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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비평준화 시절 경기고등학교는 상당히 유명한 학교였다. 그 명성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경기고등학교에 재학하는 학생들에게 예전의 그 명성을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필자는 비평준화 지역의 문제를 피부로 느꼈고, 또한 비평준화 지역 현실적 문제를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필자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전남 목포이고, 여전히 비평준화가 시행되고 있다. 필자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충남 공주다. 이 지역 역시 비평준화 지역이다.
필자가 평준화를 찬성하는 이유는 교육적인 이유가 주된 이유긴 하지만, 사회적 이유도 크다. 지난 6월 지방선거 때 공주 지역의 선거 결과는 그야말로 아무도 예측 못한 결과였다.
김종필씨의 아성으로 불리는 충남 공주 지역에서 자민련 후보가 아닌 지역 재야 운동가인 윤완중씨가 당선되었다. 윤 시장이 당선된 것은 30년간 재야세력으로 공주를 위해 일해온 지역 주민들의 동정표도 한 몫 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한 가지 이례적인 것은 그가 공주고등학교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주지역의 명문고는 공주고등학교와 공주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공주사대부고)이다. 특히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가 공주고등학교 출신이기에, 비 공주고 출신에 자민련 세력이 아닌 그가 당선된 것을 놀라운 일이었다.
필자가 3년째 공주에 거주하면서 느낀 점은 공주지역의 유지 세력은 대부분 공주고와 사대부고 출신이며, 그렇기에 충남 지역의 많은 학생들이 두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너무나도 애를 쓴다는 점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지역의 사교육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예전에는 고입 선발고사라는 제도가 있어서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3학년 때 한 번 열심히 하면 좋은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1학년 때부터 내신이 중요하기 때문에, 너도나도 과외를 시킨다는 점이다.
특히 이 곳에는 '값싸고 질 좋은' 과외선생님들이 상당하다. 그 대부분은 공주교대, 공주사대(공주대학교 사범대학) 재학생이다. 반대로 두 학교의 학생들도 웬만한 학생 치고 과외 아르바이트 경험 없는 학생이 없을 정도다. 필자 경험으로는 이 학교 학생들이 대전(평준화)이나 천안(비평준화)지역에서도 과외지도를 할 정도로 선호대상이라는 점이다. 그만큼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이 이들의 장점이다.
이러한 공주지역의 상황을 보아하니, 필자가 태어나서 자란 목포지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목포지역에서는 이런 얘기가 있다. '시의회 의원 중 목포고 아닌 사람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보다 힘들다.' 지역 평준화의 단적인 예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서울에서 공주고등학교, 목포고등학교 하면 알아주지는 않지만, 해당지역에서는 이 학교 출신들이야말로 인정받는 인재들이다.
문제는 이 학교 출신이 아닌 훌륭한 인재들이 지역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소위 배경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실력이 출중해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서울로 떠나게 된다. 목포에서 '목포고-전남대' 출신이면 성골이라고 표현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다만 필자가 살았던 지역에서 과외의 성행은 없었다. 한 가지는 질 좋은 과외선생님을 구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현재 목포지역 학원가에서도 좋은 선생님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인듯 하다. 또 다른 이유는 학교가 끝마치는 시간이다.
필자의 예를 들면, 필자가 고3 때 학교가 끝나는 시간은 밤 12시였다. 토요일에도 밤 12시에 끝났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놀라워한다. 일요일도 밤 10시에 끝났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공주지역의 명문인 공주고등학교 역시 1학년들도 밤 11시가 되서야 끝난다. 다만, 목포지역은 파하는 시간이 절대불가 고정적이었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공주지역은 파하는 시간이 어느 정도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목포지역은 과외가 성행하지 못하고, 공주지역은 과외의 성행이 어느 정도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목포지역의 학원이나 과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학교 다녔을 때는 밤 10시 반에 학교가 끝난 후에 밤 11시부터 시작하는 야간반 학원 수업이 유행했다. 그렇게 하고 집에 돌아오면 새벽 1시, 다음날 등교 아침 7시30분, 이것이 고등학생들의 하루 생활이다.
해당 학교장이 무리인 줄 알면서도 학생들을 학교에 붙잡아 두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대부분 해당 학교장이 자기학교 출신이라는 점이다. 학교에 대한 애정이 그렇게 표현되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동문들의 무언의 압력이 그렇게 했을 수도 있다. 더구나 이런 학교들(목포고, 공주고)에서 선생님들 역시 해당학교 출신들이 많다. 그렇다보니 한참 윗선배인 교장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의 교사적 사명감이 있다해도 반론 제기는 반란에 가까운 것이기에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지역사회의 기대감 때문이다. 지역사회에서 지역 명문고에 거는 기대는 엄청나다. 그리고 그 기대감의 수치는 항상 서울대를 몇 명 진학시켰냐에 달려있다. 고3담당 선생님들이 서울대에 몇 명 보낼 때마다 수고비가 얼마씩 나온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또한 진학결과를 보도하는 지역사회의 여론도 어느 학교 몇 명 보냈다는 이런 수준이다. 특히 필자의 고향인 목포에서는 순천, 여수와 비교를 많이 하므로, 지역사회 내에서의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렇게 되다 보니 필자가 다닌 목포고등학교에서는 비평준화 시절 졸업생은 동문도 아니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모양이다. 또한 지역 명문고들이 이런 정책을 취하게 되면 다른 학교들도 밤늦게까지 학생들을 이유 없이 학교에 붙잡아 놓는 사례가 생긴다. 학교장들 모두 학부모의 항의가 무서운 탓이다.(솔직히 그런 학부모들이 대다수의 학부모인지는 여전히 의문점이다.)
고교 평준화를 해야 하는 이유는 학력에 의한 서열화 방지다. 여전히 대도시의 시청, 시의회는 지역 명문고등학교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 평준화가 시행된 지 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현재의 입시제도로는 비평준화 지역 학생들이 우수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내신의 불리함에 의해 생기는 불이익은 대학 진학시 엄청난 불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 지난 89년 서울대학교 수석 합격자를 배출해 냈던 목포지역이 비평준화 전환 이후, 서울대학교 또는 타 명문대학 수석 합격자를 배출해 내었던가? 혹자들이 얘기하는 경쟁에 의한 학력 상승효과(얼마나 많이 명문대학에 가느냐?)는 경험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98년 전남 ㅅ고의 경우 서울대에 진학한 학생이 39명인 것에 반해, 지난해에는 14명에 불과하다. 그 간 입학정원이 줄었음을 고려해도 큰 수치임에 불과하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 포항지부'에 의하면, 평준화 지역인 대구 지역의 서울대 입학생 수는 421명 비평준화 지역인 경북 지역은 152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것은 과거 수능이 중심이 된 입시제도에서 거의 비슷한 수치의 서울대 진학생을 보냈던 것과는 너무나도 격차가 크다.
현재 평준화가 시행되고 있는 지역은 전국 7대 도시와, 경기도 수원과 6개 신도시 지역, 청주, 전주/익산/군산, 제주, 마산/창원/진주 지역이다. 이 지역들과 비평준화 지역간의 학력 격차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평준화를 꼭 해야하는지 지역 유지분들께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또 다른 문제는 인적 자원의 낭비이다. 중학교 시절 1-2등을 했던 학생들이 고등학교에서는 반에서 '꼴등'을 하는 사태도 생긴다. 특히 시골지역 학생들이 도시 지역의 명문고로 진학했을 경우 생기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렵다. 비평준화 지역 명문고의 인적 자원 낭비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지역 명문고의 미달 사태 역시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명문고를 계속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지역의 자존심 때문에, 명문고교의 인적 자원낭비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서울에 있는 한 교육관련회사에서 내려왔다는 직원이 X고등학교(이전에 서울대 수석합격자 배출한 학교)가 유명 학교냐고 물었을 때, 지역학교 학생들은 다 웃고 말았다. 왜냐하면 지금 그 학교는 인문계 고등학교 서열에서 가장 낮은 학교이기 때문이다. 지역사회 관계자들은 지역에서 명문고가 전국에서 명문고가 아님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역으로 생각하면 서울 및 대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피부로 느끼지 못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교 평준화를 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국가적인 낭비는 심각하지만,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모양이다. 또한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그 실상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기에 심각하게 이러한 문제를 여기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전에 시행한 고교 평준화로 인해 우리 사회의 학벌은 어느 정도 무너졌다. 예를 들어 평준화가 된 대전지역의 경우 과거 '대전의 명문' 대전고를 다니는 현재 재학생들이나 몇 년 전 졸업생들이 출신학교 프리미엄을 보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평준화 세대들이 사회의 주역이 되는 그 때에는 출신고교가 사람의 지위를 좌우하지는 않을 것 같다.
고교 비평준화를 주장하는 몇몇 대통령 후보님들께 묻고 싶다. 이러한 국가적 낭비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과연 당신들은 고교 비평준화를 주장하고 싶은가? 아니면 당신들이 명문고 출신이라, 명문학교의 자존심을 계속 이어 나가고 싶은 것인가? 이제 그들의 진정한 답변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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