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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저녁, 일상의 피곤에 지쳐있었다.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작가 일이라는 게 마감에 쫓길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독감 바이러스는 나를 점령하고 있었다. 마디 마디 관절이 저려왔지만, 사람들에게 내색하고 싶지 않았다.

간신히 집으로 돌아와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스트레스와 독감 바이러스의 상승작용은 생각 외로 지독했다. 그때 였다. 텔레비전 화면에 문성근이 나왔다. 감기는 낫지 않았지만, 스트레스는 아직도 여전하지만, 그 남자는 단 한방에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분명히 말해두는데 지금부터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가 누구를 지지하느냐'의 문제 이전의 것이다.

소신 있게 나서는 세상을 위해

문인도, 연예인도, 야구선수도 ‘효선이ㆍ미선이의 죽음’을 함께 안타까워했다. 서로 다른 신을 섬기는 종교계도, 학술계도, 노동계도, 심지어 대선을 앞둔 여ㆍ야당마저 모두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밀폐된 공간의 가스에 불씨가 옮겨 붙을 때처럼 번져나가는, ‘이유 있는 반미정서’를 통해 우리의 힘과 저력을 전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다. 짧은 전화 인터뷰 생방송이지만, 라디오를 통해 깨어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주 방송은 사회 각계 각층에서 일고 있는, ‘이성적인 반미의 목소리’, ‘소파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담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섭외를 하려고 하자,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연말이라서 사람들이 바쁜 걸거야” 처음엔 나름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꼬박 이틀 동안 25명도 넘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지만, 대답은 모두 ‘NO’였다. 그제서야 “내가 너무 순진하게 신문 보도를 믿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유명한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게 한국 사회에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속상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서명이라는 거 좀 그래요. 적극적인 사람들도 있지만, 솔직히 형식적으로 서명을 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잖아요” 라는 말을 들을 때엔 정말 맥이 빠졌다. 어떤 연예인의 매니저는 “우리 XXX는 아직 너무 어려서 그런 거 몰라요” 하고 말했다. 주민등록증이 있는 남자에게 어리다는 말을 써도 될까.

자신의 생각을 소신 있게 밝히는 사람은 없는 걸까. 누구의 눈치를 살피기 보다, 누구와 야합하기 보다, 자신의 능력과 진심을 믿으며 전력투구하는 사람은 없는 것일까. 독감 바이러스 탓도 있겠지만 자꾸만 머리는 더욱 아파왔다.

정의롭게 화내는 세상을 위해

텔레비전 브라운관 속에서 문성근은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말하고 있었다. 자신의 신념과 한 남자의 신념을. 그는 시인인 한 친구가 자신에게 물었다고 했다. “왜 노무현을 지지하는 거야?” 그는 그 대답이 ‘정의감’이라고 했다.

문성근은 "내가 믿는 정의감은 ‘머리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정의감은 이성과 감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감성이 이성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의를 보고 화나지 않는 사람이, 약한 사람들의 아픔에 함께 눈물 흘리지 않는 사람이, 침묵하는 사람이 어떻게 정의를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문익환 목사”라고 밝힌다. 또한 “자신의 아버지가 12년을 감옥에서 보낸 정치범”이라고 밝힌다. “정치범에겐 혹한의 추위 속에서도 난방은 물론이고 담요 한 장 주지 않았다”고 밝힌다. “아버지의 머리맡에 놓아둔 그릇에 얼음이 꽁꽁 얼었다”고 밝힌다.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3번 민주화를 실현시킬 기회가 있었다고. 김구 정부의 출범과 4.19 의거, 그리고 김대중ㆍ김영삼의 단일화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아마 아버지는 자신이 참여했던 단일화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더욱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이제 4번째 민주화의 기회가 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르지만, ‘내 눈엔 그가 화를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공명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익을 먼저 따지고 철새가 되는 정치인들에게, 더러운 악수를 하는 사람들을 향해 화를 내고 있었다.

정의감을 가진 사람

그는 “사람들이 그에게 국회의원엔 언제 출마하냐”고 묻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약속했다. “절대 출마하지 않을 것" 이라고, “대선이 끝나면 자신은 본업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나는 갑자기 스트레스와 감기를 이길 힘이 생기는 걸 느꼈다. 그는 소신 있게, 정의롭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런 사람만이 정의감을 가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브라운관을 통해 ‘문성근이 정의감을 가진 사람’이라고 느꼈다. 이번 주 내내 꼬리를 내리던 유명인들과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누구를 지지해도 좋다. 어차피 그게 민주주의의 룰이니까. 하지만 정의감을 가지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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