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현실이 내 신경세포에 가한 불쾌한 자극에 대한 히스테리컬한 보복일 뿐. 제발 나 짜증나게 하지 말고 그냥 좀 내버려 둬." - 진중권
필자가 인터넷에서 경험해본 바로는 나이든 논객 중에 가장 비판을 많이 받는 사람이 조갑제라면, 청년(?) 논객 중에 청년들에게 가장 많이 '씹히는' 인물이 진중권이다. 필자는 진중권에게 쏟아지는 분노가 이렇게 심한지 몰랐다. 지금은 아니지만 얼마 전까지 진중권이 활동했던 '깨손'에서는 무려 6개월 넘게 '시민'이라는 아이디의 진중권 스토커가 있었다. 그는 매일 들러서 진중권을 모욕하는 글을 도배해놓고 사라졌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어디선가 나타나서 진중권의 글에 악담 리플을 달거나 욕을 퍼붓고 사라졌다. 한마디로 진중권에 대한 욕이 없는 날이 없었다. 진중권은 왜 그렇게 욕을 많이 먹는가?
좌파 논객 진중권
진중권은 수구적인 말도 안하고, 기득권의 이익에 부합하는 말도 안한다.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그의 언어와 관심이 보통 좌파들의 모습과 차이가 있을 뿐, 필자는 진중권이 좌파라고 본다. 단지 진중권이 사람들을 자유주의 시민상식적 수준의 원칙으로 견인해주려는 노력을 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우리들은 자유민주주의는 쉽게 지껄이지만 정말 정치적 자유주의의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국가주의 우파들도 항상 말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수호 아닌가? 필자는 진중권이 스스로 좌파의 포지셔닝은 잃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진중권이 자유주의라는 상식의 언어로 사람들을 비판하고, 그가 보기에 '덜떨어진 사람들'을 시민상식의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하는 작업을 하지 않나 싶다.
욕먹는 희귀한 좌파 논객
그런데 좌파 논객 중에서 진중권은 유달리 욕을 많이 먹는다. 보통 좌파 논객들은 정의롭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많이 생각하기 때문에 개혁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청년층에 인기가 많다. 홍세화, 박노자, 김규항 등은 분명하게 좌파로서의 색채를 보여줘도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젊은이들도 잘 따른다. 그런데 이상하게 진중권은 좌파진영에서도 욕을 먹고, 또 청년층이 많이 분포하는 개혁적 우파 그룹에서도 증오의 대상이다. 필자는 처음에 이점을 참 궁금하게 생각했다. 자유주의 시민상식의 언어로 글쓰는 좌파 논객, 진중권이라면 좌파와 개혁적 우파의 공통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는 스타가 되어야 할텐데 오히려 좌우파를 넘나드는 스토킹의 대상이 되고있으니 신기하지 않는가.
당파성에 단호함
필자는 그 까닭을 발견하게 되었다. 진중권은 '진영 멘탈리티', 곧 당파성을 거부하는 사람이었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이념 스펙트럼을 대강 이렇게 구분한다. 국가주의 우파, 보수 우파, 개혁 우파, 민족주의 우파, 사민주의 좌파, 사회주의 좌파로 말이다. 주사파는 제외했다. 어쨌든 진중권은 이러한 각 정파의 '진영 멘탈리티'에 단호하게 거부하고, 그런 경향을 보이는 논객들을 공격한다.
보통 '진영 멘탈리티'라고 하면 단순히 각 정파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걸 넘어서 사실을 왜곡하거나, 똑같은 비판의 잣대로 자기편은 용서하면서 다른 정파만 비판하는 사고 방식, 반대로 타 정파가 잘한 것은 보지 못하고 오직 자기 정파만 선하다는 생각, 그리고 우월해지기 위해 타 정파에 대한 중상모략과 욕설을 퍼붓는 의식을 '진영 멘탈리티'라고 할 수 있겠다.
진중권은 그런 '진영 멘탈리티'를 싫어한다. 그는 '조선일보도 옳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왜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 못하는지 의아해 한다.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것은 조선일보가 국가주의 우파의 '진영 멘탈리티'에 빠져 앞서 말한 나쁜 짓을 하기 때문이지, 단지 <조선일보>가 국가주의 우파이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주의 우파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증오와 마타도어를 일삼는 사람들이라면 그가 개혁 우파이든 좌파이든 정당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미워하는 대상, '조선일보'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누가 누굴 배신했는가?
그러다 보니 어떤 일이 생겼는가 하면 네티즌의 상당수를 차지하고있는 개혁 우파로부터 엄청난 오해를 사게 되었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너는 '조선일보와 다름없다'는 소리를 하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실제로 진중권이 안티조선 진영을 민주당(개혁 우파+민족주의 우파) 진영 멘탈리티라는 죄목으로 비판하면서 문제는 커졌다. 진중권을 응원하던 안티조선 젊은이들이 그에게 배신자라고 욕을 쏟아놓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실 진중권은 개혁 우파 청년들이 흠모하는 유시민을 높이 평가하는데 말이다.
한편 진중권은 민노당 지지자들(민족주의 우파+사민주의 좌파+일부 사회주의 좌파)에게 진영 멘탈리티에 빠져서 북한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을 안한다고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서해교전, 여중생 사망사건과 반미시위 등을 소재로 해서 치열한 설전이 벌어졌다. 진중권은 민노당 지지자들에게 민족주의 우파(진중권은 간간이 이들을 주사파로 마타도어하기도 한다)들이 진영 멘탈리티, 그러니까 통일 지상주의나 맹목적 반미에 빠져서 북한에 대한 판단력을 잃었다고 소리쳤다. 그랬더니 그들은 진중권을 반민족, 극우로 몰고 갔다. 사실 진중권은 권영길을 지지한다고 선언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진중권은 진영 멘탈리티를 떠나야 진영 멘탈리티에 젖은 조선일보나 남북한 반통일 집단들을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반대로 안티조선 그룹이나 민노당 내부의 민족주의 우파들은 진중권의 그런 행동이 자신들의 투쟁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었으니 기분이 영 좋지 않았던 것이다. 진영 멘탈리티는 워낙 민감한 문제인데다가 사실 그들의 정치의식에 생동감을 불어넣어주는 흥미진진한 감성체가 아닌가? 게다가 외부에 타 진영에서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 내부고발자였으니 얼마나 얄밉겠는가. 그리고 그가 간간이 욕도 섞어 험한 말도 하기 때문에 왕따 작전은 더 심해졌다. 그러다보니 진중권은 청년 네티즌의 상당수인 개혁 우파와 학생운동 진영의 대다수인 민족주의 우파의 '껌'이 되었다.
강-진논쟁
'진영 멘탈리티'는 다른 말로 '당파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진중권은 '당파성 정치인'은 그렇다고 할지라도, '당파성 지식인'에 대한 본능적인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다. 정치인이야 그러고 밥먹고 사는 사람들이라지만 지식인은 그런 정치인을 항상 견제해야 하는 역할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심판'을 봐야할 지식인이 경기장에 뛰어들어 같이 축구를 하면 정치판이 난장판이 된다는 말이다.
불행하게도 진중권의 레이다에 '당파성 지식인'으로 포착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강준만이다. 결국 진중권은 강준만에게 시비를 걸어 이미 틀어지기 시작한 개혁 우파들과의 돌아설 수 없는 '결별'을 맞게 된다. 강준만의 책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을 비틀어서 진중권이 돕고있는 청렴한 정치인 '이문옥'에게 적용한 것이다. 한마디로 강준만의 '잣대'가 일관적이라면 강준만은 '이문옥'을 지원해야한다는 논리였다.
<오마이뉴스>에서 논쟁은 치열하게 벌어졌는데 결국 강준만이 <인물과 사상>에 상당한 길이의 '장문'으로 진중권에 대한 비난에 가까운 호소 섞인 글을 실음으로써 처절하게 끝났다. 그걸 바라보는 네티즌들은 어떻겠는가. <오마이뉴스> 기사 쪽글 게시판부터 시작해서 동네방네 쟁점토론방에는 진중권을 욕하는 사람들과 소수의 진중권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대전쟁이 일어났다. 그 증오의 공방에서 결국 진중권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나쁜 놈'으로 낙인찍히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진중권은 '강-진논쟁'에서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혹' 하나를 붙이게 되는데, 그것은 당파성을 싫어하는 진중권이 민주노동당 당파성에 빠졌다는 것이다. 즉 진중권이 민노당 후보 이문옥의 사이버 대변인으로서 이문옥을 회자시키기 위해 엉뚱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는 죄목이었다. 진중권은 민노당 내부 민족주의 우파와의 갈등과 이번 당파성 죄목까지 겹쳐 결국 민노당을 탈당하고 만다.
텍스트 길들이기
진중권이 욕을 많이 먹고 사람들에게 분노를 사는 사정은 대충 위에서 밝힌 바와 같다. 그러나 한가지 빼먹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이 있으니 진중권의 독특한 글쓰기이다. 바로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 놓는 텍스트 안에서 텍스트를 비판하는 기법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써놓은 텍스트를 가지고 '네가 이러이러하게 말했다면 너는 이러이러 해야하는데, 왜 너는 저러저러하느냐? 그러므로 너는 네가 싫어하는 그러그러한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식으로 그들의 자기 모순을 찾는 방법이다. 그렇게 개혁 우파와 민족주의 우파의 진영 멘탈리티를 물고 늘어지면 대부분 그들은 진정성을 무시당했다는 고약한 감정에 시달리게 된다.
진중권의 '텍스트 주의'는 역으로 네티즌들로 하여금 온갖 인터넷을 뒤져 진중권의 각종 텍스트를 찾아다니게 만든다. 그리고 어디선가 진중권의 말을 가지고 와서 진중권에게 '너는 이러이러하게 말해놓고 왜 이제 와서 저러저러 하느냐'의 시비를 거는 것이다. 그렇게 진중권의 텍스트 주의는 네티즌들에게 오히려 진중권의 텍스트를 열심히 분석하게 만들기도 하니, 진중권이 그렇게 손해보는 장사는 아닌 것 같다.
진중권: 상식적 좌파와 당파성의 긴장
이렇게 살펴본 것처럼 주로 진중권의 적은 개혁 우파와 민족주의 우파에 분포하고 있다. 국가주의 우파나 주사파는 논외로 해도 될 것 같다. 싸움은 주로 진중권이 그들의 진영 멘탈리티, 곧 당파성을 공격하는데서 시작한다. 당파성으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말해야 할 것을 말하지 않고, 엉뚱하게 자기 치장, 자기 합리화에 나서는 것을 진중권은 보아 넘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현실, "그저 현실이 내 신경세포에 가한 불쾌한 자극에 대한 히스테리컬한 보복일 뿐. 제발 나 짜증나게 하지 말고 그냥 좀 내버려 둬." 그렇게 그런 현실에 대한 진중권의 히스테리컬한 보복과 네티즌들의 반격이 게시판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진중권은 그냥 내버려두라고 하지만 그건 진중권의 바램일 뿐 '중궈니즘'이 지향하는 시민상식이 정착하기 전까지 그들이 진중권을 쉽게 놔두겠는가?
'상식적 좌파는 당파성을 초월해야 한다'는 진중권은 비록 좌파이되 정파와는 상관없이 우리가 해야할 일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을 찾으러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놓는다. 그것은 당파성의 그림자에 가려지기 쉬운 것이고, 진중권은 안면몰수하고 그림자를 드리운 당파성의 모자를 집어 제낀다. 인간의 얼굴로 만나기 위해서.
덧붙이는 글 | * 실험웹진 http://www.dalp.wo.to
* 이 기사는 하니리포터에도 송고했습니다.