 작은 글씨와 빽빽한 문장, 830페이지나 되는 두꺼움만이 아니라 사람이 살면서 부딪칠 수 있는 가장 극한적인 상황에서 우러나는 감정들을 모아 놓은 것이기에,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삶을 다시 받아들이는 과정을 엮은 것이기에, 이 책은 사전보다 성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서준식 옥중서한>은 고뇌만이 아니라 가장 냉혹한 시련 속에서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가는가를 보여준다. 그 과정을 '영웅'적으로만 묘사했다면 이 책은 김새는 위인전기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평범한 인간 서준식이 느끼는 아픔, 고통이 적나라하게(너무나 적나라하게!) 공개되어 있다.

서준식 소개글

인권운동가. 1948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조선놈'이 되기 위하여 한국에 유학했다. 서울대 법대 3학년 재학 중 형 서승과 북한을 방문하였다가 1971년 이른바 '유학생 간첩단'의 일원으로 체포되어 7년형을 선고받았다. 형기를 마쳤지만 '사람의 생각은 누구도 규제할 수 없다'는 신념에 따라 전향을 거부함으로써 다시 10년 동안 보안감호처분을 받았다. 1988년 5월 비전향 좌익수로는 처음으로 석방되었다. 도시 빈민들과 어울려 살며 글쓰기를 하려 했으나 '운명적인'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을 만나면서 인권운동에 투신했다. 1993년 인권운동사랑방을 꾸려 한국을 대표하는 인권운동단체로 이끌어 왔고, 여전히 세상의 근본적인 변화를 좇아 현실의 굽이굽이를 직진하고 있다. 비타협적 삶 덕에 사람들은 그를 '강퍅한 투사'라 오해하기도 하지만, 벗들은 그를 단지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기억할 뿐이다.
/ 책의 소개글을 옮김
세상의 무게를 혼자 감당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억울함이 드러나기도 하고, 동생에 대한 잔소리가 맘에 걸려 자신의 옹졸함을 탓하기도 한다. 자신을 좋아했던 아가씨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기도 하고 결혼해서 자신의 아기를 키웠으면 하는 기대도 가져본다. 같이 복역하고 있던 형 서승씨와 비교되기를 꺼려하고, 빠지는 머리카락에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닌지 고민하기도 한다.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민중음악가를 꿈꾸기도 하고 먹을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를 가두고 있는 단단한 감옥은 이런 인간적인 희망을 송두리째 밟아버린다. 높은 담장은 그에게 전향을 요구하고, 막힌 창살은 그에게 고립을 강요한다. 그의 대화 상대는 '현실의 사람'이 아니라 '기억 속의 사람'이다.

나는 그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가장 큰 아픔을 봤다. 형기를 다 마친 1978년, 서준식은 석방이 아니라 '사회안전법'에 의해 보호감호처분을 받고 '재수감'된다. 아들의 석방을 기다리던 어머니는 결국 1980년 5월 숨을 거두신다. 아버님 역시 십 년이 넘도록 아들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1983년 5월 별세하신다. "부모를 모시고 부모와 늘 사랑의 눈길을 주고받으며 살다가, 부모가 돌아가실 때는 조용히 곁에 앉아서 눈물을 뿌리며 부모를 떠나보낼 수 있는, 그런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는 지금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얼마나 목마르게 부러운지 모른다!"(361∼362쪽). 없는 사람은 있는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을까?

내겐 서준식의 또 다른 아픔이 전해졌다. '유학생 간첩단'사건이라는 사건명이 말해주듯 그는 재일동포였다. 그는 자신의 '조국'을 알고 싶어서 한국에 왔고 '비참한 조국의 현실'을 깨닫고 함께 아파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변호사인 김돈명 변호사에게 '재일동포의 통폐'라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진다. "비참한 조국의 현실 속에서 조국의 아름다움도 슬픔도 어리석음도 더러움도 모두들 이 양팔에 끌어안고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 고통스럽게 허우적거리고 함께 숨을 쉬고 싶었던 나의 소망은 한낱 꿈인가? 망상인가? '재일동포'는 나의 숙명인가? 원죄인가? 그 '통폐'를 나는 얼마만큼이나 지니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국내 동포들이 지금도 나에게서 '쪽발이 냄새'를 맡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나의 마음은 오늘, 이렇게도 외롭게 방황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마늘 냄새가 난다'고 타박, 한국에서는 '다꽝 냄새가 난다'고 타박!"(368쪽).

지금 같으면 '차이의 문제'로 존중되었을지 모르지만 그 당시 어두운 군부독재 시절에는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차이를 무시했다(그래서인지 서준식은 이것을 차이의 문제로 고집하지 않고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극복한다). 사회는 그를 또 한번 죽였을지도 모른다. 날카로운 편가르기는 언제나 소수자의 목줄을 겨냥한다.

그리고 가장 인간적인 아픔인 '청춘의 상실'이다. 열기에 불타오르던 24살의 나이로 투옥된 '청년' 서준식은 41살이라는 '중년'에야 석방된다. 다른 모든 것을 보상받고 회복할 수 있다 하더라도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것이 '청춘'이다. 자신의 청년기를 "사람에 대한 정상적이고도 자연스러운 애정은('연민'이 아닌 '애정'이다. '연민'이라면 얼마든지 있다) 키우지도 누리지도 못하고"(441쪽)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흘러가 버리는 젊음을 아쉬워하는 마음으로"(539쪽) 보내야 했던 그 맘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의 마음속, 이성을 사랑하는 정신적 영역에도 나는 어쩌면 '중년남자'적인 교활한 타산이나 징그러운 욕정이라는 '때'가 씻어 낼 도리 없이 끼기 시작했음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서글픈 심정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나이를 먹어 버렸다"(452쪽). '나이'는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피해갈 수 없는 아픔일지 모른다.

그는 유신의 암흑을 잠시 걷으며 찾아왔던 80년 서울의 봄을 알지 못했고, 그 봄을 짓밟고 시계를 거꾸로 돌려버린 전두환 군사정권의 겨울을 맛보지 못했다. 87년 6월 항쟁도 그에겐 면회실에서 누군가가 전해주는 '좋은 소식'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키워간다. 철저한 고립 속에서 자라난 그의 고민은 놀랍게도 지금 이 시대가 놓치고 있는 것을 지적해준다(그래서 이 책이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그는 인간을 사랑하지 않고 관찰을 즐기는 지식인들을 비판한다. "식자에 밝으면 교만해진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진리이다. 앉아서 하얀 손으로 책장만 넘기는 인간들은 직설적으로 생각하고, 사랑하고, 분노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들을 관찰하고 분석하지만 행동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싶어하는 버릇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도록 만든다. 나는 이 돌덩어리 같은 머리로 책을 본답시고 앉아 있지만 식자에는 제대로 밝아지지도 않으면서 그런 못된 버릇만은 부지런히 키우고 있는 것 같다"(55쪽).

냉정한 외로움 속에 갇힌 그를 지탱시켜 주는 힘은 '사랑'이다. "모든 것은 '사랑'에서 우러나야 한다. 부당하게 재미를 보는 권력들이 우리를 십자가에 못박지 않고서는 못 배길 정도의 예수와 같은 강렬하고 뜨거운 '사랑'을 우리는 굳게굳게 간직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피가 통하지 않는 기계인형과 같은 '속류'가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236쪽).

그 사랑은, 약한 자들에 대한 그 편향된 태도는 그를 예수에게로 인도한다.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이자 선암이의 이모였던 분이 그러셨듯이, 예수는 그저 덮어놓고 '가난한 자'의 편에 섰던 것이다. 지성인들은 '이성'을 찾고 '냉철'을 좋아한다. 그들은 진리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고 있어도 머리 속에서 알고 있을 뿐이다. 예수처럼 덮어놓고 사랑하고 분노하고 행동하려고는 하지 않는다.…우리는 항상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하겠다. 예수처럼 무참하게 십자가에 못박히는 일이 있을지라도(298쪽).

소위 '진보적 지식인'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그 비판의 칼날을 비켜가지 못한다. 그의 의도를 왜곡할 지 모르지만 나는 그의 글을 길게 인용하고 싶다.

"그런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여하히 정의롭고 착하게 살아가는가가 아니라 역사적 감각도 분별도 없는 '예수냐 마르크스냐'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숭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세상과 인생에 대한 이해 부족과 유치한 통찰은 때로 난폭한 '과격'으로 은폐되거나 보상받기 마련입니다. 어떤 권위가 어느 정도 확립되고 인정받은 조건에서, 그 권위에 공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가장 안전한 보신책, 출세책이란 그 권위의 우산 밑에서 한껏 '과격'해져 보는 아첨인 것입니다.…'소외되고 약한 사람들에 대한 강렬한 사랑'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인 것이며, 늘 옳은 방향을 잃지 않으려는 우리가 가장 확실하게 의지할 수 있는 지표입니다"(258쪽).

"혁명가의 참된 지성은 언제나 정해진 원칙과 비원칙 사이를 과감하게 넘나들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원칙과 비원칙의 경계선상에서 고달픈 '줄타기'를 감행하는 가운데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비정하고 왜소한 음모가나 관료가, '인간에 대한 사랑'에 튼튼히 입각하고 싶은 참된 혁명가보다도 사회정의를 이룩하는 과정에 있어서 때로는 훨씬 유능할 수 있다는 것은 괴로운 사실이 아닌가?…'인간에 대한 사랑'에 튼튼히 입각하는 자세의 소중함, 정당함을 끝까지 믿고 싶다. '역사법칙'과 '원칙' 속에 안주하는 것은 삼류이다"(501쪽).

"결론은 돼지처럼 미련스럽고 여우처럼 교활한 인간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 보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155쪽).


지금 그는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인권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한때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필승이 아닌 인권'이라는 인권운동사랑방의 월드컵 비판이 '너무 진지하다'고 생각했었다. 사람이 사는데 즐거움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제는 그 비판을 이해할 것 같다. 그는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인권운동의 길은 함정으로 넘쳐 있다. 인권운동은 그 특성상 구체적인 인간·사건·제도를 대상으로 하는 까닭에, 그 속에 가치 중립적으로 매몰될 경우 사회의 질적 문제(혹은 변혁의 문제)를 결과적으로 은폐한다는 치명적인 역기능을 가지고 있다. 변혁운동의 지평을 응시하지 않는 인권운동은 개량주의자가 가는 것과 흡사한 오욕의 길을 가기가 십상이다"(22쪽). 그는 덮어놓고 누군가의 편에 서는, 그 편을 사랑하는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종교가 없는 나는 이 책을 '성경'처럼 읽지 않고 그냥 책으로 읽었다. 숨막히는 서스펜스나 기발한 알리바이가 없기에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냥 덮어버리기엔 그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사실 지루함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은 편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사촌동생들과의 대화에서 드러나는 그의 '계몽선각자'같은 말투이다. 그런 설교가 빽빽한 글자나 두꺼운 부피보다 나를 더 부담스럽게 했다. 내가 그의 사촌동생이었다면 냉정하게 소식을 끊어서 그를 미치게 했을지 모른다. 동생만한 형이 없는 법이다.

책을 읽으며 과거에 내가 받았던 편지들을 늘어놓고 읽으며 한숨을 쉬거나 웃기도 했다. 편지란 좋은 것이다. 편지에는 관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쓴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정갈한 혹은 삐뚤삐뚤한, 상대방이 뭔가를 흘린 듯한 또는 내가 뭔가를 흘린 듯한 흔적들. 그런 흔적이 있기에 편지는 아픔과 즐거움을 준다.

덧붙이는 글 | '약자를 위했던' 예수가 진정 약자를 위하여 그렇게도 강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 혼자 힘으로 그럴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약자를 위한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약자를 위한 하나님'이 없이 강한 자는 그 강함으로 인하여 언젠가는 약자를 떠나기 마련이라고 한다.…내가 예수의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예수가 단순히 '약자의 편'이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들이 그 어떠한 강자가 된다 하여도 영원히 약자의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예수가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하겠다. 예수는 모든 이념이 경직화되고 '자율적'인 것이 되어 버릴 때 그것이 인간을 얼마나 무자비하게 억압하는지를 나에게 가르쳐 준다. 우리들이 이념의 노예가 될 것이 아니라 항상 '인간에 대한 개개의 구체적인 사랑'에 굳건히 발 디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이것이 '영원한 약자의 편'일 수 있는 한 가지 길이다. '영원한 약자의 편'일 수 있는 또 다른 길은 자신이 '무자격자'임을 철저히 자각하는 일이다. 즉, 자기가 세상의 모든 약자들과 함께(완전을 향하는 진화의 '영원한 과정'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의 온갖 더러움과 약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뼈아픈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다.…수많은 억눌린 백성들로부터 숭배를 받으면서 혹은 신격을 부여받으면서 예수는 자신을 항상 신과 대치시킴으로써 자기가 한낱 '인간'에 불과함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던 것이다(334∼335쪽).

관찰하지 않고 인간을 사랑하기는 쉽다. 그러나 관찰하면서도 그 인간을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깊은 사색 없이 단순 소박하기는 쉽다. 그러나 깊이 사색하면서 단순 소박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자신을 기만하면서 낙천적이기는 쉽다. 그러나 자신을 기만하지 않으면서 낙천적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어리석은 자를 증오하지 않고 포용하기는 쉽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를 증오하면서 그에게 애정을 보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외롭지 않은 자가 온화하기는 쉽다. 그러나 속절없는 고립 속에서 괴팍해지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적개심과 원한을 가슴에 가득 품고서 악과 부정과 비열을 증오하기는 쉽다. 그러나 적개심과 원한 없이 사랑하면서 악과 부정과 비열을 증오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모두'가 아니면 '없음'을, 빛나는 영광이 아니면 파멸을 원했던 나의 오만한 마음은, 이리하여 지금 '없음'과 파멸의 심연을 바로 눈앞에 보며 쓰러져 있다. 악과 부정과 비열에 대한 증오뿐만 아니라, 악과 부정과 비열에 대한 증오에 대한 증오까지도 나의 얼굴을 일그러지게 하고 나의 목소리를 쉬게 했다. 나의 마음을 비틀어 놓았다(569쪽).

나의 이런 '사상변화'가 한때의 미망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기에 나의 이 '사상변화'가 어떻게 전개될지 좀더 두고 보는 것이 도리일 뿐 아니라, '변화'가 미망이 아닌 진정한 것임이 어느정도 분명해진다 할지라도 내가 던져진 현실적 상황은 사상(이념)을 떠난 하나의 '존엄'으로서의 인간인 나에게 지금 이 자리를 꿋꿋이 고수해 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641∼642쪽).


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 - 저자교열판

서준식 지음, 노사과연(노동사회과학연구소)(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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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어서 가입을 했습니다.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에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기자라는 거창한(?) 호칭은 싫어합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지라 주로 책동네에 글을 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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