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의 '기준'은 뭘까요? 예쁜 그림, 빼어난 문장, 이런 것들이 '좋음'의 기준일까요? 당연히 그런 것들은 좋음의 기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론 그 '좋음'은 '보기에' 좋지만 뭔가 답답해 보이는 우리 '일상'과 무관한 느낌을 주곤 합니다. 그 좋음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요?
이런 좋음에 대한 '고정관념'은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에 노골적으로 드러나곤 '했습니다'(그래도 요즘엔 '좋은 그림책'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과거형을 썼습니다). 하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은 남과 여라는 '성에 따른 역할구분'입니다. 일상을 다루는 그림책에 주로 등장하는 인물은 엄마죠. 아빠는 아이를 돌보지 않고 어디로 갔을까요?
| | 작가소개 | | | |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앤서니 브라운은 1946년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독특하고 뛰어난 작품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그림책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많은 작품들이 전세계에서 출간되어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1983년 <고릴라>로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과 '커트 매쉴러 상'을 받았고, <동물원>으로 두 번째 '케이트 그림어웨이 상'을 받았습니다. 2000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그림책 작가에게 주는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 상'을 받았습니다.
국내에 출간된 책으로는 <미술관에 간 윌리>, <고릴라>가 있으며 그 외에도 <동물원>, <터널> 등의 작품이 있습니다. | | | | | |
<돼지책>의 표지는 엄마가 아빠와 아이 둘을 업고 있는 장면입니다. 우리 일상이 이런 것은 아닐까요? 아빠와 아이들이 '아주 중요한' 회사와 학교에 가고 나면 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침대를 정리하고 바닥을 청소하고 일하러 갑니다. 저녁에 '아주 중요한' 회사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저녁을 먹고 TV 앞에 앉지만 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하고 먹을 것을 조금 더 만듭니다.
어느 날 엄마가 "너희들은 돼지야"라는 쪽지를 남겨 둔 채 집을 나가자 아빠와 아이들은 돼지로 변하고 집안도 돼지우리로 변합니다. 아빠와 아이들이 점점 더 '끔찍한' 생활에 빠져들어갈 때 엄마가 돌아옵니다. 그 후 아빠는 설거지와 다림질을 하고 아이들은 침대를 정리하죠. 아빠와 아이들은 요리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게 되었고 행복해 합니다. 그리고 엄마도 행복했고 차를 수리합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은지는 자신들의 아지트인 커다란 버즘나무(플라타너스) 위에 엎드려 있는 엄마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엄마 옆엔 "엄마 파업 중. 청소, 요리, 빨래 등 집안 일은 모두 안 함"이라는 푯말이 붙어있습니다. 엄마에게 모든 일을 떠넘겨 왔던 세 자매와 아빠는 직접 집안 일을 하면서 그 고됨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일거리를 만드는지 깨닫고 놀랩니다.
처음에는 서로 핑계를 댑니다. 왜 엄마를 도와주지 않냐고. 은지는 학교를 핑계 대고 아빠는 회사를 핑계 댑니다. 아빠는 "엄마가 집안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라고 말했다가 은지에게 핀잔을 듣습니다. 결국 아빠와 자매들은 엄마와 파업협상을 벌입니다. 엄마를 만족시킨 협상안은 이렇습니다. "아빤 일찍 일어나서 이불 개고 방을 치우세요. 난 엄마가 식탁 차리는 것을 돕겠어요. 그리고 우리 방은 우리 스스로 치울 테니까, 아빠도 아침에 양말, 손수건, 와이셔츠는 찾아서 입으시고요." 정말 소박한 협상안이지 않습니까? 왜 우리는 이런 소박함을 지키지 않고 이기적으로 살아 왔을까요.
| | 작가소개 | | | | 글쓴이 김희숙 선생님은 1958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광주교육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995년 '새벗문학상'과 '교육평론'에 동화가 당선되어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파업중>은 선생님이 지은 첫 동화책입니다.
그린이 김상섭 선생님은 1963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를 공부했습니다. 그린 책으로 <넌 아름다운 친구야>, <김치를 싫어하는 아이들아> 등이 있습니다. | | | | | |
<엄마는 파업중>에는 12개의 소중하고 따뜻한 동화들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장애아동과 할아버지, 가난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의 얘기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쉬쉬하려고만 했던 내용들이지요. 이 책은 같이 고민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얘기해 줍니다. 책장을 넘길수록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뭉클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러 말이 필요 없는 '좋은' 그림책과 동화책입니다. 이 책을 듣고 읽으며 자라는 아이들은 '다른 세상'을 마음으로 느끼고 생각할 겁니다. 책과 똑같은 자신의 일상을 보고 자신과 아빠가 돼지로 변하지 않을까, 엄마가 파업을 하지 않을까 반성하면서 '함께 하는 일상생활'을 고민할 겁니다. 실제로 저희 조카는 <돼지책>을 읽고 무척 부지런해 졌습니다. 5살된 꼬맹이가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물건을 정리하네요. 물론 어른 '돼지'는 그렇게 빨리 '사람'으로 변하기 어려울 겁니다.
외국의 한 여성학자는 이제 정치가 부엌과 침실을 가로질러 나타나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대통령후보나 정치인들을 둘러싸고 각종 팬클럽이 만들어지듯이 우리에게 정치는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좋음'이라는 개념처럼 '중요함'에서도 고정관념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요? 우리는 중요함의 기준을 뭔가 '큰 것', '남의 시선을 받을 수 있는 것'에서만 찾는 건 아닐까요? 이제 '아주 중요한' 대선만이 아니라 '집안의 권력관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