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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위태하던 제네바 협정이 마침내 깨졌다. 동시에 한반도에는 93-94년과 같은 전쟁위기가 도래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한국이 대선으로 시끄러울 동안 북한, 미국관계는 심상치않게 돌아갔다. 10월 부시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찾아온 제임스 켈리차관보에게 북한은 모종의 핵개발 프로그램이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은 11월부터 중유공급을 중단키로 하였다. 그러다가 12월 10일 미사일 부품을 싣고 예멘으로 향하던 북한 선박을 강제 나포하였다가 하루만에 풀어준 사건이 발생하였고, 마치 이에는 이라는 듯이 12일 북한 외무성은 제네바협정으로 동결된 핵시설 재가동과 재건설을 천명하였다.

핵무기를 인질로 삼아 체제안전을 보장받으려는 북한의 벼랑끝 전술과 핵무기개발계획의 무조건적 폐기를 선결조건으로 주장하는 미국사이에 정면충돌의 위기가 예상된다.

북한이 핵카드를 꺼내는 순간 북한은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 밖에 없고, 외교적 성과는커녕,오히려 최악의 경우, 군사적 충돌로 발전하여 북한체제의 종언이 있을 지도 모른다. 북한의 진의는 무엇이고, 왜 이 순간 핵카드를 꺼내 들었는가?

사실 타이밍이 문제였지, 제네바협정에 대한 문제제기는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다. 대체로 2003년 새정부 출범후에 제기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북한은 대선을 1주일 앞두고 전격적으로 또 대선정국에 ‘북풍’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제네바협정은 아슬아슬했다. 2003년 인도하기로 된 경수로 원자로 발전소는 2009년에 가봐야 완공여부를 판단할 정도로 지연되었고, 정치적 경제적 관계의 완전 정상화를 추구하기로 한 합의내용 역시 전혀 진전이 없었다.

1993년의 핵위기는 당시 김일성 북한 주석이 북한체제의 안전보장을 담보받기 위한 최후의 카드로 꺼낸 것이었다. 아마도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면 핵을 넘어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포괄적 합의가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김일성 주석의 급사로 정상회담을 유실되고 핵문제에 한정된 제네바 합의가 체결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제네바협정을 바라보는 미국내 시각이 완전히 양분된 데서 출발하였다.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과 맺은 제네바협정에 대해 공화당은 극히 부정적이었다. 따라서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했던 하원을 중심으로 제네바 협정에서 나아가 북한에 대한 클린턴 정부의 개입전략(engagement policy)을 정면으로 비판해왔다.

부시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회의는 더욱 커져왔고, 특히 9.11 테러를 거치면서 공화당의 대북한 정책은 강경책을 선명히 하기에 이르렀다. 클린턴정권말기 조명록 차수를 백악관으로 초청, 미사일문제, 국교정상화문제 등을 일괄타결하려 한 것과 북한을 ‘악의 축’ 리스트 첫번째로 거명하는 부시행정부는 완전히 비교가 된다.

이제 제네바협정을 다시 살려냄으로서 사태가 원상복구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제의 본질은 북한체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체제안보를 담보받으려하는 것이고, 미국은 아직 북한을 테러지원국의 범주에 놓고 있다. 핵문제나 그에 부수적인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리는 것이 충분한 해법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본질적인 문제제기가 불가피할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공은 한국으로 넘어왔다. 한국이 어떤 역할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따라 한반도에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고 또 하기에 따라서는 슬기롭게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엄중한 상황을 맞이하여 문제해결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 7.4 남북공동성명, 91년 남북비핵화선언, 2002 남북정상회담 합의문 등의 정신을 바탕으로 다음의 원칙을 상기해야 한다.

첫째, 평화적 해결과 평화정착의 원칙이다. 어떤 경우에도 군사적 충돌이라는 시나리오는 회피되어야 한다. 시험삼아 전쟁해 볼 수는 없다. 평화적 해결을 통하여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개선해내어야 한다. 둘째는 민족자주의 원칙이다. 일찍이 7.4 성명에서 합의된 대로 민족의 생존권이 담보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셋째는 국제공조의 원칙이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안보는 남북한만의 문제로 그치지않는다. 최소한 한국전쟁의 당사자인 미국과 중국을 포함하여 러시아, 일본등의 주변국들을 설득하여 긴밀한 협의와 협조속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차기 대통령을 뽑는 투표일이 1주일 남은 상태에서 대북한 정책, 또는 통일 정책이 다시금 유권자들의 선택의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다. 차기 정부의 철학과 정책에 따라 한반도는 전쟁과 평화, 대결과 화해의 냉온탕을 오갈 것이다.

한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한국은 피동적인 존재가 아니고, 국면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족자주의식을 바탕으로 유연한 외교역량을 갖춘 정권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한말과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손을 벗어나 주변 열강의 손아귀로 들어가버릴 것이다.

북한은 막다른 ‘벼랑끝 카드’를 던졌다. 그래서 전쟁과 군사적 충돌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냉전체제를 해체하고 평화체제로 이행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 손에 달려있다. 12월 19일 대선투표일은 우리 역사에 또 한 획을 긋는 전환점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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