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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여명의 아침을여는집 가족들 식사도 다 내가 준비해야죠
ⓒ 이주원
"챙겨줘요? 뭘 챙겨준다는 거죠? 이런 노숙자 쉼터에서... 1년 동안 같이 살아도 서로 이름도 모른 채 살고 있잖아요. 그런 형편인데 누가 누굴 챙겨준다 말이죠? 그래서 저는 중도씨를 칭찬하고 싶어요. 밥 먹을 때가 되면 보살님을 도와 식사준비를 할 뿐 아니라, 가족들이 화목하게 지낼 수 있도록 여러 모로 챙겨주고 계세요."

평소 말이 없던 박씨가 '가족회의' 시간에 김씨를 칭찬한다. 김중도(51·가명)씨는 칭찬을 받고 쑥스러운 듯 "칭찬 받을 만한 일은 아닌데,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생각해요. '아침을여는집'에서 따스한 잠자리와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었죠. 그래서 이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함께 생활하는 분들께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봉사를 하고 싶었어요."

"제 취미가 뭔줄 아세요? 청소예요. 그러니 누구보다 깔끔 떨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잔소리도 많아져서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아침을여는집에서 생활한 지 15개월이 된 김씨는 성실하게 청소와 식사 준비를 도맡아 하다보니 이제 터줏대감이 다 되었다.

쉼터에 머무르는 사람 가운데 사연 없고,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김씨는 "1991년 교통사고로 1년 가까지 치료받고 퇴원했다. 후유증으로 오른쪽 상·하지 마비였으나 2년간 재활훈련으로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퇴원해서는 제대로 기어다니지도 못했어요. 아무래도 건강을 되찾으려면 운동밖에 없다고 봤죠. 그래서 도사견 두 마리를 사서 양손에 한 마리씩 잡고 산을 탔어요."

재활훈련으로 뇌병변장애를 이겨냈다. 그래도 장애가 어느 정도 남아 있던 김씨는 매제와 동업을 시작했다.

"한참 사업을 벌였을 때 갑자기 매제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때만 해도 주먹구구식으로 사업을 해서 저는 거래처나 외상대금에 대해 전혀 몰랐었어요. 매제가 세상을 떠나자 여기저기서 돈을 받으러 오는데 정신이 못 차리겠더군요."

계속해서 빚이 늘어나자 김씨는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뒤로 한 채 서울로 상경했다.

"꽤 큰 돈인 것 같은데 많이 힘드시겠어요?"

기자의 질문에 김씨는 "언젠가 갚아야지 하는 생각은 늘 갖고 있어요. 그런데 나이는 많고 몸은 성치 않아 취직하기는 점점 힘들어지는데"라며 한숨을 쉬었다.

▲ 김중도씨가 새로운 인생을 설게하는 삶터인 공공근로사업
ⓒ 이주원
교통사고 당한 뒤 뇌병변장애를 갖게 된 김씨는 동사무소에 공공근로를 신청했다. 그러나 "동사무소에서 뇌병변장애는 공공근로에 참여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했다. 현재 그는 아침을여는집으로 배정된 공공근로에 참여하고 있다. 임시직이어서 몇 달 뒤에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하지만.

올 봄부터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 구직등록을 하고 일자리를 찾고 있다. 그런데 일자리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여기 공단에 많이 쫓아다녔어요. 장애인을 고용하는 곳도 많지 않지만, 고용한다고 하는 곳을 가보면 일반인도 힘들어서 꺼리는 일을 하라고 하니 어디 할 수 있어야죠."

김씨는 공공근로에 참여하면서 지출을 줄이고 수입의 대부분을 저축한다.

"지금은 그래도 몸을 움직이며 살 수 있지만 나중에 아프기라도 하면 거리에서 죽을 수밖에 더 있겠어요? 남들이 보면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모아야죠."

"골목청소를 하다보니 그전에는 생각치도 못했던 것을 만지게 됐지요. 구더기를 손으로 만지고 치우면서 더 이상 헛되이 살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공공근로해서 받는 임금이 얼마 안 되지만 그 돈은 제가 구더기 치우면서 번 돈이니까 세상 어떤 돈보다 더 귀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해야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죠."

아침을여는집에서 노숙인쉼터 생활을 끝내고 싶다고 말하는 김씨.

"아침을여는집은 저에게 평생 못 잊을 장소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기 오기 전에는 정신을 못 차렸었어요. 여기서 인생공부 참 많이 했어요. 나하고 비슷한 사람들하고 생활하면서 위안도 많이 받고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도 많이 만나면서 앞을 보려고 노력했어요."

▲ 공원을 청소하면서 전 새로운 인생을 배웠습니다.
ⓒ 이주원
아침을여는집은 노숙인쉼터 가운데 유일하게 정신장애를 갖고 있는 노숙인과 일반인이 함께 생활하는 곳이다.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이 두터운 현실에서 이들과 생활을 묻자 김씨는 "다 같이 오갈 데 없이 어려운 사람들이에요. 칭찬해 주고 보듬어 주면 잘 따라와 줍니다. 정신장애가 있다고 업신여겨서는 안 돼요. 같이 생활해 보니 모두들 천사 같은 마음을 갖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꿈을 묻는 질문에 김씨는 "설렁탕집을 하고 싶어요. 배고픈 사람이 오면 한 그릇 퍼줄 수도 있고요"라고 말하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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