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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광화문에서 열린 사망 여중생 추모 촛불집회 장면
지난달 30일 광화문에서 열린 사망 여중생 추모 촛불집회 장면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나를 본격적인 인터넷 글쓰기로 유도한 사건이 있다. 그것은 작년 4월에 있었던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경찰의 강경진압이었다. 상상을 초월한 공권력의 폭력은 1980년 5월 광주의 참혹한 광경을 연상시켰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나는 이 정부에,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김 대통령에게 한없는 실망감을 느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한두 개의 글을 올렸을 뿐이었던 나는 그 자리에서 글을 써내려갔다. 그리고 최초로 그 동영상을 올렸던 오마이뉴스에 기자로 등록하면서 첫 글을 올렸다.

그것이 2001년 4월 14일, 나의 오마이뉴스 데뷔글 "김대중정부에 대한 30년 지지를 철회한다"였다. 그런데 오늘 나는 김대중정부에 대한 지지의사 철회를 넘어 폭력경찰들이 시위대를 향해 그랬듯 방팻날을 날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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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벨 사령관도 이 땅 떠나라!

나에겐 요즘 우리 정부가 어디 있는지 보이질 않는다. 마치 이 나라를 떠나 어디 다른 나라에 망명정부라도 세운 것이 아닌가 할 정도다. 최근 주한미군의 오만에 가득찬 행태에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데 정작 나서야 할 정부는 '할 말'은 못하고 오히려 '못할 말'로 빈축만 사고 있다.

의정부의 두 여중생을 장갑차로 압사시킨 주한미군 두 병사가 무죄평결을 받은 사건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국민 보호엔 끔찍한 미국이 앞뒤 안 가리고 무리수를 둔 것이나, 그 밑바닥에는 우리나라에 대한 멸시가 깔려 있다.

주한미군이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보면 저희들끼리 '짜고치는 고스톱'같이 얼렁뚱땅 재판 열어 평결하고 무죄 선고하고 거기에다가 출국까지 시킨단 말인가.

주한미군의 장갑차는 우리 여중생만 깔아뭉갠 것이 아니다. 한 주권국가로서의 우리나라의 위신과 우리의 국민적 자존심까지도 깔아뭉개버렸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창피한 줄도 모른다. 오랜 세월의 종노릇에 뼛속 깊이 인이 박힌 때문인가.

나는 주한미군의 그런 기만적 재판에 분노하지만 그보다 더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것은 우리 정부 관료들의 속국 노비임을 자처하는 행태이다. 도대체 해야할 말이 무엇이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무엇인지 인지조차 안 되어 있는 듯하다.

해야 할 말이 무엇인가? 그것은 당연히 재판의 불공정성에 대한 지적이며 재판 결과에 대한 강한 불만 표시이다. 그것이 대다수 국민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등에 업고 있는 이러한 사안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이 그토록 어렵단 말인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은 무엇인가? 함으로써 눈치보며 굽신거리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일체의 말이다. 예를 들면, 정부 당국자의 논평에서 나왔던 "주한미군의 사법체계를 존중한다" 따위의 말이다. 그런 말을 하려면 아예 입을 다물고 있으라. 도대체 최소한의 자존심도 없는가.

온 국민의 분노를 촉발시킨 주한미군의 그 기만적 무죄 판결에 우리 법무부가 낸 논평을 한번 보자. "배심원의 평결에 '아쉬움'을 느낀다. 주한미군 측의 사법 절차를 존중한다" 이것이 21일 나온 법무부 논평의 핵심이다.

배심원의 무죄평결이 '아쉽'지만 무죄를 선고한 미군측의 사법 절차를 '존중'한단다. 온 국민의 분노로 전국이 들썩거리는데도 고작 '아쉬움'이나 느낄 정도란다. 대단한 법무부 관료들이다. 그들에게는 배알도 없는 모양이다. TV사극 속에서 허리를 굽신거리며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환관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미국 앞에 선 속국의 환관.

그리고 곧 이어 나온 국방부의 논평이다. 23일 국방부는 "궤도차량 여중생 압사사고의 미군 피의자 2명에 대한 미 군사재판의 무죄평결에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면서 "미군측의 사법 절차를 존중하고... 이번 평결이 과도한 반미 움직임으로 연결되는 것은 한미동맹관계, 우리의 안보, 나아가 국가이익 전체를 고려할 때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두 부처가 서로 짠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듯 비슷할 수 있단 말인가. 비굴함이 몸에 배어 두 부처가 의기투합한 것일까? 국방부는 그 동안 참으로 오랜 동안을 어느 나라 국방부냐는 비아냥을 들어왔다.

국민적 반대를 무릅쓰고 F-15K 전투기를 구입할 때에도 그랬고 용산 미군아파트 건설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비화했을 때도 그랬다. 미국 또는 주한미군과 관련된 일이 터질 때마다 발벗고 나서서 대변인 역할을 자임한 곳이 국방부다.

우리 국방부의 대미종속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알 수가 없다. 어찌하여 우리 국방부에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기개 있는 군인을 이토록 찾아보기 힘든지 불가사의한 일이다.

민족의식을 가진 군인의 씨가 말랐는가. 그들이 오로지 신경 쓰는 것은 '반미'뿐이다. 그리고 은근히 반미 움직임과 한미동맹관계, 안보와 연결짓는다. 어디서 많이 듣던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이다. 21세기 오늘날까지도 국방부는 이런 일이 있을 때면 슬쩍 안보와 연결시킴으로써 사람들을 자극하려는 낡은 수법을 쓰고 있다.

왜 '반미'가 일어나고 있으며 그 원인제공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성찰은 없이 오로지 "'반미'는 안 된다"는 식이다. 우리 국민이 아무 일도 없는데 할 일없이 '반미'하고 있는가.

'반미'를 부추기는 것은 미국이며 따라서 미국이 "한미동맹관계, 우리의 안보, 나아가 국가이익 전체를" 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반미'를 억제하려면 미국을 단죄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우리 국민의 '반미'는 당연한 권리행사이다. 짓뭉개진 자존심의 일부나마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몸짓이다. 미국과 주한미군이 우리나라와 우리를 존중하고 상식에 맞는 행동거지를 보인다면 어느 누구도 '반미'할 사람은 없다.

주한미군이 왜 저토록 오만해져 있는가? 거기엔 이유가 있다. 우리 정부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들의 잘못에 따끔하게 지적을 하고 재발방지를 요구해왔다면 그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계속해서 같은 잘못을 저질러오지 않았을 것이다.

법무부장관이 26일 했다는 말 좀 하나 더 들어보자. 그는 "SOFA 협정이 세계 다른 나라에 비해서 특별히 우리에게 불평등하다고 볼 수 없"으며, "이번 사건의 경우 미국이 1차 형사재판권을 행사한 것은 국제적 관례에 따른 것으로, 많은 이해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다.

그는 한술 더 뜬다. 정말 가관이다. SOFA 협정이 그다지 불평등하지 않단다. 그러면 SOFA가 불평등하다며 개정하라고 소리높이는 저 수많은 사람들은, 국민은 무언가.

주한미군 측은 살인한 병사조차도 갖은 악수를 두어가며 보호하는 마당에 피해당사국 법무장관이라는 사람이 피해자의 관점에서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완전 가해국의 논리를 대변하고 있다.

마치 미국의 법무장관이 우리 국민에게 이해를 호소하는 말 같다. 이쯤 되면 그의 국적이 의심스러워진다. 도대체 우리 관료들에게 주권의식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 것인가.

이렇듯 상전 앞에 마름 나서듯 우리 정부에서 앞장서서 막아주는 데야 주한미군이 아쉬울 것이 있을 리 없고, 오만해지지 않을래야 않을 재간이 없는 것이다. 그저 구경거리 삼아 팔짱끼고 껌이나 질겅거려가며, 비웃어가며 느긋하게 있어도 곤봉과 방패로 곤죽을 만들어버리니 무엇이 문제인가.

죄를 지어도 저희들 영내로만 들어가면 문제없고 어쩌다 잡혀도 모셔다주니 편하기도 하다. 행동에 조심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가히 주한미군 천국이 아닌가.

내가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1985년의 일이다. 나는 그때 캘리포니아의 버클리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다니던 과에서는 장학금을 받기가 어려워 물리학과에 가서 교수조교(teaching assistant)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에서 교환교수로 온 한 촌(?) 교수가 물리학과 건물에서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소위 Peeping Tom으로 몰려 교내경찰에게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영어를 못하는 그 교수는 저항을 했고 수갑을 채우려는 경찰과 실랑이를 하다가 넘어져 찰과상을 입게 되었다. 그리고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이 해프닝은 물리과 학생들에 의해 알려지고 학교의 중국인 학생들은 술렁거렸다. 나는 학보사를 통해 보도된 이 사건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지금 기억으로 아주 신속하게 (하루도 안된 것으로 기억한다) 중국 본토의 외교부(주미 중국대사관이 아니다)에서 항의 성명이 나왔다. 참으로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빠르고 강력한 대응이었다. 교수 한 명의 교내경찰 연행에 외교부 성명까지 나오다니….

그리고 또 다시 얼마 안 있어 미국무성에서 유감표명 성명이 나왔다. 그리고 그 교수는 방면되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채 이삼일 정도도 안된 사이에 내 기대(?)에 어긋나게 싱겁게도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미국무성의 신속한 성명도 나에겐 미스테리였다. 우리 정부 외무부의 성명에도 (물론 나올 리도 없지만) 그렇게 대했을까?

어쨌든 중국 정부의 대응은 국외자인 나에게도 감격적인 것이었다. 나는 그때의 그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중국에 대한 뭐랄까. 존경심 같은 것이 절로 우러나왔다. 단 한명의 해외주재 국민에게까지 그토록 배려하는 중국. 참 부러운 나라였다."(오마이뉴스 2002. 7. 24, "10년 만에 다시 찾은 미국 대사관, - 내 생애 가장 값진 '특별휴가'(I)"에서 인용)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우리의 이웃 나라는 그저 인신이 구속되는 정도의 하찮은(?) 일에 정부가 나서서 성명을 발표해 구해내는 마당에, 미국이란 나라는 자국의 병사가 남의 나라에서 사람을 죽여도 무죄로 만들어 빼내는 마당에, 제 땅에서 사람이 처참하게 죽어나가도 미국의 비위를 거스르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이런 나라를 과연 '주권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지구상에 자국민 보호를 이렇게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또 있단 말인가.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는 답답한 사람들, 제 몫을 주장하지 못하고 빌빌거리는 사람들에게 '등신같다'고 말한다. 불행히도 미국과 관계된 사안에 대해서는 그런 등신이 되어버리는 공직자가 우리 정부에는 너무나 많다. 등신 중에도 상등신이다. 나라의 녹을 그냥 거저 먹으려 하는 그런 등신들은 공복(公僕)이 아닌 공충(公蟲)이나 다름없다.

나라와 국민의 짓뭉개진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항의에 나서는 시민 학생에게 지금 경찰의 방팻날이 날아들고 곤봉이 허공을 가른다. 쓰러진 여학생에게까지 군홧발이 덮친다. 피가 튀고 실신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그러나 나는 묻는다. 정작 방팻날을 받아야 할 자들이 누구인가?

오늘 나는 저런 넋빠진 공충들과 그런 공충들로 들끓고 있는 등신같은 이 정부에 방팻날을 날리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대자보>와 하니리포터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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